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와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만큼 매혹적인 게 있을까? 안 볼 수가 없어 아무런 정보도 사전에 알아두지 않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출발한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현 상황을 타개할 국가기밀 프로젝트를 유능한 인재에게 맡기며 서사가 시작된다. 배두나가 바로 그 역할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 유능한 과학자는 감추고 싶은 사연을 하나 가지고 있다. 생물공학박사인 배두나는 달에 있는 발해기지로 가서 성분이 확인되지 않은 어떤 물질이 담긴 캡슐 샘플을 회수해오라는 국가적 임무를 받게 된다. 발해기지는 극비리에 과학 실험을 하는 기지로 배두나의 언니가 그곳에서 실험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배두나는 언니 죽음의 비밀을 캐기 위해 슬픔을 뒤로 하고 임무를 받아든다.
공유와 이준도 각자의 사연 혹은 명분을 가지고 군대원으로 임무에 함께 투입된다.
이 세 사람뿐 아니라 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야기의 흥미진진한 진행을 위해서는 등장인물의 특성이 매우 세밀하고 촘촘해야 한다. 캐릭터의 가정환경, 성격, 기질, 직업과 현재 처한 상황 등이 이야기의 전체 개연성과 맞아떨어지게 되면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기반한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흠뻑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고요의 바다>를 끝까지 보고 난 직후 포털 사이트에는 보란듯이 기사 헤드라인이 올라왔다. '<고요의 바다>, 해외에서 혹평 세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했다.
<고요의 바다>가 모든 면에서 실패한 건 아니었다. 딱 세 가지 정도는 괜찮았다. 세트, 소품, CG. 말하자면 미술팀은 굉장히 애를 많이 썼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미술팀이 해야 할 일은 다 했다고 봤다. 그러나 영화란 자고로 삼박자가 조화로워야 한다. 스토리(대사 포함), 배우(연기 포함), 비주얼(장면에 음악까지 포함). 그러니까 이건 영화는 아니고 드라마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넷플릭스가 지향하는 드라마는 흔히 TV에서 보아온 드라마 수준이 아니고 영화에 준하기 때문에 영화로 놓고 말하는 것이다. <고요의 바다>는 삼박자 중 딱 한 박자만 맞고 나머지 박자는 리듬을 이탈하고 말았다.
먼저 스토리를 보자면, 휴, 벌써 할말이 없다. 내가 본 건 고요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고 그냥 허세 가득한 제목 낭비뿐이었다. 제목을 이다지도 멋들어지게 뽑았으면 고요를 보여주든 바다를 보여주든 '고요의 바다'가 뜻하는 걸 보여주든 하나라도 제목의 의미를 되새김할 수 있는 전체 맥락과 스토리를 들려줬어야 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배두나의 사연도 공유, 이준의 사연도 별로 궁금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사연과 극 중 펼쳐지는 상황에서의 행동이나 태도도 모두 어우러짐이 없어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건 <고요의 바다>가 어느 한 길을 명확하게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였다. '암울한' 그림을 그릴지 '긴장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지 선택을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갈등하다가 암울하지도 않고 긴장되지도 않는 이도저도 아닌 사건과 상황이 툭툭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캐릭터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물들을 대거 투입했는데 그 사람들이 이야기 진행을 위해 꼭 필요했을까 한다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초반부터 의미 없이 등장하고 의미 없이 죽어나가는 캐릭터가 절반이었다. 그들이 뭘 위해 존재했고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영화에 등장한 이상 존재 혹은 부재는 작품 진행에 영향을 반드시 끼쳐야만 한다. 누군가의 존재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거나 누군가의 죽음이 꺼림칙한 암시로 쓰이는 정도는 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러나 초반에 죽어나간 인물들 대부분은 뒷 내용이나 전반적인 분위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서 그저 이 아무개, 김 아무개가 살았다가 죽었더라는 불필요한 장면 낭비에 불과했다.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가 상식적으로 우주에서 임무 수행을 한다면 이 정도의 인력은 필요하지 싶어서 때려넣는 식은 정말 아니올시다였다. 그래서인지 누가 죽거나 말거나 그다지 안타깝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다행이지도, 긴장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저리 많은 인간을 다 죽이고 주인공 배두나 하나만 살릴까?' 라는 심드렁한 의문이 쪼금 들기는 했다만 이 와중에 주인공마저 죽더라도 '그렇게 되었구나.' 하며 아무 여운이 안 남을 지경이었다.
배두나가 언니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자 우주기지에 갔듯이 극에는 미스테리 요소도 섞여 있다. 아마 <고요의 바다>를 끝까지 본 사람들은 언니가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시간을 버렸을 것이라 추측한다. 당장 발 닦고 자러 가고 싶은 마음 꾹 참으며 배두나 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고요의 바다고 뭐고 다 필요없어!! 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극 후반부에 생각지 못한 새로운 미스테리가 또 하나 던져지기 전까지는. 공유(또 공유), 박보검 주연의 <서복>이라는 SF 영화가 있다. 배두나 언니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테리한 캐릭터가 하나 더 등장하는데, 배두나와 새 캐릭터의 관계 구도를 보자니 <서복>의 공유와 박보검 관계 구도가 살짝 겹쳐 보였다.
암울한 쪽인지 서스펜스 쪽인지 갈등하던 찰나 미스테리와 드라마가 끼얹어지고 마는 작품 후반부에 가서는 이 흐물흐물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언제까지 참고 보아야 할지 힘에 겨웠다. 사실 극 초반부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대사와 설득력 없는 인물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억지 서사 진행이 자꾸 속을 얹히게 했지만 조금 더 보면 이해될 만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올 거라 기대하며 지켜 보았던 것인데 오히려 비하인드 스토리가 풀릴 때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설마 겨우 이것 때문은 아닐 거야. 이 모든 사건이 언니의 죽음 이후 완전히 망가진 인생을 살고 있는 배두나가 약에 절어 실재하지 않는 환상 속에서, 곧 '고요의 바다' 속에서 죽어가며 보는 픽션 속 픽션은 아닐까? 어쩌면 언니의 죽음에 가장 가까이 연루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은폐된 진실을 깨닫고 절망하며 스스로를 속이는,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달의 발해기지에 가서 임무 배치를 받았다는 거대한 망상에 빠져 살고 있다든가(셔터 아일랜드처럼..). 좀 더 이야기다운, 작품성 있는 스토리가 뒤에 있기를 바랐건만... 결론적으로는 한국 특유의 신파조 결말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스토리가 흐물거리니까 캐릭터도 삐거덕대고 어느 것 하나 안정감이 없어 보는 내가 다 불안불안했던 <고요의 바다>는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 적막 그 자체였다.
어떤 사람은 '시도는 좋았다' 정도로 좋게 이 작품을 포장해줄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이런 식의 시도는 흔하다. 비주얼이나 소재 등을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사용하는 시도는 아주 흔한 일이란 말이다. 서사를 치밀하고 단단하게 써보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극히 드물다.
한국에서 소재의 다양성, 인물의 다양성에서 깊은 고민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로 첫 번째는 철학이 천대 받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인 깊은 통찰과 고민을 우습게 보는 이 땅에서는 어떤 소재나 인물을 가지든 피부에 절절히 와닿는 그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가볍디 가벼운 유물론 환자들의 세상으로 치달아가는 걸 또 한 번 인식하게 해준 <고요의 바다> 미술팀 제작진에게 그나마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달 표면을 걸을 때 지구 1/6의 중력 표현을 오로지 연기로 승부 보신 거 맞을까? 맞다면, 정말 맞다면... 연기자들에게도 처량한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