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과 일] 기준 없이 일 했던 지난 나의 10년
회사에서 하는 일의 기준은 '나의 상사'였다.
돌이켜 보면, 그 기준이 일의 기준인지 모르고 일했다. 당연하듯 상사의 지시나 기준에 내가 하는 일을 맞추었다. 대부분의 일의 시간도 상사에게 맞추었고, 가끔 내 생활도 그 기준에 의해 바꾸기도 했다. 그렇다고 비도덕적인, 불법적인 지시나 일은 없었다. 그 일의 속도나 완성에 더 의미를 둘 뿐, 왜 해야 하는지의 질문이나 의문은 많지 않았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의 상사도 자신의 상사에 맞추어 일을 했다. 내가 속한 지원본부의 본부장님 역시, 회장님의 지시나 말이라면 별이라도 따다 줄 정도로 열일 제쳐두고 그 일이 최우선이었다. 혹, 일이 부쳐서 지인을 만나면 친구도, 다른 회사의 지인도 대부분 상사에 맞추어 일 하더라. 어떨 땐 일의 기준인 '나의 상사'가 더 낫다는 안도를 가지고 일할 때도 있었다. 이런 환경에 이의를 제기 하는 이를 간혹 보아도 그것이 일의 기준보다 불합리한 일의 지시여서 그랬을 뿐. 그래서 당연하게 회사의 일의 기준이 '나의 상사'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일에서의 태도가 기준보다 방법을 더 우선하게 되었다.
일의 기준인 '나의 상사'는 답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속한 조직이 내가 입사할 때부터 이미 업력 20년차 기업이라 과거에서 이어져 온 답이기도 했다. 그래서 했던 일들을 조금 다르게, 혹은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고(다른 사람보다, 혹은 전임자보다) 벤치마킹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유나 기준에 맞추어 방법을 다르게 적용해 보는 것이 아니라 기준은 빼고 방법만 바꿔 다른 결과, 나은 결과를 바란 것이다. 그래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나 하면 그것 또한 운이었단 생각이다. 그때는 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시도한 것이 많았고,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겐 신선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호기심, 신선함에 의한 만족 정도이지 정말 감화되어 행동이 바뀌는 것은 따져보지 않았다. 대부분 교육 만족도 comment가 '좋았어요, 리프레쉬 되었어요'가 많았던 것이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경영자 조찬에 다녀오신 대표나 임원분이 무엇이 좋았다고 하면 그 무엇을 토대로 일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대표가 재직했던 회사의 교육 체계, 과정을 우리 회사에 맞추어 만들기 위해 그회사 교육담당자를 컨설턴트로 두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일의 이유보다는 빨리 컨택해 뭐라고 보고를 드리거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상사와 내가 일을 빨리 마치는 방법이었다. 임원이나 대표도 결국, '다른 회사도 하니까', '이게 트렌드라니까', '반응이 좋다니까'라는 이유일 뿐, 그래서 그 일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직원에게 반응이 좋으면 사업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그 '왜'를 설명하고 지시하진 않았다.
그래서 점점 조직의 일이 '상사'의 기준대로 돌아가고 점점 조직은 '상사'에 맞추어 일하는 방식에 길들여져 갔다. 회사에 오너리스크가 터진 다음날 나의 상사들이 '오너'만 바라볼 뿐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기준보다 방법을 우선한 것은, 누구나 그런 환경에 놓여 있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군가 그렇게 시키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조직의 모든 일을 대부분 같은 방법으로 배워서 우리가 하는 일이 사업, 고객, 시장의 이유보다는 그 일을 했던, 그 일을 받았던 자신의 상사가 기준이 되지 않았을까?
누구도 먼저 그 일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이 사업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배우지 못한 것처럼, 나의 상사도 그들의 리더들이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배우지 못했다. 그럼 리더도 누군가한테 배우지 않았다. 배웠다면 일을 줄 때 'why'를 설명했을테다.
그래서 그렇게 스펙에 의존했는지도 모르겠다. (직급이)높은 자리에 있다면 적어도 나보다는 더 많이 경험하고, 좋은 학교 나왔으면 나보다는 더 많이 알거라는 생각이 일의 기준 없음을 합리화 시켜준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도록 늘 임원이나 대표는 하나같이 대기업 출신에, 유명 대학교 출신만 모셔오니 말이다.
다만, 내가 미안해할 사람은 따로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일을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다. (신입이든 경력직이든) 우리는 회사에 입사하면, 어떤 일을 맡을 때 누군가 써 놓은 기안서나 보고서를 보며 이런식으로 작성하면 된다는 가이드를 전달 받거나 준다. 전임자 만큼의 일을 당장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도 있으나 당연하듯 받아들이고 일을 하기에 일의 이유보다는 일의 방법을 먼저 생각하고 배운다. 일에서 요구하는 결과가 나의 상사의 만족이었으며 지시대로 일을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일한다. 그 방법을 똑같이 나의 후배에게 지시했다. 나 또한 후배에게 딱히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이유를 대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모름으로 인해 일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일을 준 것이 그 후배에게 하나의 방법이나 정답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답을 정답으로 알고 일하는 후배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방법보다 일의 기준을 우선하고 그 기준이 나의 상사(사람)가 되면 안 된다고 깨달았다.
앞으로 또 만나게 될 나의 후배들에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 적어도 이전과 달리 내가 속한 사업이 잘 되길 바라고 잘 되었으면 한다면 일의 기준, 일에서의 Why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만든 '나의 일의 기준'이 내가 참여하는 사업이 사업답게 돌아갈 수 있도록, 고객을 뭉뚱그려 말하지 않도록, 우리 고객을 위한 일을 조직 시스템에 녹여 일이 되도록, 사업다워 질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드는 것에 일조하는 것이다.
그 '일의 기준'은 어디에 적용해도 통하는 기준이어야 하고, 누구나 예외 없이 일관되어야 하며, 그 기준이 나의 직무상 책임과 연결되고 내가 속한 사업의 이해관계자에게 어떤 (행동의) 변화가 생겼을까를 기준을 통해 계속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일의 기준에 가장 최우선 기준은, 사업으로부터 시작되고 고민되어야 한다. 그 기준을 놓아버리거나 예외를 두면 다시 이전과 동일한 '상사'가 기준이 되어 나 또한 나를 기준으로 일을 주거나 지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