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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Aug 29. 2018

눈물 목격담1

돌이 되어버린 나


  가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극도로 불안해지는 상태를 맞곤 한다. 그럴 땐 누군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부동자세가 되어 아무런 말과 행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 상태로 이르게 하는 건 눈물을 목격했을 때다. 핸드폰이 물에 닿으면 먹통이 되듯 나 역시 누군가의 눈물이 닿으면 사고가 정지된다.


  비 오는 일요일 후배를 만나 조별과제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신촌역 앞에서 우산을 쓰고 후배를 기다리며 언제나처럼 만나면 어떤 농담을 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에 무던한 성격을 가진 후배가 멀리 보였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후배에게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핀잔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실없이 웃거나 약속 시간보다 빨랐다고 나무랐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이상해 후배의 표정을 살폈다. 항상 웃고 있던 표정이 굳어 있었고 풍기는 기운에서 슬픔이 가득했다. 주변에 상황에 극도로 민감한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촌역을 지나 예약해둔 스터디룸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자 마자 후배가 울기 시작했다. 의자를 반쯤 빼고 앉으려는 찰나에 후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의자에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눈물을 목격한 것이다. 그 옛날 신화에서 메두사를 보면 영웅들이 얼어붙었다는데 아마도 메두사가 울고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 짧은 순간 바닥과 창문 필통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필통과 창문 바닥을 순서로 고장 난 시선을 바삐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무수한 자문을 구한 뒤 가까스로 얻어낸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30분 정도 걸릴 거야”라는 자답이 떠올라 후배에게 말했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고 내 입장에서 생각 했을 때도 잠시 혼자 있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신촌 거리로 나왔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아트박스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을 먹고, 평소에 하지도 않던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왜 아트박스에 가고 고프지도 않은데 라면을 먹었으며 엄마에게 전화해 비가 온다고 두서없이 얘기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억 나는 건 그 순간 온통“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가까스로 어디선가 우울할 때 단걸 먹는 게 좋다는 말이 떠올랐다. 크리스피 도넛에 들어가 가장 달아 보이는 초코도넛과 크림이 가득 올려진 컵 케익을 샀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또다시 눈물에 얼어붙지 않기 위해 도넛을 방패 삼아 후배에게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후배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미세하게 어깨를 들썩거리고 간헐적으로 훌쩍거릴 뿐이었다. 굳이 눈물의 이유를 묻지 않고 도넛을 건넸다. 동시에 밖에 나가 무엇을 했는지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조곤조곤 말해줬다. “아트박스에 갔었고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먹었어 그 뒤 엄마에게 전화를했었지 저런 도넛을 내 것까지 먹어버렸구나” 후배는 고맙게도 웃으며 도넛을 다 먹어줬다. 지금도 가끔 그 후배를 만나면 당시 얘기를 하며 함께 웃는다.


확실히 나는 눈물에 약하다.

자리를 피해준다거나, 가만히 있어주거나, 단 것을 건네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Ps 그 후에도 백반 집, 압구정거리에서도 후배는 울었고 식은 찌개를 먹거나 한남대교 위를 정처없이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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