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손톱을 깎았다. 사실 전날 밤에 깎으려고 했지만 밤에 손톱을 자르면 재수가 없다. 책상 위에서 개수를 세어보니 9개였다. 하나가 사라졌다. 신경이 거슬린다. 추측으로 오른쪽 검지손톱이 사라졌다. 고양이가 먹을 수도 있고 손님이 놀러 와 바닥에 있는 손톱을 발견하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됐다. 청소기를 돌려봤지만 손톱이 들어갈 때 또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루종일 손톱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하루틈에 손톱이 있었다.
겨울날 배달 아르바이트로 인해 몸이 꽁꽁 얼었다. 오늘은 유난히 추위에 떨었기에 집에 도착해 갈아입을 옷을 입고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노곤해질 때까지 몸을 녹이고 나왔다. 손이 쭈굴거렸고 그러다 손톱생각이 또 떠올라 짜증이 났다. 목욕탕에서 나왔다. 집에 가기 아쉬웠다. 지난번 친구들이 동네에 놀러 왔을 때 갔던 테이블이 많은 펍이 생각났다. 거기서 맥주를 시켜두고 책을 읽는 여자를 봤었다. 재미있는 편인 나는 유머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게 좋지만 내 시선은 구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여자에게 가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책을 한 권 들고 그 펍으로 갔다. 무슨 책을 가져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시바사키 토모카의 '곧 주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 그러다 '곧 주말'을 가져왔다. 시끄러운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때 어떤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단번에 지난번에 만난 그 여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거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했다. 지난번에 여기서 날 봤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의식하며 자주 쳐다봐서 알아본 걸까? 걱정이 됐다. 나도 사실 지난번 당신을 봤었다고 얘기했다. 여자는 내 말에 관심없는 듯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 여기서 책을 읽는데 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화장실을 가다 마주치면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펍에서 시끄러울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자는 대뜸 마주편에 앉아 턱을 괴고 무슨 책을 읽냐고 물어봤다. 일본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루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때 무슨 책을 읽었냐고 물었고 그녀는 시집을 읽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오늘은 손톱달이 선명하게 떴고 누군가에게 전화가 올지도 모르니 고맙다고 말할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기분이 나쁜 건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수습이 하고 싶어졌다. 주말저녁 서스펜스는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지난번 당신을 봤을 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 목욕탕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펍에 들려 책을 읽는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다. 덕분에 손톱달이 뜬 지도 몰랐는데 집에 가는 길에 달을 보겠다고 얘기했다. 사라진 손톱이 또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에게 나의 손톱에 대해 얘기했다.
어제 손톱을 깎다가 검지손톱을 잃어버렸고 그 이후에 손톱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어쩌면 하늘에 떠있는 손톱달이 내 것일지도 모르고, 우리 집에 쥐가 있어 내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해 나인 척 다닐지도 몰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흥미로운 듯 손톱을 먹고 변한 쥐가 당신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체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분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다. 일이 잘못되면 펑하고 연기처럼 사라지면 그만이다. 그녀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맥주와 땅콩을 먹었다. 우리는 취했고 달이 잘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맥주를 더 먹자고 말했다. 그녀는 나와 있는 게 재미없다며(자존심이 상했다) 싫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서며 반복되는 지루한 나날에 재미없는 하루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손톱달은 내 머리 위에 떠있고 나는 그리고 오늘은 펑하고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