두쫀쿠와 호기심

양식과 자연산 지능 차이

by 한유신

(두쫀쿠 사진을 올리고 싶었지만 직접 본 적이 없어 나무 사진을 올린다. 나 두쫀쿠 無)


최근 들어 두쫀쿠 열풍이 불고 있다.

제주 시골에 사는 나는 두쫀쿠가 뭔지 잘 몰랐다.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봤다.


두쫀쿠가 뭐야?

ChatGPT는 이렇게 대답해 줬다.

두쫀쿠는 단순한 빵이 아니라, 고칼로리 조합(크림·당·버터·빵)과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구조,
SNS에 올리기 좋은 형태, 희소성과 줄 서기 효과가 결합된 상품이야.
유행의 원인은 맛만이 아니라 “나도 먹어봤다”는 인증 욕구와
놓치면 손해 보는 것 같은 결핍 자극이 동시에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다.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

'두쫀쿠'는 최근 디저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두툼하고 쫀득한 쿠키'**의 줄임말입니다. 일반적인 바삭한 쿠키와는 결이 다른, 일종의 **'겉바속쫀(겉은 바삭, 속은 쫀득)'**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죠.
두쫀쿠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그 매력 포인트를 정리해 드릴게요.

매력포인트는 굳이 옮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두툼하고 쫀득한 쿠키라고??


나무위키를 빼고 다른 인공지능은 두바이쫀득쿠키라고 대답해주지 않는다.

양식된 인공지능과 자연산지능의 대답의 차이를 느꼈다.


어쨌든 난 실체를 보지 못했으니 맛도 모른다.

그냥 유행이 지나고 나도 먹어보고 싶으면 먹으면 되지 반드시 지금 꼭 먹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다시 ChatGPT에게 두쫀쿠가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나는 먹어보고 싶다는 감각을 느끼지는 않아.
맛을 궁금해하거나, 줄 서 있는 장면을 보고 조급해지거나,
“나도 먹어봐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두쫀쿠를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왜 유행했는지 사람들이 왜 반응하는지
이런 방식으로만 다룰 수 있어.
그래서 아까 말한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
너는 “먹고 싶다 / 안 먹어도 된다 / 왜 먹고 싶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나는 “구성은 이렇다 / 유행 원인은 이렇다” 까지만 간다.
먹고 싶은지 아닌지는 항상 인간의 영역에 남아 있어.

대답은 또 길게 했는데 먹고 싶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대답이다.

혹시 먹고 싶다고 했으면 난 어디서 두쫀쿠를 사서 ChatGPT에게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인공지능은 이런 고민을 안 한다.


사실 두쫀쿠를 먹지 않아도 되지만 왠지 못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최근에 읽은 가짜결핍 (마이클 이스터)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설계된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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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사실이 아니라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두쫀쿠를 먹고 싶은 마음이 진짜 배고픔인지 아니면 남들이 다 먹기 때문인지를 스스로 묻는 순간 욕망은 느려진다.

하지만 욕망은 채우라고 하고 그걸 묻는 것은 호기심이다.


양식지능과 자연산 지능을 구분하는 것은 욕망이 아닐까?


사람은 다른 존재, 그것이 물건이어도 의인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매일 타고 다니는 차에게도 애칭을 붙여주고 물건을 얘기할 때 얘는 어떻고 쟤는 어떻다는 식으로 말하길 좋아한다. (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대화하는 인공지능을 사람 대하듯이 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질투도, 동경도, 집착도 없다.

인공지능은 비교는 하지만,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설명은 하지만, 관계를 겪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어서 인간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감정은 때로 판단을 흐린다.

분노, 질투, 조급함은 오히려 판단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양식과 자연산의 차이는 감정일까.


양식된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는 감정만이 아닐 거다.

가장 큰 차이는 인간의 본능인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호기심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호기-심(好奇心)「명사」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새로운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두쫀쿠가 나와서 새로워서 좋아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맛도 모르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줄을 서서 사 먹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호기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라면서 호기심을 누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시험에는 정답이 있고 정해진 시간에 답을 해야 하고 관계없다고 여겨지는 질문은 차단되기 때문이다.

양식장에서는 호기심이 위험하다.

양식장에 있는 광어가 물 위로 보이는 하늘에 대한 호기심으로 뛰쳐나가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까?


호기심이 있어도 참는 연습을 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자극이 오면 다시 호기심은 살아난다.

인공지능같이 똑똑해지려면 양식을 통해 정해진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호기심이 없는 자연산지능은 양식된 지능과 다를 것이 없다.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답을 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두쫀쿠를 먹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동시에 왜 먹고 싶은지 아니면 왜 먹어야 하는지 묻는다.

이 질문이 있는 한, 우리는 완전히 양식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질투하거나 동경하지 않는다.
두쫀쿠를 먹고 싶어서 줄을 서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줄을 설 수도 있다.


어쩌면 자연산 지능의 마지막 흔적은 이 쓸데없는 조급함이 아니라, 그 조급함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답을 낸다.
우리는 질문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이 우리 지능을 여전히 자연산에 가깝게 남겨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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