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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Dec 25. 2019

중성화 수술

충성을 맹세합니다

  

무슨일이야?


  카페 오픈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맹이가 무서워하는 무선청소기의 스위치를 내렸다. 연출된 장면처럼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보니 동물병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잠금화면을 풀고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다.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하맹이 중성화 수술 적기입니다. 내원해 주세요." 무슨 소식인지 궁금해 나를 올려다보니 하맹이에게 말없이 츄르를 짜줬다. 다음 날 동물병원에 방문했다. 선생님은 두 가지 이유로 중성화 수술을 권했다. 첫 번째 여자 고양이는 높은 확률로 여성 질병으로 인해 사망한다. 두 번째 카페에서 지내는 특성상 발정기가 오면 집사와 고양이 둘 다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두 납득할만한 이유였고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했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100번 정도 들렸다. 더 이상 선생님 눈과 마주치기 어려웠다. 어렵게 입술을 떼고 다음 주 목요일에 수술하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수술 전 유의사항을 명확하게 일러주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하맹이가 좋아하는 습식사료 한 캔을 사서 동물병원에서 나왔다. 오늘은 친구가 카페를 보는 날이고 난 지금 약속에 늦었지만 하맹이를 보고 싶었다. 카페에 도착해 해먹에서 자고 있는 하맹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결국 약속에 늦고 말았다.


수술 뒤 고장 난 하맹이


  목요일은 금방 찾아와 이른 아침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사실 나와 하맹이는 새벽부터 잠에서 깨있었다. 중성화 수술 전 공복을 유지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조금 뒤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하맹이에게 서랍 속 감춰두고 조금씩 줬던 특식을 꺼냈다. 남아있는 전복 우유와 건조된 참치를 몽땅 털어줬다. 이유도 모른 채 잔치상을 받아 골골거리며 먹는 하맹이를 보며 부디 수술이 무사히 끝나길 빌었다. 10시쯤 하맹이를 이동장에 넣고 열어주기 싫었던 자취방 문을 열었다. 병원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서 잔뜩 주눅 든 하맹이가 안쓰러웠다. 선생님은 간단한 피검사를 마친 뒤 하맹이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한 시간도 안돼서 끝났다. 2시간쯤 흐르자 회복실에서 하맹이가 깨어났다. 병원보다 익숙한 집에서 쉬는 게 하맹이에게 더 편할 거라는 선생님 말에 이동장에 하맹이를 넣었다. 병원을 나와 이동장이 흔들리지 않게 아주 천천히 걸었다. 집까지 십 분 거리인 자취방을 30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 이동장에 하맹이를 꺼냈다. 몸을 둥글게 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도 흐르고 있었다. 마취가 풀러 아파하는 하맹이를 보고 있자니 더없이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렇게 하루를 뜬눈으로 보냈다. 다행히 회복이 빨라 다음 날 아침부터 밥을 먹었고 일주일쯤 지나자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2주가 지나 실밥과 환묘복까지 벗었다. 예전과 다름없는 하맹이를 보고 안심이 됐다.  


검은 고양이가 사라졌다


  어느 주말 저녁 여자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취방 문을 여니 신발장 앞에 하맹이가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야옹거리며 울고 가랑이 사이를 지나다니며 자기 몸을 비빈다. 수술 후에 부쩍 더 어리광을 늘었다. 하맹이를 달래주려 얼굴을 만져 주고 털을 빗어준다. 수술 탓에 배에 털이 밀려 분홍색 속살이 보이고 가운데 아직 아물지 않은 흉터가 보인다. 내 품을 뿌리치고 하맹이는 창가로 점프해 앉는다. 밖을 내다보며 무엇을 찾는 눈빛이다. 가끔씩 창가로 찾아와 시끄럽게 울던 검은색 고양이가 요즘은 통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 방에서 나는 바닥에 앉아있고 하맹이는 창문을 내다보고 있다. 작게 켜진 라디오에서 8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지난주 동물병원에서 들리던 초침 소리가 생각나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말은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을 생략하신 것 같았다.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가 오래 사는 게 좋고,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거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 싫지 않나요? 서랍에서 츄르를 꺼냈다. 창문을 주시하는 하맹이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였다.



*고양이 잡지 MAGAZINE C 연재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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