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호러? 미래? 호기심 완충 끝판왕 아닌가요?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많고 많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에 걸맞은 영화는 단연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에이리언> 시리즈이다. 에이리언 시리즈를 좋아하는 영화 팬들은 알다시피 <에이리언>의 1~4편까지는 전부 감독이 다르다. 때문에 네 편 모두 시고니 위버라는 여배우가 작중 주인공 역을 맡았음에도 작품의 지향점이나 세계관이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른 나머지 세 편의 감독들이 그리는 에이리언의 세계관이나 줄거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리들리 스콧 감독만의 무언가가 분명히 차별화가 되어 그가 감독한 에이리언 시리즈에 녹아들어있다. 리들리 스콧이 영화감독으로서 갖고 있는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다. 영화의 전문가도, 매니아도 아니기에 그가 대단한 비주얼리스트라든가 훌륭한 여성영화 감독이라든가 하는 전문적인 시각으로 에이리언 시리즈를 보았거나 평하려는 글은 아니다. 철저히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시리즈>가 이래서 좋았다!고 평하는 매우 개인적인 내용의 영화 리뷰이다.
<에이리언>과 비슷한 류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영화에도 꽤 관심이 많은 편이라 어려서부터 공포영화가 개봉하면 비디오를 빌리거나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거나 극장에서 상영하는 동안 꼭 한 번씩은 커다란 스크린과 사방을 꽉 채운 음향에 압도되어 감상하곤 했다.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비슷한 이유에서 판타지나 SF도 좋아하는데 이런 장르에서는 보통 현 시대가 아닌 가상 세계, 허구의 세계, 그래서 먼 미래이거나 먼 옛날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몸 담은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가 된다. 말 그대로 환상 세계. 몰입해서 감상한 뒤에는 현실감각이 잠깐 무뎌지고 붕 떠서 현실로 복귀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이 어떤 세계를 어디까지 구현해내었는가에 꽂힌 호기심으로 접하게 되는 장르가 판타지 영화이다. (물론 허구 세계를 통해 현실을 비판한다든지 현 시대가 가진 불합리를 극단적으로 과장해서 메시지를 담겠지만 각설하고,) 반면에 공포영화는 주로 우리 일상생활에 가까이 있는 요소를 끌어와서 가혹할 정도로 심하게 감정이입을 시킨다. 끔찍하고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들이 가까운 사람에 의해서, 아니면 생활에 밀접한 환경에서(화장실, 침실, 현관, 엘리베이터, 장롱, 슈퍼, 주차장 등등 장소를 가리지 않음), 아니면 사랑스럽다거나 편하거나 좋아하던 것들과 관련해서 이상한 사건과 무서운 일을 맞닥뜨리게 한다. 바로 여기 이 부분에서 호기심을 무지하게 자극 받는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일이, 어떤 방식으로, 누구한테 누가, 왜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거야? 그런 일이 일상에서 어떻게 벌어진단 말이야? 재미나게 친구들과 여행을 갔는데 왜 갑자기 살인자가 들이닥쳤다는 거야? 저렴한 집을 운좋게 마련했는데 거기에 웬 원한을 가진 귀신이 어떻게 나타난다는 거야?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 있는데, 귀신이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 거지? 놀라게 해서 죽이는 거야, 뭔 짓을 한 거야? 뭔 짓거리를 한 건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특히 주온은 귀신이 엄청 소름돋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생기긴 했는데 보고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는 걸까?)
에, 어쨌든 그래서 에이리언이 왜 좋으냐 하면, 상당히 영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마디로 온갖 호기심을 전부 충족시켜주는 영화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에이리언은 장르는 SF인데 여기에 하나를 더해서 호러를 함께 담았다. 배경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바로 미지의 세계, 우주!를 유영하는 미래시대의 이야기이다. 미래시대이긴 하지만 외계인과 물물교환을 하고 언어통역기를 쓰고 별들의 전쟁을 펼친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세계관이 아니라 현 시대에도 있을 법한 학구적인 인물들이 필요에 의한 우주여행을 하다가 지구로 복귀하는 스토리가 바탕이다. 마치 해저나 극지방을 탐사하는 연구원이 장소만 달리한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 점 때문에 오, 근 미래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군. 하고 쉽게 납득이 가 몰입감이 금방 나타난다. 이제 배경 설정으로 인해 이미 영화속 우주비행선에 탑승한 승무원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캐릭터는 입체적이고 현실감이 넘친다. 서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조금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도모하는 방향성이 엇갈리는 상황 등이 주어져 흔하디 흔한 작은 사회에 소속된 기분을 자아낸다. 사람들 저마다의 태도와 성향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조심스럽게 예측을 한다.
와중에 장소는 우주를 유영하는 최첨단 우주비행선 안. 해저나 극지방, 오지 탐사도 매력적인 주제이기는 하나 우주에 대적할 바가 못 된다. 우주는 사람이 기껏 해봐야 달 이상을 가볼 수조차 없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 머리 위에 늘 있는 곳이다. 실존하나 알 수는 없는 세계, 아주 매혹적이고 미스테리한 곳이 바로 우주이다. 작가는 오로지 상상력과 최신 우주과학 연구 결과에 기대어 배경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야 한다. 우주를 여행하는 최첨단 우주비행선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놀랍도록 섬세하고 세밀하게 구현해낸 <에이리언>의 배경을 보면 심지어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저건 실제야!' 너무 말도 안 되게 최첨단이어서 말 몇 마디나 손동작 조금, 아니면 사용자의 생각을 읽거나 인공지능에 명령한 대로 작동하는 우주비행선은 흥미롭기는 해도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에이리언>은 그런 조잡한 장난질을 해놓지 않았다. 기어코 우리를 지구로 귀환하는 시고니 위버의 우주비행선에 탑승시켜버리고 말았다.
사건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공격적인 생명체가 등장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생명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냅다 살육한다. 그것도 너무나 처참하게. 폐쇄된, 완전히 고립된 우주비행선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생지옥이 되고 유능한 승무원들은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해진다. 속수무책 죽어나가는 승무원들은 생존본능만 남아있고 생명체의 정체 따위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 살 궁리가 최우선이 된다. 어떻게 생명체를 몰아낼지, 혹은 없앨지,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꽂힌다. 그들의 위급상황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까지 전염된다. 저 망할 놈의 에이리언을 어떻게든 죽여버려!
여기까지만 해도 영화는 백점만점 호러영화의 최정점을 이미 쟁취했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반전'까지 꼬소하게 솔솔 뿌려놓았다. 승무원 중 한 놈이 요즘 말론 빌런, 예전 말론 엑스맨, 흔한 말론 배신자였다는 엄청난 카드를 패기있게 꺼내보인다. 이 부분에서 까무러치지 않은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 반전영화의 최고봉인 <식스센스>와 맞먹을 수준의 반전이었다. 그리고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시리즈에서는 이 배신자 AI 캐릭터가 매편 주요인물로 등장하는데,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마이클 패스밴더가 분한 배신자 AI 캐릭터는 상당히 매력적이므로 잼없없이다(재미가 없을 수가 없음). AI 캐릭터는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풀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역할로 적절히 활용되었다.
영화의 메시지가 특히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시리즈>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우주만물의 기원'을 찾는 것, 그게 바로 리들리 스콧 감독만의 특별한 <에이리언> 세계관의 요점이었다. 공격적인 산성 피를 가진 에이리언은 뚱딴지 같이 생겨나지 않았다. 기묘하고 끔찍하게 생겨서 그렇지 걔도 나름대로 탄생 비화가 있었다. 에이리언 얘는 숙주를 필요로 하는 기생 생물이다. 어떤 생물에 기생하느냐에 따라 모양도 가지각색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어떤 생물에 기생하든 본래의 숙주를 파괴하면서 적자생존식으로 무지막지 강한 지만 살아남는다. 얘는 너무 강해서 적응이 안 되는 환경이란 없다. 산소, 물, 불, 먹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일단 숙주만 찾으면 최강 병기로 탄생하고 온통 지 세상이다. 이런 짜증나는 생명체놈... 존재 자체가 짜증난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이 인간의 근원을 찾는 열쇠였다는 식으로 <프로메테우스>에서부터 이야기를 끌고 간다. 먼 미래의 인간은 우연히 인간의 근원을 가리키는 어느 한 별을 찾아내고 무병장수가 아니라 불로불사를 꿈꾸는 돈 많은 노인네의 꿈을 위해 '엔지니어'라고 이름 붙인 존재를 찾아 우주여행을 떠난다. '엔지니어'는 인간의 유전자 정보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엔지니어'의 언어를 익힌 AI의 통역을 통해 그들이 인간의 발생원이라는 의심을 확신에로 이끈다. 이때 셋으로 분류된 각기 다른 존재가 나란히 서면서 '인간 존재의 근원'보다 '존재의 이유' 혹은 '존재의 당위' 쪽으로 본질적인 물음을 담은 주제를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인간이 AI를 만든 이유란 뭐냔 말이야? 그럼 거기에 '엔지니어'가 인간을 만든 이유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름 영리한 논리를 펼쳤다. <프로메테우스>에서 AI가 인간에게 왜 자기를 만들었는지 묻는 질문을 하필이면 AI를 아니꼽게 보는 역할이 답하게 했다. 그는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었다!"고 건방지게 대답했고, AI는 대답이 신통치 못하여 빡친 나머지 '헛소리엔 매가 약'임을 굳게 신봉하고 조용히 골로 보내버린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을 시리즈물로 엮으면서 '인간은 어디에서 왔어?', '근데 왜 왔어?' 라는 본질적이고 궁극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물론 <에이리언>에 담은 사상이 그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날 것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존재 근원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품는다. 호기심은 자극할수록 알고자 하는 욕구를 절실하게 끌어올린다. 리들리 스콧은 보편적인 호기심을 주제로 구체적인 시각화를 펼쳐 내가 이제껏 믿어온, 보아온 신앙과 현실과는 대비되는 세계와 사상을 보여주었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우주만물의 근원과 존재의 이유는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는 닿을 수 없는 데에 있다. 그건 창조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만 보아도 (인간이 인간의 창조자가 아니라는 건 기정사실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얼마나 우매한 상상과 사상을 낳는지 논리적 개연성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없는 말들을 한다. 신이 있다는 둥, 없다는 둥 존재 유무를 말하고, 신이 인간을 지었으면 왜 방치하느냐는 둥 자기도 알 수 없는 말을 너무나 위험하고 쉽게 지껄인다. 리들리 스콧도 놀라운 지성과 상상력으로 존재의 기원을 찾아 아주 먼 우주와 먼 미래까지 탐사를 떠나왔지만 자기중심적인 발상에서는 1mm도 떠나지 못했고 결과는 뻔했다. 존재의 기원과 이유를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어서 그랬다'는 자기비관적인 결론으로 우울하게 빠트렸다. 리들리 스콧은 동생이었던 영화감독 토니 스콧을 잃었는데, 그는 자살했다. 부와 명성과 지성, 무엇 하나 갖추지 못한 것이 없으나 인생의 목적은 찾지 못한 탓이다. 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을까? 믿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닌데, 이 무수한 인간과 무수한 별과 무한한 하늘을 보면서도 하나님은 안 믿는 이유가 뭘까? 왜 자기를 지은 존재를 부정하고 배신하는 걸까? 부모를 배신하면 패륜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어리석은 짓이다. 너무 유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보이지 않는 걸 믿는 것이 맹목적이라서, 온갖 학구적인 이유, 가설, 추측, 추론, 증거를 들이대며 '우주만물'의 존재는 믿어도 그걸 창조한 하나님은 안 믿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연유에서 나는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시리즈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러영화를 보고 나면 찾아오는 크나큰 안도감은 내게 무척 진한 여운과 희열을 느끼게 한다. 그게 자꾸만 호러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지 않나 싶다. 내 세상은 여기에 있고, 내가 사는 세상은 실제로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우리가 아무리 해괴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 대상이 없는 불명확한 공포를 끌어안고 산다 하여도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들여다 보는 건 내겐 흥분될 정도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건 그렇고 마이클 패스벤더 멋있다. 백 번 봐도 백 번 멋있음.
데이빗과 월터는 주름이 있냐 없냐만 차이 있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1인 2역이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서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건 불가능(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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