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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Apr 27. 2023

18시 퇴근해도, 일은 끝나지 않아

 우리는 퇴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일까

우리는 대부분 퇴근 시간에 맞추어 오늘의 일을 끝내려고 한다. 그래서 일의 노력이 퇴근 시간에 맞추어 있다. 18시에 맞추어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 노력은, 더 빨리 손을 움직이고 적게 대화하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보고 짜깁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방식보다 하던 대로 한다. 그래야 퇴근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고, 기존의 진행대로 하면 적어도 (내가 놀지만 않으면) 더 빨리 끝낼 수 있다. 물론 실수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더 좋은 생각이나 새로운 관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18시를 향해 9시부터 달리기를 한다. 그 생활을 금요일에 맞추어 월요일부터 이어달리기를 한다 아니 했었다.


가끔은 일의 원리나 이유보다 빨리하고 퇴근하기 위해 일할 때도 있다. 그럼, 집에 가기 위해 나는 일하는 것일까? 그럼 집은, 내일의 출근을 위해 거쳐가는 곳일까? 매일 18시 정각에 일어나 퇴근하는 나 또는 동료를 보며 '18시가 디폴트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다. 우리가 로봇도 아닌데 어떻게 매일 18시에 땡! 하고 일이 마쳐질까. 직장생활 3개월 이상만 되어도 일이 18시에 정확히 끝날 수가 없단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쳐낸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쳐낼까?

[쳐내다는 '깨끗하지 못한 것을 쓸어 모아서 일정한 곳으로 가져간다'는 뜻이라고 네X버에 나옴]

내가 하는 일은 깨끗하지 않은 것인가? 쳐내면 일이 한 곳에 모이긴 할까?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은, 조직의 문제이고 문제이기 때문에 쳐내는 것이 아니라 풀어야 한다. 그런데 푸는 시간이 다소 지연되어 18시 20분에 끝나거나 19시에 끝날 때도 있다(드물지만 17시 30분에 끝날 때도..). 그래서 쳐낸다는 말보단, 풀어서 해답을 찾겠다고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오늘 일 다 풀었(쳐냈)어? 못 풀(쳐내)면 내일 풀(쳐내)면 되지. 다르게 풀어(쳐내)볼까? 같이 풀어(쳐내)볼까?" 어감이 엄청 다르다. 나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집에 가면서도 일이 놓아지는 게 아니라 딴짓을 해도 자꾸 일이 떠다닌다. 풀고 싶은 문제는 더 잘 풀고 싶고, 싫은 문제는 풀기 싫지만 그래도 못 풀었단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일을 시간 안에 마무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풀기 위한 나 또는 동료와의 고민이나 생각이 쌓이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성이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전문성은 경험에 기반해서 쌓인다. 그러나 무조건 경험이 많다고 전문성이 높아지진 않는다. 풀어보는 경험이 얕고 낮으면 전문성이 깊지 않고, 당연히 실력도 늘지 않는다. 대신 푸는 경험이 깊고 높으면 전문성도 실력도 같이 높아진다. 누군가와 상의하며 푸는 문제가 많다면 당연히 경험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18시로 일이 맞춰진 나 또는 동료를 보며 느낀 또 하나는, 시간 안에 일 하기 위해 실수도 없고 처리도 잘 하지만 더 나아지는 것은 보지 못했다. 혹자는 '아직 (나는) 젊으니(시간이 많다) 혹은 (조직이) 달라질 게 없으니(더 한다고 뭐 있나)' 열심히 해서 인정이나 보상의 기대나 희망보다 하던 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간 훅 간다. 대부분 지나고 나서 '이룬 게 없네, 매일 루틴 한 일만 하고 있다, 성장이 없다'라는 볼멘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 조직에서 일을 주는 방식도 문제지만 나는, 오히려 일을 하는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일이 나에게 오지만, 내가 한 일은 회사의 일이 되어서 다시 나에게 온다. 물론 왔다가 안오는 일도 있다. 그렇다고 그 경험도 없어지진 않는다. 자꾸 했던 일들과 비슷한 일이 온다. 잘하면 더 어려운 일, 수준 높은 일도 오지만 못하거나 그냥 보통이면 그 수준을 초과하는 일은 오지 않는다. 풀기 어렵고 난해한 일은 잘하는 직원한테 줘도 어려운데 왜 굳이 고만고만한 수준의 직원에게 줄까? 잘하거나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갈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치다.  

출처 :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

https://infuture.kr/m/1886


그래서 맨날 궂은일(속된 말로 짜치는 일)만 온다면, 생각해 봐야 한다. 더 잘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렇다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 줄 수 없는 일만 오는 건 아닌지. 물론 모두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모두 처음부터 잘 못하진 않는다. 그런데 '하던대로 하지, 뭐'라는 생각이나 태도가 전체가 되어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느껴지면, 그때부터는 나의 잘못이다. 흔히들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한다고 하는데, 지금 하는 일을 프리랜서가 되어 한다고 할 때 월급만큼 벌 수 없다면.. 그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당연하게 받는 돈이 정말, 당연하리 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일의 끝을 18시로 맞추지 말라 얘기하고 싶다. (야근 방지로 PC 오프제를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PC는 끄더라도 나의 일에 대한 온기는 남아있기 마련이다.) 일에 대한 원리를 고민하거나 원리를 모르겠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생각하고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을 풀어나가면 좋겠다. 적어도 오늘 한 일의 고민이나 복기, 회고를 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일 잘하는' 사람이나 '일 잘하는 태도'는 갖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났던 전문가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회사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출 수 밖에 없지만, 회사의 시간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노력은 내가 만들 수 있으니 대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커리어를 다시 고민하며 느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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