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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Sep 03. 2018

헵번

고귀한 이름 '헵번'


헵번


"강아지 키우지 않을래?"


나는 그녀의 물음에 고민도 하지 않고 키우겠다고 말했다. 강아지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보다 단지 분양을 계기로 그녀와 더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불순한 동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인천에 살았고 나는 안성에 살았다. 적절하게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인천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였다. 2010년 새해가 얼마 되지 않은 겨울의 어느 날 용인 터미널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온통 흰 세상에 잠시 감상에 잠겨 있었을 때 횡단보도 맞은편에 그녀가 있었다. 눈이 내린 터미널 하얀 도화지 같은 세상에 누가 점이라도 하나 찍은 것처럼 작고 까만 강아지가 그녀의 품에서 떨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이 까만 여자 강아지에게 이름이 없다고 말했다. 삼촌이 한 마리 주셨는데 엄마가 반대해 키울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나는 최대한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타까운 사연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구보다 잘 키울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강아지 이름은 걸으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터미널 주변을 함께 걸으며 이름을 생각했다. 집중할 때 습관인 초점 잃은 눈과 벌어진 입의 표정은 개의치 않고 사력을 다해 작명하려 했다. 하지만 인생 중 가장 무지했던 시기였던 당시에 나는 일차원적으로 깜이, 보편적으로 해피, 혹은 파이이야기라는 책에 나온 ‘리차드 파커’같은 이름을 지껄였던 것 같다. 그때마다 그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미용실 간판을 올려다보더니 대뜸 말했다.


“헵번은 어때?”


 ‘오드리헵번 미용실’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유리창에 짧은 뱅헤어, 우아한 티아라, 까만 선글라스를 쓴 오드리 헵번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가진 세기의 배우의 이름,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과 출신을 알 수 없는 견종과 밀회로 태어난 강아지에게 어울리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녀에게 좋다고 말했다. 어떤 이름이라도 동의했을 꺼라 생각한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까만 강아지에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강아지는 헵번이가 되었고 나와 함께 안성에서 살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우선 한마디 상의도 없이 대뜸 강아지를 키우자는 태도에 엄마는 불쾌해했고 무엇보다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어 극구 반대하셨다. 하지만 21살 시기 대부분 남자가 그렇듯(물론 아닐 수 있다) 나는 안하무인 격 태도를 일관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쉽사리 저지하지 못했다. 우격다짐으로 내 방에서만 키운다고 말하며 조그만 방에서 헵번이를 키웠고 엄마는 마음대로 하라고 포기한 듯 말했지만 한 달 뒤 입대를 하게 되니 그때까지만 참자는 생각이셨다.


한 달간 헵번이와 비좁은 방에서 알찬 시간을 보냈다. 대소변 가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앞발을 달라고 보채고 ‘앉자’ 등의 명령을 하며 올바른 강아지로 키우고자 했다. 물론 강아지 시기여서 그런지 왈왈거리며 반항하고 이곳저곳 대소변을 보며 나의 요구를 무시했지만 그 모습마저 마냥 귀여웠다. 헵번이를 매개체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결국 그녀와 가까워져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시점에 고백했고 대차게 거절당했다. 그녀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았지만 입대 전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련은 고스란히 남아 햅번이에게 온전히 전해졌다. 나는 헵번이가 그녀인 듯 더욱 애지중지 키우게 됐다. (3년쯤 지난 후에 햅번이를 보아도 그녀가 생각나지 않았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입대를 하게 됐다. 헵번이는 결국 짧은 숙소 생활을 마감하고 밖에서 자라야 했다. 엄마에게 서운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아 한편으론 고마웠다. 아마 ‘헵번이를 나라고 생각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남에게 주기 걸렸던 것 같다.




헵번이는 겁이 많고 소심하며 호기심 덩어리에 근성 있고 자존심이 강했다. 시골 마을 산책을 할 때면 동선을 파악할 수 없게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낙엽 밟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불안해질라치면 어느새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아무리 들어가지 말라고 소리쳐도 논에 뛰어 들어가 진흙을 잔뜩 묻히고 벼들 사이에  빼곰히 얼굴을 내밀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거기에 작은 몸이 오줌은 얼마나 많이 저장하고 있는지 사방에 뒷다리를 들며 영역표시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도 보이면 뒷걸음질 치며 짖어 대고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나는 내버려 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까지 뛰어간다. 가지 말라고 목놓아 부르고 애원해도 논둑을 지나 저 멀리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헵번이는 자존심과 근성이 있는 강아지였다. 무단으로 침입한 고양이가 제집처럼 눌러살기 시작하고 아빠가 이웃집에서 닭 몇 마리를 얻어와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던 시기가 있었다. 본래 마당의 주인이었던 헵번이는 영문도 모른 채 마당을 두고 소유권 분쟁을 벌여야 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당황하게 하는 이치에 따라 싸움에서 헵번인 항상 열세였고 고양이 앞발과 닭 부리에 채여 마당 한 편으로 쫓기게 됐다. 안쓰러웠지만 해줄 게 없었다. 고양이를 혼내주기엔 몸 돌림이 잽싸고 닭들은 달걀을 제공하니 부모님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다. 어느 날 마당에 나가보니 도망만 치던 헵번이가 작은 입으로 닭 꼬리털을 무는 걸 봤다. 참다못해 물어버린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닭이 당황하자 그 뒤부터 닭들과 야무지게 싸우더니 결국 닭들이 헵번이에게 쫓기게 되었다. 고양이도 헵번이의 제법 용감한 모습에 더는 건들지 않는 눈치였다. 마당을 풀어둔 닭들의 꼬리털이 듬성듬성 빠져 있는걸 보며 난 헵번이의 근성과 자존심에 내심 흐뭇했다.




작년 늦가을 일을 끝내고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받으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아들 헵번이가 하늘나라로 갔어”라고 말했다. 지난주까지 함께 들판을 뛰놀던 헵번이가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주차장에 앉아있었다. 집에 내려가서야 실감이 났다. 늘 마중 나오던 길에 헵번이가 없었다. 아빠는 헵번이를 묻어준 장소를 알려줬다. 헵번이가 묻힌 땅을 만지며 “햅번아 나왔어”라고 말했다. 땅을 헤집고 나와야 하는데 결국 나오지 않았다.


헵번이는 내가 오기만 기다렸다. 백일휴가를 나왔을 때도 술 취한 새벽에도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가만히 땅에 귀를 대있다가 멀리서 들리는 발자국소리에 마당 앞 길가에 앉아 조용히 날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면 햅번이를 번쩍 들어 촉촉한 까만 코에 내 코를 부비며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내가 오지 않으면 늘 땅에 귀를 대고 있었을 햅번이, 집 안에 있으면 나오라고 1시간은 짖던 햅번이, 입버릇 같던 ‘헵번’이라는 두 글자가 입 밖에 뱉어짐이 점점 줄어드는 걸 느낄 때 허전하고 야속하기만 하다.


8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머물다 떠난 햅번이는 처음처럼 하나의 까만 점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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