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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Jun 30. 2023

가치는 내가 매기는 것

내 가치는 내가 소중하게 다뤄야

지난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엄마가 70번째 생신을 맞았고, 미국에 사는 언니가 한국에 혼자 여행을 나와서 이참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모두 참여하는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각자 가정을 꾸리며 가족이 늘었기에 안 그래도 대가족인데, 그 수가 더 많아졌다. 20여 명에 가까운 인원인데 이 정도면 한 조직이다. 그런데 다녀온 나의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이것저것 챙기느라 고단하고 지쳐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어질지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다시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만약 가족이 아닌, 실제 조직이었다면? 

여행을 같이 간 가족의 세대수를 각 팀이라고 치면 7개의 팀이 함께 워크숍을 떠난거다. 먼저 워크숍을 가기 위한 기획을 먼저 할테고, 그 기획엔 가는 목적, 목표, 참석자, 예산 정도와 러프한 기획이 통과되고 나면 계획과 일정을 수립할 것이다. 또한 숙소, 교통편, 식사, 일정 등의 세부 계획도 세운다. 인원 확인을 시작으로 계획대로 움직이지만 계획이 살짝 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워크숍 기획을 수도 없이 해 보았지만 제시간에 정확히 맞춰진 워크숍은 없었다. 중간에 시간이 지연되든, 당겨지든, 순서가 바뀌든 계획이 틀어지는 건 늘 있었다. 그렇다고 워크샵이 망하진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 간다면 부족하거나 놓친 것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좀더 우리 회사만의 워크샵의 방법론을 만들어 갔다. 또한 워크샵을 가기 전 참여하는 부서간 소통과 기획의도, 목적, 목표 등을 미리 사내 메일이나 공지 등으로 알렸었다. 


다시, 가족여행으로 돌아오면?

회사에서 하던 기획만큼, 이 여행에 얼마나 공을 들였었나? 같이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 가족만의 여행에 대한 목적을 얘기하거나 진지하게 생각한 적 있을까? 일보다 내 삶에서 가치가 높은 일인데, 이렇게 대충 생각하고 가도 되는 것일까? 대충 생각하고 갔으면 결과에 대해 대충 만족하면 되지 않는가? 


내가 암묵적으로 생각한 여행의 목적은 '엄마의 칠순 축하와 우리가족 모두 즐겁고 안전하게 놀다 오는 것'이다. 이 여행의 목적을 일처럼 세우거나 공표하지 않았던 것은, 가족 모두가 이 여행의 가치에 대해 수준은 다를지라도 적어도 낮지는 않았을 것이며 각자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가치란, 사물이 지닌 쓸모이지만 나는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이란 뜻이 더 와 닿는다. 조직과의  관계에서 워크샵의 가치는 소통이나 단합이라면, 우리 가족여행은 가치가 좀 달라진다. 내 평생 가족 모두가 참석한 첫 여행이고 다시 이 기회가 올 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부모님이 살아 계신 기간 내에 할 수 있는 여행이니 그 남은 기간을 가늠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가치를 두고 목적을 생각하며 여행을 되돌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처음 가는 첫 '여행'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닐까? '여행'이라는 단어만 보고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여행하며 부딪히는 많은 상황이나 틀어짐에 스스로 지쳐 오히려 내가 스스로 여행을 망친 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내가 세운 목적, 가치와 상관없는 것이라면 그냥 제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기분 상할 필요도 없고, 기분이 상하고 힘들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거나 부탁하면 될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가치는 내가 매기지만, 내가 매긴 가치는 내가 잘 다뤄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결정한 가치를 왜 다른 사람에 의해 수준을 낮추는가? 여행하는 동안 내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좀 더 능동적으로 행동하거나 (내가 리더가 아니라면)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여행이 보다 즐겁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또한 여행이란 것은, 익숙한 공간(집, 회사)를 벗어나 낯선 장소로의 이동이다. 그래서 뇌회로가 다르게 흐른다. 낯선 곳에 가면 잠이 잘 안 오는 경우나, 같은 거리라도 아는 길보다 모르는 길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이 그렇다. 루틴한 일상보다 더 피곤하고 다녀오면 또 피곤해 진다. 어느 휴게소를 들릴지 의견이 분분하고, 체크인-아웃 시간을 지켜야 하고, 밥 먹는 시간, 속도도 다 다르기에 어디에 딱 기준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맞추어 통제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게 더 즐거운 여행이 될 확률이 높다. 워크샵을 떠날 때 여러 규칙과 기준을 늘상 만들지만 늘 마지막 건물을 돌고 나오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똑같다. 소등하지 않은 불, 켜놓은 에어컨, 놓고 간 물건, 맘대로 버린 쓰레기들. 이런 것들이 통제되지 않아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다. 패널티가 없는 한 지켜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하는 여행은, 나 혼자만의 가치를 포함해 함께한 이들의 가치도 포함된다. 그래서 나만의 감정으로 한번에 판단하기는 이르다. 적어도 나중에 한번 더 해보거나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눠봐야 그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다 같이 일한다고 해서 각각의 성취나 보람이 다르듯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은 나 개인만의 가치만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또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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