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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Apr 22. 2020

또 시작이다

fly me to the moon

  카페에 앉아 멍하게 창 밖을 봤다. 하늘이 파랬다. 하늘멍을 때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손님은 한 명뿐이다. 노트북을 가져왔다. 키보드 소리가 장작 타는 소리 같다. 덕분에 하늘멍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 하품이 나오려 할 때쯤 문에 걸어둔 종이 울렸다. 손님의 일행이 왔다. 키보드를 치던 손이 멈췄다. 테이블에 널브러진 A4용지와 노트북을 가방에 욱여넣는 게 보인다. 급하게 옆자리 의자를 빼고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일행인 여자가 웃으며 앉았다. 남자 손님이 한쪽에 놓아둔 기타를 소심하게 튕겼다. 곁눈질로 날 보는 게 느껴진다. 기타를 쳐도 되냐고 묻는 듯했다. 꽤나 애쓴다는 생각을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무튼 장작 소리 아니 키보드 소리가 고마웠으니 손님에게 기타를 쳐도 된다고 말했다. 내심 연주를 기대했다. 형편없었다. 둘은 뭐가 좋은지 마주 보며 웃는다. 손님이 카페에서 나가면 기타를 창고로 치워야겠다.


  일주일 전 카페 동업자이자 고등학교 친구인 덕우가 기타를 가져왔다. 무슨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무튼 기타를 연습해서 매일 저녁 8시 오토바이를 타고 한강에 갈 거라고 했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적당히 사람들이 자기를 둘러싸면 딱 한 곡만 연주하고 올 거라는 포부를 밝혔다. 나는 턱을 괴고 덕우에게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또 시작이다"


  기타를 창고로 치워버리겠다고 생각한 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봤다. 알고리즘에 따라 화사가 부른 '샴푸의 요정', 'fly me to the moon'을 들었다. 잠에 들려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꿈과 현실의 중간쯤 그러니까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꿈인 지점에서 요정의 목소리 들렸다.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바라보니 꼬마 아이가 자기보다 큰 기타를 매고 엘프의 언어 자세히 들으니 영어로 'fly me to the moon'을 불렀다.


                                                               

Fly me to the moon
날 달로 날아가게 해 줘요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별들 사이를 누비며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의 봄은 어떤지 보게 해 줘요

In other words, hold my hand
다시 말한다면, 내 손을 잡아주세요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다시 말한다면, 내게 입맞춤을 해주세요

Fill my heart with song
내 맘을 노래로 채우고
and Let me sing for ever more
영원히 그 노래를 부르게 해 주세요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그댄 내가 갈망하고, 숭배하며 동경하는 사람이죠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그러니 진심으로 날 대해줘요
In other words, I love you
그 말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노래를 듣고 닫힌 창문을 열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꿈에서 하늘을 날아 달을 보고 화성과 목성의 봄을 보기 위해서였다. 요정이 곁에 있다면 말할 것이다.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요.
다시 말한다면 기타를 배우겠다는 거예요.
요정은 답한다. 다시 말한다면 또 시작이란 말이네요.


 또 시작이다. 유튜브가 요정의 목소릴 들려줘서, 하늘은 파란데 키보드 소리가 들려서, 고양이 앞발에 채여 떨어지던 유리컵을 잡아서,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소변을 한 시간이나 참아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제주도 얘기가 나와서, 페도라를 쓴 손님이 커피맛을 칭찬해줘서 또 시작이다. 그래서 기타를, 권투를, 독서를, 여행을, 카페를 또 시작한다.


  그런 알 수 없는 순간이 스쳐가 나는 또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헛소리하는 고등학교 친구, 심술 맞은 고양이 한 마리, 코딱지만한 카페가 곁에 남는다. 남았으니까 그럼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다. 다음은 어떤게 내 곁에 머무르려나 궁금하다.



여자아이 fly me to the moon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e0azRhL9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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