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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Oct 19. 2021

자취방

15년도 10월 6일 作 산문

  자취를 하자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은 언니였다. 자취라니, 생각만 해도 멋졌다. 완전히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일정 기간 동안은 내 집이 생긴다는 소리였다.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벌써부터 자취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언니와 나의 책상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방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나란히 옆 자리에 앉아있던 언니는 책장에 손가락을 가져가 줄을 긋는 듯이 왔다 갔다 하며 적당히 메모할 만한 노트를 찾았다. 두꺼운 영어 전공 서적과 끝이 닳아서 뭉툭해진 노트 틈바구니에 손바닥만 한 노란색 옥스퍼드 메모장이 껴 있었다. 아무 데나 빨리 적어보라고 내가 재촉하자 언니는 그걸 꺼내어서 낙서가 되어있는 앞장을 후루룩 넘기고 중간부터 펼쳤다. 책상 구석으로 치워진 너덜너덜한 신문지에는 펜으로 엑스 표시가 잔뜩 그려져 있었고,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펜으로 종이에 빠르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압력밥솥, 책상, 의자, 이불, 수저…….”

  언니는 굳이 입으로 되뇌면서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내가 중간에 껴들었다.

   “베개는?”

   “이불에 포함된 거지. 헷갈려. 말 시키지 마.”

   “적고 있으면서 뭐가 헷갈려? 적은 거 보면 되지.”

   “아, 진짜! 조용히 하라고.”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자기 언니와 자취하고 싶지가 않아져 버렸다. 혼자만 즐거우려고 나를 이용하려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계속 중처럼 중얼중얼 혼잣말하더니 “그리고 또 뭐가 있지?”하고 말을 걸었다. 기분이 약간 상한 터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언니가 어디까지 적었는지 듣지 못했다. 내가 아무 대답이 없으면 언니는 또 별 것도 아닌 일로 꽁하게 군다고 여길 것이다.

   “어디까지 적었는데?”

  간신히 자존심을 버리고 언니 말에 대꾸를 했다. 언니는 한층 더 명랑하게 적은 것을 읽어주었다.

   “압력밥솥, 책상, 의자, 이불, 수저, 그릇, 옷장, 컴퓨터.”

   “음……. 컵?”

   “어, 맞아! 컵. 그럼 물통도 있어야 돼.”

   “물은 끓여 먹어야 하지?”

   “아! 주전자도 필요하겠네, 그럼. 또 뭐 있지?”

  기분은 도로 명랑해졌다. 다시 자취에 필요한 살림을 생각해내는 데 골몰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 자취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언니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나는 학교까지 매일 통학하는 일이 힘들다는 변을 내세웠다. 사실은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하면 다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누가 모를까? 언니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직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아직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던 학원에서 중학생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나면 옮기려는 생각이었다. 계약한 날짜도 다 되어가는 마당에 도시로 나가서 취업의 폭을 넓히고자 마음이 더 급하게 돌아가는 사람은 언니 쪽이었다.


  저녁시간, 텅 빈 밥그릇을 앞에 놓고 앉아서 언니는 다시 자취를 할 거라는 의사표시를 엄마에게 전했다.

   “그런데 너희들 자취하려면 밥도 다 해 먹고, 반찬도 해 먹어야 하는데……. 엄마한테 해달라고 할 생각하지 마라. 다 그런 것도 배우려고 자취도 해야지, 그저 컸다고 나가서 살 생각에만 빠져 가지고…….”

   “그게 뭐 어려운가? 우리도 다 해먹을 줄 알아, 엄마. 그리고 내가 말했지? 통학하면서 길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렸는지, 전부 다 합치면 하루에 거의 6시간을 길 위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무 시간이 아까워.”

  시간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엄마도 아무 소리하지 않았다. 내 얘기가 끝나니까 언니도 당사자로서 할 말을 꺼내놓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찾아봤는데, 정말 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더라. 여긴 시골이어도 너무 시골이야.”

  엄마가 언니 말에 끼어들었다.

   “그럼 거기 가서는 있어? 찾아봤어?”

   “있어요. 벌써 세 개나 찾았어.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랑 내고 연락 기다리고 있지. 한 군데는 면접 보러 오라고 그래서 사실 내일모레 가봐야 해.”

   “벌써 이력서 냈어?”

  엄마가 아니라 내가 놀라서 한 소리였다. 자취가 확정이 아니라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언니는 내려놓은 젓가락을 다시 들고 감자볶음을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이 아주 태연해서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자 언니도 우물우물 감자를 연신 집어먹으며 바보처럼 ‘흥흥’ 웃어댔다.

   “참나~ 지들끼리 다 정해놓고 뭘 물어본다는 거야?”

  엄마의 말에 나는 잠깐이지만 긴장이 됐다. 하지만 엄마도 우습다고 여길뿐인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개수대로 나르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를 도와 반찬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언니는 그새 감자볶음을 싹쓸이해 버렸다.


  엄마의 암묵적인 동의를 받아내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취는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일모레 1시까지 미팅 있으니까 먼저 거길 들른 다음에 집을 알아봐야 해.”

   “나도 같이 가는 거야?”

   “당연하지. 인터넷으로 방 있나 알아보자.”

   “요즘은 많을 걸.”

   “그래도 좋은 데 나가기 전에 빨리 구해야 돼.”

   “그럼 얼른 켜봐.”

  자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일종의 망상 정도로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꽤 오래 마음속에 품어왔던 생각인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언니의 면접이 내일모레인데, 우리는 만 하루 동안 살 집을 구하기로 한 것이었다.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는 몰라도 은연중에 ‘이렇게 급하게 서둘러도 될까?’하는 의구심이 뻗쳐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분명 언니도 우리가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 테지만 모른 척하고 좋게만 포장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집을 구하는 동안은 뭔가가 새로워진 기분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 구실 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서였다. 돈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아둔 적금이 넉넉할 만큼 있었다. 또 언니가 금방 일을 구할 테니까 차후에 낼 방세도 미리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싸고 질 좋은 방, 또 학교와 직장도 가깝고, 주변 환경도 특별히 우범지역만 아니면 된다는 조건으로 각종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아! 손목 아파. 네가 좀 해봐.”

  저녁 내내 컴퓨터를 붙들고 앉아서 화면에만 눈을 고정하니까 조금 지쳐오는 것이 사실이었다. 집을 알아보면서 우리의 눈은 점점 더 아래로 낮아졌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 ‘오! 이 집 괜찮은데? 사실 베란다는 없어도 돼.’ 우리 대화가 들렸는지 엄마가 거실에서 빨래를 개다 말고 “방세를 그렇게나 받는데 그게 뭐가 괜찮니?”하고 나무랐다. “엄만 알지도 못 하면서, 뭘!” 내가 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해 버렸다. 그랬지만 첫날은 아무 성과도 없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언니와 면접을 보러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도시로 시외버스를 타고 나갔다. 전날 알아본 집 주소와 연락처를 휴대폰에 메모해놓고 먼저는 언니가 면접 볼 학원이 있는 동네를 들쑤셨다. 학교 앞 복잡한 학원가에 어지러운 간판들과 전신주에 치렁치렁 달린 전깃줄이 우리를 종일 길에서 헤매게 만들었다. 다리가 아파서 잠시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언니는 면접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초조한지 손으로 급하게 부채질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깥에서 서성였다.

   “언니! 잠깐만 쉬었다가 다시 찾아보자!”

  언니의 행색이 영 불쌍해 보여서 쉴 여유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불러보았지만 언니는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올려다보며 내 말은 듣지도 않았다. 나는 다리를 두드리며 물끄러미 계단 주변을 살폈다. 마땅히 할 일도 없이 앉아만 있으려니까 건물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괜히 민망해졌기 때문이다.

   “언니! 여기야!”

  계단 옆에 붙여놓은 상가 이름표를 읽다가 나는 기가 막혔다. 내가 들어와 있는 건물이 우리가 찾던 학원 건물이었던 것이다. 언니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우리는 층수를 확인하며 시시덕거렸다. 곧 문 앞에 다다라서 언니는 숨을 고르며 힘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아직 학생들이 학교에 가있는 시간이라 문 안으로 들어서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와 근처 시장 통에서 틀어놓은 뽕짝이 바람과 함께 불어 들어왔다. 언니가 “계세요?”하고 인기척을 내도 학원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고 썰렁하기만 했다. “뭐지? 안 계신가?”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돋우어 말했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미로 같은 구조의 학원의 한쪽 방에서 학구적인 인상의 뱃살이 두툼한 아저씨가 걸어 나왔다. 얼굴에 비해 너무 작은 안경을 쓰고 있어서 눈알이 살짝 튀어나온 듯이 보이기도 했다. 언니가 앞으로 나서며 “안녕하세요. 오늘 미팅하러 온 사람인데요.”하고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약간 혼란스럽게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아, 얘는 제 동생인데…….” “아아! 쌍둥이인가요? 아! 동생이라고 했지요? 너무 닮아서 쌍둥이로 보였어요. 그럼 동생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겠어요? 언니는 이쪽으로 들어오실래요?” 말투는 다소 느린데도 아저씨가 한꺼번에 여러 말을 꺼내어 언니와 나는 정신이 없었다. 언니가 ‘원장실’이라고 새긴 금속 팻말이 붙어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흘깃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고 웃었다.

  언니는 꽤 오래 면접을 보았다. 학원 커리큘럼에 대한 소개가 과반수였다고 돌아가는 길에 언니가 전해주었다. 그 외에 봉급이나 수업시간 같은 것은 전부 모호하게 설명해주어서 결국 정확한 이야기는 언니를 뽑기로 결정한 다음에 하자는 식으로 면접을 끝마쳤다. 나는 중요한 얘기는 하나도 안 하고 학원 자랑만 40여분이나 한 거냐며 투덜거렸다. 반면에 언니는 그 학원에 대해 좋은 인상이 박혔는지 내 말에 아주 동조해주지는 않고 집이나 찾으러 가자며 말을 돌렸다. 나는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 언니가 면접을 보는 동안 낯선 장소에 앉아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언니가 면접을 보지 않았으면 발을 디디지도 않았을 나와는 다른 세상에 내가 왜 가게 되었는지 생각하며 붕 떠있는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집을 소개해주러 나온 부동산 업자들이 생각보다 젊은 남자들이어서 나와 언니는 조금 부담이 되었다. 젊고 낯선 남자들의 승용차를 타고 또 우리는 전혀 가본 적 없는 동네에 조심스럽게 몸을 들이밀었다. 우리의 눈은 호기심과 불안함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신축빌라 특유의 먼지 냄새를 맡으며 남자들이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가 신발을 신은 채로 방바닥을 밟았다. 이 자체로도 어색함이 가시지 않는데, 언니와 나, 그리고 말끔하게 옷을 입은 남자 둘이 멀뚱히 동그랗게 서서 마주 보고 있었다. 나와 언니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능숙하지 못 한 사람들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어디서 본 것을 흉내 내느라고 변기 물도 내려 보고 샤워기와 수도도 전부 다 틀어보는 시늉을 했다. 난방은 도시 가스인지 심야전기인지, 가스 비는 얼마나 나오는지 물어보다가 창가로 다가가서 “창이 별로 크지 않네?”하고 중얼거렸다.

   “방에 비해 좀 작게 나오긴 했죠? 그래도 요새 다른 신축이랑 다르게 이중창이어서 보온이나 방범에 유리해요. 그리고 앞뒤로 건물이 없어서 창문 열어두면 해나 바람도 잘 들어오고요. 여름에는 에어컨 틀어두시면 시원하게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위를 보시면 천장도 다른 집보다 꽤 높지 않나요?”

   “이 정도가 높은 건가요? 저희는 지금 이 집을 처음 보는 거라서요.”

  언니가 천장을 보며 물었다. 남자는 “예. 아직 다른 집을 안 가보셨구나. 이 정도면 아주 탁 트인 거죠. 요새는 이런 식으로 원룸도 천장을 높게 해서 짓고 있어요. 다른 데 가보시면 확실히 틀리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

  남자의 말을 듣다가 나는 속으로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겠지.’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집에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해서 남자들과 헤어져 각자의 길로 가기로 했다. 얼굴이 좀 넙데데한 편인 남자가 우리에게 명함을 한 장 주며 꼭 자기들을 다시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하며 떠났다. 물론 우리가 가는 곳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려고 하기에 언니와 나는 두 남자를 떼어놓고 가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언니와 함께 있는데도 그들과 있는 내내 거북하고 불편해서 얼른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다. 서로 맞지 않는 이해가 있는 관계인 것을 그 남자들은 느끼지 못한 걸까? 남자들이 제시한 가격은 터무니없었다. 보다시피 학생인 데다 차도 없는 우리가 학교도 직장도 꽤 거리가 있을 만한 곳에 집을 사둘 리가 없었다. 남자들에게 당연히 원하는 조건을 설명해줬음에도 어설픈 저 부동산 신출내기들은 우리의 표정을 하나도 읽지를 못 했다. 아마도 그런 답답함이 남자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 가득 채워져 있었던 모양이다. 언니 역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서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남자들과 헤어지고 버스를 탔다. 그제야 우리는 속이 후련해져서 차창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다시 재잘거리며 말을 꺼냈다. 사실 우리의 목표는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였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거의 부합한 집이 내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한두 차례 더 좋은 집을 구할 때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할 계획도 있었지만 괜찮은 집이 있는데 일부러 차비를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급하게 집을 내놓은, 현재 세 들어 사는 여자에게 언니가 전화를 걸었다. 언니보다 한두 살 더 많아 보이는 여자로, 이미 학교는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함께 방세를 내던 룸메이트가 사정이 생겨 집으로 돌아가고 여자도 학원가에 위치한 고시원에 들어가기로 했단다. 학기 중간이라 집을 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내심 애간장을 태우던 차에 집을 내놓는다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자마자 우리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라며 새삼 신기해하며 기뻐했다.

  버스에서 내려 여자의 설명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갔다. 짧은 면 반바지에 안경을 쓰고 캡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뛰듯이 겅중겅중 걸어 내려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집구한다고 전화 주신 분들 맞으세요? 혹시 자매세요? 너무 닮았다!”

  여자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리 키가 상당히 컸다. 안경을 벗고 화장을 하면 꽤 예뻐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여자를 따라 그녀의 원룸에 들어갔다. 원룸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낯선 사람의 집에 들어간다는 거북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여자도 성격이 수더분하고 오자마자 더운 데 마실 것을 주겠다며 “주스밖에 없지만 괜찮죠?” 하는 말에 우리는 괜히 감동이 되었다. 집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처음 부동산 업자들이 데리고 갔던 곳보다 방 크기도 작고 천장도 확실히 조금 낮기는 했지만 아무렴 어떨까? 우리 수중에 있는 돈과 딱 들어맞는, 조건도 아주 괜찮은 집은 여기밖에 없었다. 학교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고, 아직 언니가 일할 만한 직장은 구하기 전이었다. 학교 주변이라 학원도 정말 많았다. 이 중에 한 군데 골라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언니와 나는 서로에게 반문했다. 우리의 마음이 이때처럼 잘 통한 적도 드물었다.

  여자가 건물 주인에게 미리 연락을 해뒀다고 했다. 정말 얼마 기다리지 않았는데 인상이 나쁘지 않은 50대 아줌마가 이마에 땀을 줄줄 흘리며 우리가 있는 원룸에 도착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세 가지 이해관계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여자와 아줌마가 맺은 계약서와 아줌마와 우리가 새로 맺을 계약서가 우리 네 사람 앞에 놓여 있었다. 여자는 친 이모라도 되는 사이마냥 능수능란하게 아줌마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계약했던 내용을 파기해갔다. 별 대단한 내용은 없었지만 처음 집을 계약하는 내 눈에는 대단히 신통해 보였다. 여자는 아줌마와 계약했던 기간보다 반년 정도 빨리 집에서 나가기로 했지만 바로 또 우리가 바통 터치해서 계약을 하게 되었으니까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보증금을 고스란히 주고받기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또 한 달을 다 채우지도 않고 나가는 것이니 방세를 다시 계산해서 이미 낸 월세 중에 얼마를 돌려받기로 여자는 아줌마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아줌마야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기는 했다. 여자의 말이 사실 룸메이트가 있었음에도 계약할 때는 혼자 살 것처럼 얘기를 해서 방세에 덧붙는 관리비도 한 사람이 더 들어올 때마다 만 원씩 붙게 되는데 여태껏 두 사람분의 관리비를 내지 않고 살아왔다고, 아줌마가 가고 나서 얘기해주었다. 우리는 여자가 내던 월세보다 만 원을 더 내기로 책정해야 했다. 그렇게 따져도 보증금이나 월세나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다만 나중에 여자의 내공이 깊은 수완을 들으며 ‘우리도 그렇게 할 걸.’하고 부러운 듯이 대꾸는 해주었다.

  여자는 우리가 요새 학생들과 다르게 참 착해 보인다며 이것저것 자취에 관련된 노하우를 가르쳐주었고 자기가 쓰던 신발장과 청소도구, 화장실 앞에 두는 러그 따위도 전부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 집이 갖고 있는 장단점도 가르쳐주었는데, 언니와 한참 살다 보니 여자는 대부분 장점만 부각해서 설명해줬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그 원룸은 우리의 소유가 되었고, 언니와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우리의 집이 생긴 것만으로 마음이 뿌듯해져서 영 나쁜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개강을 며칠 남기고 아빠의 다마스에 이삿짐을 실어 날랐다. 어둑해진 원룸촌은 낮에 본 풍경과는 달랐다. 아빠는 커다란 책상을 등에 업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옆에서 내가 만류를 해 둘이 함께 양쪽을 잡고 좁은 계단을 끙끙대며 올라갔다. 자취방이 3층이었으면 어쩔 뻔했을지 아찔해하며 2층이라는 위치에 대한 나름 만족스러운 평가도 내렸다. 아빠는 내가 그날부터 자취방에서 지내는 줄 알았던지 다시 조수석에 훌쩍 올라타자 뭐 하러 왔다 갔다 낭비하느냐고 한 소리를 하셨다.

  개강을 한 뒤에도 곧바로 자립을 하지는 못했다. 언니와 방학 끝마무리까지 다니던 김 공장의 일이 끝나지 않아 언니는 한 주 정도 더 남아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공강일 때에나 점심시간에 잠깐 방에 들러 쉬었다가 수업이 끝나면 도로 이천으로 돌아왔다.

  개강 첫날, 최초의 나의 집 문을 열쇠로 열어보았다. 많지도 않은 짐을 채 정리도 못 하고 엉성하게 꾸며놓아 안락함이라곤 요만큼도 없었다. 먼지는 폴싹이고 잠깐 틀어본 에어컨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숨 막히게 뿜어져 나왔다. 아직 식료품도 없어서 점심도 근처 김밥 집에서 사 온 김밥과 생수가 나의 만찬이었다. 쓸쓸하고 적막한 공간에 가만히 앉아 김밥을 우물거리다가 벌러덩 더러운 바닥에 드러누웠다. 해가 길게 드리운 공중에는 자잘한 먼지들이 떠다녔다. 따스한 햇살이 눈부셔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앞으로 이곳에서 언니와 나, 둘만의 공생이 시작된다. 언니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언니가 이번 마지막 학기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면, 우리는 또 바로 방을 정리하게 되는 걸까? 여기에서 언니와 나는 어떤 날들을 보내게 될까? 나도 이번 복학을 끝으로 아무 문제없이 졸업할 수 있을까?’


  개강한 한 주 동안은 그저 쉬어가는 휴게소 개념의 자취방이 언니와 합쳐지면서 비로소 제 기능을 되찾았다. 언니의 주도 하에 우리는 바닥과 벽, 창문, 창틀, 주방, 현관, 화장실을 쓸고 닦고, 몇 없는 가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대청소를 갈무리했다.

   “나 오기 전에 이런 거 다 해놓고 언니를 모셔왔어야지. 나 없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니까 언니랑 살지!”

  언니는 약 2~3개월 정도 가경터미널로 오는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곧 11월 즈음에 집에서부터 걸으면 1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 강사 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언니는 생활비를 아끼려고 대부분 걸어서 출퇴근을 했고, 10시쯤에나 끝나고 혼자 돌아오는 게 영 걱정되어서 나는 운동 삼아 마중을 나가곤 했다. 우리에게는 싸울 거리가 한참은 널려있었다. 마중을 오고 가는 문제, 식비 문제, 생활방식 차이의 문제, 각종 의견 차이들이 넘쳐났다. 그러다가도 언니를 마중 나가야 할 시간, 9시 반이 되어가는 시간을 초조하게 지켜보다가 나는 기어코 10분은 더 일찍 나갈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대학가의 밤은 술에 취해 유령처럼 떠돌며 시끄럽게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과 귀를 울리는 음악소리로 가득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세상을 등지고 걸음을 재촉해 기나긴 상가를 지나치다 보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나처럼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반가운 상봉 후, 우리는 사이좋게 걷다가도 별 것 아닌 시비에 투닥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언덕 꼭대기에 서있는 ‘대성빌’에 다다라서야 한숨을 놓았다.

  함께 산 회색 잠옷을 꺼내 입으며 서로에게 하루에 대해 물었다. 저녁을 못 먹은 언니의 밥상을 차리는 동안, 언니는 씻고 컴퓨터를 틀고 학원 업무를 보았다. 언니가 오기 전에 미리 컴퓨터를 실컷 해두고는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환한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다 잠드는 게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우리는 자취를 시작한 첫 학기보다 두 번째 학기는 좀 더 수월하게 보냈다. 그리고 두 번째 학기보다 마지막 세 번째 학기는 훨씬 완성도가 높아졌다. 이제 좀 자취가 뭔지 터득한 것 같고, 능수능란해져 가는 참이었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보냈다는 뜻은 아니다.


  계약했던 날처럼 계약을 파기하는 날에도 주인아주머니는 땀에 흠뻑 젖은 몰골이었다. 방에는 두 사람이 줄고, 딱 나와 아주머니 단 둘이서 얘기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은 일수를 계산해서 방세를 돌려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일부러 접대하려고 사놓은 주스를 꺼내며 한 잔 드리려고 했다. 

   “학생, 아냐! 나 지금 바빠서 바로 가야 돼. 내가 오늘 아니면 안 될까 봐 도중에 잠깐 나온 거야. 됐어. 두고 학생들 먹어! 그럼 다 됐지? 나 이제 가볼게!” 아주머니는 휑하니 떠나버리셨다.

   “언니, 계약 잘 끝냈어. 남은 월세 돌려주신대, 보증금이랑 같이. 주스는 드리려고 했는데 바쁘다고 그냥 가버리셔서 못 드렸어. 암튼 얘기 잘했어.”

  집으로 돌아오는 이삿짐은 언니와 아빠가 싣고 왔다. 남은 세 학기는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첨에는 ‘버리는 시간’이라던 통학시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나름대로 즐거웠다. 매일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표를 끊고는 했다.


  내가 졸업을 하고 나서 언니는 그곳이 지긋지긋했다고 말했다. 아마도 나의 공감을 조금은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때쯤에는 언니와 툭하면 시비 걸고 싸우던 -무수히도 많은- 어두운 나날들이 잊혀가고 있었다. 반대로 다른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처음 자취를 마음먹은 날, 하루 날 잡고 집을 구하러 발품을 팔았던 날, 계약서에 사인을 한 날, 때 빼고 광내며 집 청소한 날, 언니를 마중 가던 밤길, 공과금을 담당한 언니의 부재로 대신 납부한 어느 하루, 방학이면 홀로 자취방을 지키는 언니를 생각하며 지애와 잠들던 날들.

  그날들을 보내며 우리의 자취방은 점점 다른 모양으로 변화해갔다. 망상 속에 존재하던 꿈의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헛된 망상과 로망의 껍데기가 한 꺼풀씩 벗겨지며 마지막 결정체로 남은 것은 나와 함께 그 집에서 살아준 언니, 우리 언니였다.

 

   “수진아, 저기 봐! 저거 무지개 아니야?”

   “어? 진짜네? 아, 근데 너무 덥다. 여기 그늘에서 보자.”

   “사진 찍어놔야겠다.”

   “언니, 잘 찍혀? 내 건 잘 안 보여.”

   “난 찍혔어. 봐봐.”

   “아! 정말, 잘 보인다.”

  언니의 면접이 끝나고 부동산 중개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 어쩌면 좋은 집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2009년 8월 중순, 볕은 마냥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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