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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Jul 17. 2019

수의

나의 증조할아버지 '해문'

  유월의 농로길, 양옆으로 막 논에 자리 잡은 벼들이 한 뼘 크기로 자랐다. 구리스가 잘 칠해진  부드러운 체인 소리, 무더운 날씨에 바싹 마른 모래와 자전거 바퀴가 만나 기분 좋게 '지지직'소리를 낸다. 나의 증조할아버지인 해문 할아버지가 그곳에 있다. 햇살이 뜨거워  이마에 손차양을 하고 논들을 둘러본다. 저 논 한 마지기는 우리 할아버지 또 저 논 한 마지기는 둘째 할아버지가 날려먹었다. 그 밖에도 이놈, 저놈들이 사고를 치는 탓에 해문 할아버지의 논은 더 이상 없다. 해문 할아버지는 그 길을 다니며 젊은 날을 추억하며 웃다 이내 믿을 자식 하나 없음이 느껴져 '캬악'소리를 내며 누런 가래를 뱉었을 것이다. 그렇게 주말이면 농로길을 돌아다니시다 경로당에서 점심으로 준 짜장면을 먹지 않고 자전거 뒤에 실어오셨다. 어린 난 강아지 마냥 자전거 체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마당으로 뛰어나가 해문 할아버지보다 짜장면의 안부를 먼저 살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어느 날은 짜장면이 아닌 노란 삼베수의가 실려있었다.


  그날은 경로당에 약장수가 아닌 수의 장수가 온 모양이었다. 아마 자신은 삼베 모시로 유명한 충남 한산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 수의는 천연 한산 삼베이며, 조선시대에 임금도 입었고, 자연스레 유해와 썩어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다고 부채표도 없는 싸구려 드링크를 나눠주며 노인들을 구워삶았을 것이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놔드리던 게 유행이던 그 시절, 부담스러운 보일러보다 단 돈 5만 원에 효도를 할 수 있으니 자식들은 노인들을 위해 삼베를 사줬다. 하지만 믿을 자식 없는 해문 할아버지는 본인 주머니에서 꾸깃한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내 주고 담담한 목소리로 "여기 있슈"라고 말하고 직접 자전거에 실었을 것이다.


  그 뒤로 삼베수의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언젠가 잘 마른빨래를 개어 해문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장롱 서랍을 열었을 때 , 옷가지들 사이로 빼꼼하게 종이상자가 보였는데 그게 삼베수의 같았다. 또 한 번은 얼마 남지 않은 해문 할아버지의 친구가 놀러 오셨을 때 백화수복 한 병을 편육과 거나하게 드시곤 친구에게 수의를 꺼내 보여주며 자랑하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 삼베수의는 희한하게도 가족들 입에서 자주 거론됐다. 이를테면 제사, 명절, 벌초 등의 가족행사 때 자주 이야깃거리로 올랐다. 술 한잔 걸치는 식사 자리에서 다들 5만 원짜리 삼베수의가 어딨냐고 웃었고 아니 비아냥거렸다. 그러다 결말은 꼭 누가 더 해문 할아버지를 힘들게 했는지 탓하다 큰 소리로 싸웠다. 그러면 해문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 계셨다. 방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어림짐작으로 장롱 서랍 한구석에 있는 종이상자를 꺼내 삼베수의를 보며 믿을 자식 하나 없음을 곱씹었을 것이다. 그러다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이 없으셨는지 정신을 놓으셨다.


  치매에 걸린 해문 할아버지는 나에게 존대를 했다. 끼니때마다 작은 상에 식사를 갖다 드리면 짜장면도 아닌데 "고맙습니다"라고 하셨다. 증손자인 나와 3년간 존대를 하시다 어느 날 아침 "진지 드세요"란 나의 말에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도 없이 떠나셨다. 해문 할아버지가 떠난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등교를 했다. 하굣길에 버스에 앉아 창문으로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있는 집을 바라봤다. 마당에 운동회 때나 봤던 몽골텐트가 손톱만 한 크기로 여기저기 보였다. 그제야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나 눈물을 흘렀다.


  호인이셨고 마을에서 가장 어르신이었던 해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네에 살던 시장 아저씨를 비롯해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모두 살아계셨을 때를 추억하며 웃고 슬퍼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셔서 또 한 번 불효를 하고, 둘째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은 술을 거나하게 먹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고, 싸웠다. 나는 육개장이며 수육을 나르며 일손을 돕다 해문 할아버지의 방 안에서 싸우는 지겨운 광경을 보고 주먹을 쥐었다. 병풍 뒤에 있는 해문 할아버지가 슬프지 않게 시끄러운 방 안에서 모두 내쫓아 혼자 계시게 해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는 날 날짜가 좋지 않다는 말에 이례적으로 4일장을 치러 하루 더 병풍 뒤에서 고생하셨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려 상여에 달린 꽃들이 하나 둘 거리에 떨어졌다. 살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선산이 있는 마을 외곽을 돌고 돌아 어렵게 가족묘에 도착했다. 바람이 불어 선산을 에워싼 밤나무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 때문인지 구슬픈 곡소리가 온산에 울려 퍼졌다. 해문 할아버지는 본인이 그렇게나 바라보던 삼베수의를 입고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이고, 한삽 두삽 뿌려지는 흙을 덮으며 이번 생과 작별했다.


  15년이 지나 윤달이 낀 어느 날, 가족묘를 정리하고 작은 납골당을 만들었다. 화장을 하기 위해 해문 할아버지의 관을 열었을 때 수의는 썩지 않고 유골을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해문 할아버지가 답답해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역시나 수의는 천연 삼베가 아닌 인공 나일론으로 만든 거였다. 할아버지들은 "그러게 내가 5만 원짜리 수의가 어딨냐고 했었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의 장수를 욕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의 장수가 가져간 5만 원과 할아버지들이 주고 간 상처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백화수복을 술잔에 따르기 전에 "카악"하고 소리 내며 누런 가래를 뱉었다. 해문 할아버지가 그러고 싶어 할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회색빛이었다. 선산에 듬성듬성 잘린 밤나무가 비를 맞아 텁텁한 냄새가 나고 화장터에서 피어나는 연기 탓에 눈이 매웠다. 요즘 같은 장마에 나는 해문 할아버지의 노란 삼베 수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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