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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Dec 12. 2019

구질구질한 사랑

나의 고양이 이야기

  

기만하는 표정



  쭈그리고 앉아 양손을 내밀고 애타게 하맹이를 부르고 있다. 카페에 웬일로 사람들로 가득하고 시선을 모두 나를 향해있다. 하맹이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온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안아주려는 찰나에 나를 스치듯 지나쳐 사료를 먹는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고 나를 한번 쳐다본 뒤 다시 사료를 먹는다. 명백하게 나를 기만하고 있다. 손님들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보고 피식거린다. 사실 난 평소에 굳이 하맹이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서로 쿨하게 모르는 척 지나칠 때도 있고 어쩌다 기분이 좋으면 내가 혹은 하맹이가 가볍게 서로의 몸을 터치하는 정도의 선을 지키는 쿨한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다. 그런데 지금 내가 구질구질하게 하맹이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건 창가 자리에 앉아서 웃고 있는 여후배 때문이다.


후배가 찍은 사진


  주말 점심부터 대학교 여후배가 카페에 왔다. 이 후배로 말할 것 같으면 아침에 웃고, 점심엔 화나 있으며, 저녁엔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통 예상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친구다. 고양이 같은 성격인 후배는 2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 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하맹이를 보러 온다더니 전화 한 통 없이 대뜸 나타났다. 하맹이의 성격을 묻기에 독립심이 강하고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 아니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배가 하맹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하맹이도 가만히 앉아 후배와 눈을 맞춘다. 후배가 입을 열고 말했다.


"아닌데 사람 좋아하는데?"


아무리 고양이를 키운다지만 7개월을 동거 동락한 나보다 더 하맹이를 잘 안다는 말투에 자존심이 상했고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나는 하맹이를 쳐다보며 후배에게 말했다.


"그럼 어디 한번 만져봐"


후배가 나를 보고 웃었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왠지 대학 때도 저 웃음을 본 거 같았다. 후배가 에코백에서 강아지풀 같은 장난감을 꺼내 하맹이에게 살살 흔들었다. 하맹이의 동공이 최면에 걸린 것처럼 좌우로 움직였다. 그 뒤로 하맹인 후배가 집에 갈 때까지 껌딱지처럼 옆에 붙어있었다.


긴 몸
하맹호빵


  곁눈질로 창가 해먹에서 자고 있는 하맹이를 쳐다보고 있다.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긴 사람은 나다. 어느 날엔 콧물이 나길래 하맹이를 안고 새벽에 동물병원까지 뛰어간 사람도 나다. 그런데 나한테 한 번도 해준 적 없는 머리를 몸에 비비며 교태를 부리고 '꾸르륵'거리며 비둘기 같은 기분 좋은 소리를 후배에게 내줬다.  여후배도 미웠지만 하맹이에게도 서운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미눈을 뜨고 하맹이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내가 표현이 서툴러서 하맹이와 친해지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딱히 후배처럼 정성스럽게 장난감으로 놀아주지 않았고, 싫어하는 것 같아 만지는 것도 자제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서운했던 마음이 가시고 미안한 마음이 찾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맹이가 자고 있는 해먹으로 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같아 자는 하맹이의 표정이 어딘가 외롭게 느껴졌다. 오른손에 사랑을 가득 담고 눈가에 연민에 감정을 녹여 하맹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하맹이가 움찔거리더니 등을 세우고 기지개를 켠다. 다시 한번 하맹이를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하맹이 이빨에 물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혼자있길 좋아하는 하맹이

  "처음엔 원래 그래 친해지려고 노력해봐" 내 방 컴퓨터 의자에 앉아 후배가 보낸 카톡을 읽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자존심이 상해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오늘도 하맹인 나와 멀리 떨어져 냉장고 위에서 자고 있다. 하맹이에게 다가가 까치발로 서 냉장고 위에 하맹이를 번쩍 들어 올려 품속에 안았다. 하맹이 얼굴에 내 볼을 대고 부 벼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다. 몇 초 뒤 정신을 차렸는지 발톱을 세우고 몸부림친다. 결국 팔뚝에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버티다 못해 하맹이를 놔줬다. 이젠 냉장고보다 더 멀리 떨어져 신발장에서 잠을 잔다. 츄르를 꺼내 유인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방울이 달린 쥐 인형을 주술사처럼 흔들었다. 왠지 하맹인 나에게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 잡고 있던 장난감을 책상에 휙 집어던지고 하맹이에게 등진채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축복받은 팔베게

  새벽에 잠에서 깨 몸을 뒤척였다. 발 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비닐 소리를 좋아하는 하맹이를 위해 침대 위에 비닐을 깔아놓았었다. 등에서 땀이 난다. 전기장판을 뜨끈하게 틀어놓으면 하맹이가 와줄 것 같았다. 어두운 방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하맹이와 친해지긴 힘들 것 같다. 체념한 채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려 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혹시 해서 옆에 놓아둔 배게에 하맹이가 자고 있다. 가슴이 따뜻해지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간 서운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헤벌쭉 웃음이 나온다. 앞으로도 난 하맹이에게 사랑을 갈구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나를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참으로 대단한 고양이다.





*고양이잡지  MAGAZINE C 연재중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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