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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Aug 19. 2018

권한다는 건

마법같은 순간


권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무엇을 권한다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음식을 먹는다면 내 마음에만 들면 그만이다

나는 혹여 재미없는 영화나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그 속을 샅샅이 뒤져 티끌만 한 좋은 점을 끄집어낸다

관대함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정신 승리를 하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매번 사람은 하나하나 모두 다르다는 걸 간과한다

공감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어때?” 라는 나의 질문에 누구는  시니컬하게 "별로야 시간낭비였어” 라 말한다

그러면 마음이 푹 꺼져서 좋았던 것도 “맞아 별로야 어째서 난 좋다고 생각한 걸까”라고 생각하며 다시는 무엇을 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몇 해 전 친한 여자애에게 영화를 보자고 권했었다

앞서 말했듯 권하는 건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전날부터 개봉한 수많은 영화 정보를 얻어 그 애와 어울리는 영화를 매칭하려 노력했다

그 애를 설명하자면 환절기의 일교차를 닮은 애였다

방금 전까지 기분 좋게 웃다가 갑작스레 표정이 굳어졌고

세상 누구보다 친밀함을 느끼다가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자체가 불편 해지곤 하는 변화무쌍한 애였다

결국 도전적인 선택보다 환절기처럼 싸늘해질 그 애의 반응에 떨지 않기 위해 가디건을 챙기 듯 보편적인 상업 영화 X맨을 선택했다


영화는 재미없었다

애초에 X맨과 어울리지 않는 일본이라는 배경을 가져왔으니 억지스러움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기모노를 입은 금발의 여자가 "저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둔 오사카 토박이 입니다" 라고

다소곳이 무릎을 꿁고 차를 따르며 말하는 낯선 느낌이었다


손에서 땀이 났다

온몸을 베베 꼬며 그 애의 눈치를 봤다

눈동자를 외곽으로 보내 희미하게 보이는 그 애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표정을 보며 기분을 살피고

손으로 팝콘을 구르며 지루해하고 있지 않은지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지는 않는지 온 신경을 그 애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태도나 낌새가 포착되면 반사적으로 "미안해"라고 말할 준비를 했다


그 애가 나에게 몸을 돌려 다가왔다

"역시나 재미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재빨리 사과할 준비를 했다

그 애는 더욱 가까이 다가와 왼손을 모아 나의 왼쪽 뺨과 귀 앞쪽에 가져다 대고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와 조용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재밌어요”


간지러운 바람과 함께 그 애의 음성이 귀를 통해 심장까지 전달된 게 분명했다

쿵쾅거리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사람들에게 심장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염려 될 만큼 크고 빠르게 요동쳤다

그 말을 듣고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혹은 엑스맨이 오늘은 x네’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권한다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렇지만 무엇을 권한다는 건 가끔 마법 같은 일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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