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과 조직] 인력 계획
사업계획의 부수적 업무가 아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매년, 사업계획 시즌이 돌아오면 의례적으로 HR부서가 다른 부서에게 인력계획에 필요한 기본 자료를 요청한다. 내용을 보면 현재인원, 필요인원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 인원에 대한 판단은 각 부서의 목표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일단 취합해서 보고하면 윗선에서 줄여라, 많다 등의 답이 나오면 그 결정에 맞춰 인원을 조정하고 통보할 뿐, 설득하거나(생떼든 뭐든) 사업이나 고객의 변화를 거론하며 결정을 재고해달라 요청하지 않더라. 매년 인력계획이 수립되었음에도 사업계획과는 다른 프로젝트, 또다른 투자들이 시행될 때가 더 많았으니 인력 계획에 의해 증원이 되었다기 보다는, 갑작스런 계획으로 늘어난 자리에 일을 정하고, 일이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부서가 하는 업무도 가져오며 자리를 만들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규모에 비해 사무직이 상당히 많아졌고 그 사무직 중에서도 영업부서 보다는 지원부서의 인력 규모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매번 이런식으로 계획이 수립되니, 정확한 인원 산정이라는 게 결국 과거의 기준에 맞추어 퇴사한 직원이 있으면 그 자리를 채우는 충원 정도의 인력 계획이고, 그 계획대로 충원된 인원의 합이 부서의 필요인원의 기준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5년 전엔 2명이던 인력이 5년 후 4명이 되어버린 팀에, (어떤 이유였는지 찾지 않고) 4명에서 하던 일이지만, 이제 매출이 줄었으니 3명이면 할 수 있지 않느냐란 물음에 아무렇지 않게 또 받아들여 인원을 줄이고(다른 부서로 재배치하거나, TO가 나도 채용을 하지 않는 등으로) 거기에 맞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제대로 된 인력계획일까란 의문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매출은 줄고 이익도 줄어 인력구조를 조정해야 상황에서 인력 재배치나 구조조정은 쉬울까?
그렇지 않다. 사업에 맞는 인력 구조가 어느 정도인지, 그것이 적합한지 누구도 따져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원은 빠져 나가도 일은 줄지 않으며, 하기도 하지 않기도 모호한 일들 투성이가 된다. 인력계획 또는 관리란 것이, 사업에 꼭 필요한 일을 먼저 정의하고,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잘 세팅해야 하는 것임에도 매년 숙제처럼 인력 파악만 하게 된다. 그런데 인력 구조조정을 할 때 인원이 줄어든 것 빼고 남겨진 문제를 단 번에 해결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의 조직 구조, 프로세스, 인력의 재배치, 사내 정치질, 구성원의 감정들이 자꾸 걸림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숙제처럼 인력 계획을 짜는 것보단 조직이 변화를 겪는 모든 상황에 따라 인력 계획을 항상 우선에 두고 늘 적절한 해결책이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채용이 우리가 원하는 사람보다 아닌 사람을 제외하는 방법으로 채용이 이루어 진다.
인력 계획 = 채용 계획이 아니라 고객처럼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발굴, 유치, 유지하는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으로 양과 질을 함께 높이는 모든 활동이다. 그때 닥쳐서 진행되는 활동이 아닌, 사업 계획의 한 부분으로서 구성원 모두가 공감해야 하는 중요한 이슈이다. 새로운 사업이 진행되어 갈 때 쯤 그 일을 할 사람을 채용하지 못해 사업에 지연을 주거나 일이 되지 않는 것은 막아야 한다. 또한 모든 직무를 대상으로 인력계획을 수립할 필요는 없지만, 사업에 핵심이 되고 앞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한 직무라면 우선적으로 인력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야 한다. 물론 단기적으로 필요한 인력에 대해서는 계약직이나 내부직원 재배치를 통해 계획을 수립하기도 한다.
그래서 HR이 사업 전략, 사업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해를 구해야 하며 전략수립 부서나 직책자들과 여러 미팅을 통해 인력계획의 우선순위의 요건을 정하는 것이다. 요건은, 사업 전략 상 핵심 직무는 무엇인지, 어떤 직무의 인적 역량이 변화될 필요가 있는지, 어떤 직무의 인력 규모가 줄거나 늘어날 변화가 있을 예정인지, 어떤 직무의 충원이나 증원이 어려운지, 새롭게 필요한 스킬이나 지식을 가진 직무는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인력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한 직무마다의 책임과 역할을 통해 현재 인력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수준이 적정한지, 혹은 과부족은 없는지 파악하며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맞추어 빼거나 추가하는 것이다. 여러 요건들을 중심으로 향후 발생될 혼란이나 문제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는 무엇이며 내부 재배치나 신규 채용을 통해 어떤 방법이 예산, 시간에 적절한 방법인지도 함께 구상한다.
그런데, 인력계획에 있어 어떤 요건을 우선순위로 하는 것에는 결국 조직 내 여러 직책자들과 함께 협업해야 한다. 해당 직무의 직책자가 인력 계획에 대한 이해나 도움, 미래를 위한 준비 등에 소홀하면 결국 과거와 동일한 방법으로 밖에 운영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맡은 직무가 해당 사업의 꽃이라며 늘 사람 없다 징징대고 목소리만 크게 내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이 조직 내 인력을 방만하게 운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인력 계획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그 고민이 실행으로 이어지는 인력계획 프로세스는 결국 조직이 방만한 인력 운영을 지양하고 나중에 인력 구조조정을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