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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Sep 10. 2021

장기근속이 진정한 경력이 되도록

HR 다시보기

우리 회사는 매년 9월, 창립기념식을 진행한다. 기념식이라고 해봐야 외부인을 초청하는 게 아니라 좀 간소하지만, 나름 엄숙하다. 국민의례, 창립 동영상 시청, 장기근속 5년/10년/15년/20년 시상, 모범/공로상 시상, 대표이사 기념사, 기념촬영 순서로 진행된다. 여타 회사와 별다른 차이는 없다. 매년 똑같이 진행되던 이 행사에 'why'의 물음표를 던진 건 작년 코로나로부터이다. 창립기념식 행사의 목적이 '축하'라고 생각하는데 상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축하보다는 행사 진행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오와 열을 맞추는 것, 우렁차게 인사하는 것, 수여의 타이밍을 준수하기 위한 행사 진행에 더 집중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물론 과거의 방식대로 이어만 가는 행사에 원인이 있겠다. 그것을 진행하는 나에게도).



행사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장기근속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조직이 연공 중심이던 시절 근속에 대한 처우를 위해 만들었겠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장기근속에 대한 시상이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쩌면 그 고민의 지점은, '그냥 이렇게 금만 주면 끝인가?'이다.

 

5년, 10년, 15년, 20년 일했다고 이 직원들이 과거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가? 혹은 과거에 비해 성과를 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비싼 순금을 부상으로 제공하면서 속으론 탐탁치 않아함을 숨기며 치하하는가? 현재 나의 조직은 고직급화로 역피라미드의 구조인데, 이런 경우 이런 장기근속은 그 사람의 성과보다는 오래 일한 것에 대해 합리화를 시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과는 상관없으니 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세요"


5년, 10년, 15년, 20년 일하는 동안 주변의 동료가 바뀌고 하루아침에 누군가는 거리로 내몰리며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회사 곁을 떠난다. 그 안에서 구성원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지속하는 것은 하루하루의 인내와 결심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조직의 변화 사이클을 이겨내 가며 현재의 조직이 있기까지 적어도 희망과 가능성으로 숱하게 대표이사가 바뀌어도, 사명이 바뀌어도 영속할 수 있는 내부의 힘이 장기근속자에게 있는 것 아닐까?



오랜 기간 동안 현재의 우리(=조직)가 있기까지 많은 노력을 해 온 장기근속자분들. 장기근속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어도 문득, 이분들은 스스로의 커리어나 전문성에 만족할까? 10년, 20년을 지나오면서 회사로부터 정확히는 회사의 업무를 통해 얻은 자신만의 커리어나 전문성에 대한 만족 말이다. 일을 통해 쌓아 올린 스스로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본인만의 특별한 가치는 무엇인지, 그 가치가 설령 크지 않더라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고생했어요',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세요'라는 인사 외에 '지치지 않는 비결이 궁금해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어떤 성취가 기억에 남으세요', '업무, 커리어 대한 루틴은 무엇인가요?'라는 말을 질문한다면, 스스로의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담당자인 내가 장기근속에 대한 관점과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을까?



*출처 : 픽사베이

가끔, 휴일에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밀린 업무를 정리하다 보면 이런 시간이 평소에도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아까운 연차를 사용하는 것 말고 회사가 나에게, 그동안 해왔던 업무를 정리하고 스스로 피드백 보는 시간을 주는 것 말이다. 진행한 무수한 업무에 대해 정리와 피드백을 5년마다 적용해 본다면 개인에게 그리고 조직에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예전에 안식년을 기획할 때 육체적 '쉼'에만 초첨을 맞추었는데 다시 기획한다면 직장은 나가지 않으면서 해왔던 '업'에 대해 쉼을 가지고 정리해보는 시간을 직원들에게 제공해 주고 싶다. 


본인이 지난 과거 동안 수행했던 중요한 task를 쭉 나열한 후 각 진행한 업무의 목적, 목표, PDCA, 성과, 개인적 성취를 적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다시 한다면 어떻게 보완, 발전하고 싶은지 적어보는 것이다.


한 문장을 쓸 때 쉼표를 어느 곳에 찍을지에 따라 문장에서의 의미와 강조가 달라지 듯, 우리의 경력도 마찬가지다. 그 쉼표를 어느 지점에 찍고 잘 정리하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전문성이나 커리어가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찍고 난 다음의 내용은 궁금해진다. 개인 코치의 말처럼 '재미'가 없으면 그다음에 오는 '행복'도 '만족'도 올 수가 없다. 이런 쉼표는 루틴한 회사의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힘과 업력높여 줄 것이다.



조직도 개인도 스스로 학습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그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그 불행으로 또 누군가는 동료의 곁을 떠나거나 잃게 된다. 5년마다 주기적으로 순금 부상과 함께 과거의 시간을 금으로 만들어 주는 조직 또는 담당자의 기획이 함께 하면 좋겠다. 적어도 과거의 실수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 말이다. 반복하지 않는다는 생각의 중심에 조직도, 개인도 함께인 것이다. 한 조직에 머물며 오래 일한 직원들에게 축하 외에 그동안 본인들이 했던 업무에 대한 정리와 스스로의 피드백 시간을 주는 것. 학습하는 조직은 이런 조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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