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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Sep 07. 2018

방아깨비

방아깨비


2012년 여름, 군대에서 막 전역했을 때의 이야기다. 진정한 남자로 탈피했다 생각한 그때,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철든 척하며 지냈다. 그런 우리에게 용돈을 받는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의 마지노선이라 말할 수 있는 경기도에 끝자락에 위치한 안성은 뒤늦게 흙먼지 날리며 개발이 진행되었고 구멍가게만 즐비하던 곳들이 금세 세련 된 편의점으로 변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편의점은 철든 나의 친구들이 한 명씩 맡아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 역시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고 한적한 초등학교 앞 편의점에서 일하게 됐다.


전역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나는 편의점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해당했다. 빠르고 기민한 움직임과 ‘다 나 까’로 마무리되는 우직한 말투는 주인아주머니를 흡족하게 했다. 아주머니는 아르바이트생인 나를 두고도 매장에 자주 나오셨다. 편의점이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저곳 신경 쓸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오실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보여주기식으로 먼지도 없는 테이블을 닦으며 열심히 인 모습을 보였다.


 문제의 그날도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편의점 앞 초등학교는 단풍나무 가로수가 빼곡하게 심겨 있었다. 밤이 되면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편의점으로 가로수에 있던 벌레들이 몰려들었다. ‘띠링’ 종소리와 함께 손님이 들어왔다. 담배를 산 뒤 손님은 나갔고 아주머니는 손님과 함께 벌레가 들어오지 않았는지 매장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자 코너 쪽에서 아주머니의 비명이 들렸다.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그곳에 그 녀석이 있었다. 태양의 맛 썬칩 위에 족히 15cm는 돼 보이는 거대한 방아깨비가 앉아있었다. 그 녀석은 한낱 미물이 아닌 가로수를 다스리는 신성한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만큼이나 나 역시 그 녀석에게 놀라고 단번에 압도당했다. 하지만 연신 듬직함을 칭찬했던 아주머니 앞에서 함께 소리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있다” 연신 자신을 다독인 후 용기를 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왔다. 그 녀석을 조심스레 달래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미물이 아닌 신성한 존재인 녀석이기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놀란 나는 거칠게 빗자루질을 해버렸다.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녀석은 한쪽 발을 잃고 말았다. 


쓰레받기에 담긴 그 녀석을 밖에 놔주고 들어왔다. 바닥엔 그 녀석의 한쪽 발이 떨어져 있었다. 죄책감이 밀려와 내 몸을 덮쳤다. 죄스러움에 흠뻑 젖어 축축한 채로 의자에 앉아 그 녀석을 생각했다. 앞으로 비참한 생을 살게 될 것이다. 가로수를 다스리는 녀석이 시끄럽게 우는 매미에게 조용히 해라 호통을 쳐도 조롱하듯 매미는 더 크게 울었을 것이다. 머리를 조아리던 온갖 미물들도 그를 하찮게 여길 것이다. ‘라이온 킹’에서 무파사가 스카에 의해 물소 떼에 떨어져 죽듯 그 역시 동생이나 경쟁자에 의해 개미 떼에 떨어져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들에게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새벽마다 찾아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대화하다 가는 아빠 역시 군대를 헛 다녀왔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다. 나는 한낱 미물에 마음을 두고 있던 것이다. 훗날 저승에 갔을 때 “네 죄가 무엇이냐?”라고 물어 “방아깨비의 한쪽 다리를 잘랐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오히려 헛소리를 지껄인다 꾸중을 들을 만큼 별거 아닌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고 그 일이 점점 희미해져 “죄는 외면해야 잊히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띠링’ 종소리가 울려 손님에게 인사를 했다. 손님이 나간 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바닥을 보니 그 녀석이 있었다. 어두운 밤 불빛에 반응해 날아온 한쪽 발이 없는 방아깨비라 생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불빛에 반응한 게 아닌 온전히 나를 보러 온 것이었다. 그 녀석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외 발로 살아가야 한다. 비참한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러 왔다. 난 언젠가 개미 떼에 쓸려가 죽어버리겠지”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죄는 외면한다고 잊히는 게 아니었다. 죄는 상대방이 됐다고 할때까지 끊임없이 용서를 구해야 하며 용서하지 않는다면 죽는 날까지 사과하고 불편하게 잠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방아깨비는 6개월을 산다. 비참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녀석이 없어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들리고 온갖 미물들이 득실거리는 가로수 옆 카페에 앉아 오늘도 용서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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