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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Dec 13. 2021

정면대응이 두려운 변두리 인간들을 위한 영화 <변산>

영화는 플롯이 다가 아니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 포스터


정면대응



  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건 무슨 말일까?



  영화 '변산'은 따로 별점을 매기고픈 마음은 생기지 않는 영화였다. 개연성, 논리성도 희박하고 캐릭터도 일관성이 모자라고 주제의식도 결여되어 있다는 감상이 들었다. 그러나 주연배우 두 명이 워낙 호감 가는 배우들이고(박정민, 김고은) 스릴 있고 흥미진진한 모험 대신 헐렁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러 요소에 끌려 '변산'이 보고 싶었다. 영화적 짜임새는 그럴싸하면서도 엄밀히 보자면 사상누각이랄 수밖에 없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선미의 직업이 작가였다는 점, 학수의 장기가 글쓰기라는 점이 나의 관심사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경우인지 모르지만 나는 허구의 인물이라 하여도 성공한 작가로 성장한 캐릭터를 보면 사실 괘씸한 생각이 든다. 살살 배가 아파오기도 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작가를 꿈꾸고, 그러다 보면 성공과 실패 둘 중 하나의 길이 열리기 마련이지만 대체로 글로 성공해서 배불리 먹고 사는 인물은 실제 세상보다 가상의 인물 중에 훨씬 많다. 그럼에도 문학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면 우선 흥미가 생겨서 '변산' 또한 빈틈 투성이의 영화 구성에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선미의 대사 한 마디가 귀를 사로잡아 머리에 맴돌아서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앉게 되었다.



  선미가 학수에게 말했다.


   "너는 왜 네 모습을 정면에서 안 보는 거야!"


  그래, 여기에서 말하는 '모습'은 '문제'를 말하는 거였다. 선미의 대사는 학수를 향한 것이지만 듣자마자 곧바로 내 귓바퀴에 꽂혔다. 선미의 호통이 만만찮게 어려운 면접 압박질문 같았다. 의문이 들었다. 정면에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대학시절 문학강의 중에 교수님도 내 글을 여러 편 읽고서 사도가 아니라 정도로 걸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늘 그게 의문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정도로 가는 길인데? 나도 알면 그리로 가고 싶었다. 학수는 선미의 호통에 놀랐고 곧이어 문제가 정면에 나타났다. 선미는 이미 일전에 속앓이만 하지 말고 피하지 말란 조언도 해주었다. 이즈음 왔을 때에야 정면대응이 뭔지 힌트를 얻었다.


  그동안 '정면대응'에만 치우쳐서 생각했기에 잘 풀리지 않던 고민을 거꾸로 돌리자 이런 말이 나왔다. '두려워하는 것.' 내가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아는 게 '정면대응' 전에 있어야 할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는 오랜 세월 작은 나뭇잎 배를 괴롭히던 흉포한 바다가 여전히 집채만한 파도와 해일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것들을 손으로 세어보자니 꽤 많았다. 그 많은 두려움에서 피하기 위해 나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혐오하며 원인을 내쪽으로 화살표를 돌려놓은 지 오래였다. 그런 뒤에는 어떤 어려운 상황이나 수치스런 일들과 해결이 어려운 난제들을 수긍하고 낙담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때로는 합리화하고 때로는 자기를 기만하면서, 때로는 염세적으로 때로는 체념조로 모두 내 탓이라고 했다. 정면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돌아가는 게 편할 거라고 짐작해서 강박적으로 항상 원래의 상태, 늘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헝클어진 게 원래 상태라면 헝클어진 채로 영원히 가기를 바랐다.


  기대와 실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처럼 두려움의 반대편에는 소망이 있었다. 소망이 크면 클수록 두려움은 더 컸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믿음은 어둡고 부정적인 쪽으로 짙어졌다. 안 될 거라는 경우에 거는 예측이 잦았다.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화목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멋있는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부정적 예측을 돌아보며 나도 참 별 것 없는 갑남을녀였음을 알게 되었다.


  남들의 눈에는 타인의 무한한 가능성이 보인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재능과 소질이 무엇이든 해낼 만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내속에는 어둡고 음침한 괴물이 있다. 그는 끊임없이 한숨 쉬고 비관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문제였다. 그러니 나는 이게 최선이었다.


  주먹을 휘둘러 턱부리를 뭉개버리는 상상을 한다. 광대뼈가 으깨지고 주둥아리에서 부러진 이가 나온다. 터진 입안에서 핏물이 비어져나오고 멍든 눈은 알밤만하게 부풀어오른다. 속이 시원할 정도로 두드려 패준다. 비 오는 날 먼지 날리도록 패고 또 팬다. 하룻밤 가지고는 속이 덜 시원하다. 성이 찰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때리고 때려서 주먹이 까지고 까진 주먹으로 때린 데를 또 때린다. 지치도록 때리고 기운이 다 빠지고서야 그만 둔다. 그만 둘 수밖에 없을 때에야 놓아준다. 두려움을 향해 포효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다지도 힘이 없는 나라서 두려움보다 열망이 먼저 소멸할 것 같다. 선미와 학수는 두려움을 당당히 물리치고 앞으로 나아갈 동안 나란 인간은 어느 나락에 또 빠져 허우적대며 괴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어쩌면 우리의 소망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살아가는 것, 단지 이거 하나뿐 아녔을까? 모가지를 붙잡혀 아등바등 살기보다 저무는 하늘의 노을과 같이 잔잔하게 살기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눈을 부릅뜨고 거울 속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잔잔한 일상은 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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