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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Jan 07. 2022

경박한 사회와 사느니 죽는 걸 택한 <돈 룩 업>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 감상 리뷰 - 결말 포함



  책이든 영화든 괜찮은 작품을 만나면 그걸 보는 동안 만든 사람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기분이다. 만든 이가 담은 작품의 의도 파악이 놀랍도록 쉬워지며 그의 감정이 혈관으로 곧 져들어온다.


  <돈 룩 업>은 미친듯한 웃음과 분노를 유발했다. 이런 환장할 놈의 블랙 코미디를 다 봤나? 아담 맥케이 감독은 열이 받다 못해 폭소를 터뜨리며 "그래,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 안 보고 싶으면 위로는 시선 0.1mm도 주지 마!"라고 다소 유치한, 감정이 과잉된, 그러나 진정 강한 부정법으로라도 격하게 외쳤다. 강한 역설로 되려 모두가 '위'를 바라보길 간절하게 희망하면서.


  <돈 룩 업>은 최근 본 영화 중 최고였다. 메시지는 뚜렷했고 연출, 장르 선택은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효과적이었다. 연기와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등장인물과 장면이 의도대로 흥미를 일으켰고 빠른 속도감은 지루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번 비주얼과 분위기, 배우 인기로 승부를 보려는 어느 나라 영화계와는 질적인 차이가 매우 두드러졌다.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 할 때 이야기는 빛을 발한다. 누군가의 반발이 두려워서 다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지만, 비교적 미국은 자아비판의식이 얼마나 앞서 있는가를 <돈 룩 업>에서 확인하며 단순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를 폭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반성하고 성찰하며 통찰하는 자아비판적 시각으로 출발한다면 타인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다.


  미시간 주립대학의 천문학과 민디 교수와 그 밑에서 박사 학위 수학 중인 대학원생 디비아스키는 새로 발견한 혜성을 관측하 도중 혜성이 에베레스트산만 한 크기에다가 엄청난 속도로 지구에 날아들고 있다는 데이터를 얻게 되었다. 처음 발견자인 학생의 이름을 딴 디비아스키 혜성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는 약 6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충돌은 곧 지구의 종말을 예견했다. 상황의 급박함을 알아챈 박사와 학생은 글소프 박사의 도움으로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20분간의 짧은 대면을 가졌고 뉴욕 해럴드에 기사 제공, 유명 TV쇼 출연 등 정치계와 언론의 힘으로 사태 심각성을 널리 알리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미리 혜성의 궤도를 핵무기로 변경시킬 대안까지 가지고 갔지만 정치계는 이를 다가오는 선거에 맞춰 기득권 유지와 관련해서 이용하려 했고 기업은 혜성의 자본적 가치를 더 우위에 두고 이윤을 낼 황당한 대안을 들이밀었다.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받을 자극적 기사에만 열을 올렸으며 대중은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구분할 지적 민감성이 제로인 데다 똑한 양반들이 알아서 할 거니 내 일상만 침범당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재미없는 지구적 종말 상황은 매우 재미있게 흘러갔다. 디바아스키와 민디 박사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선동자라는 명목으로 격리를 당하기 일쑤였고 '종말'이라는 단어 앞에서 사람들은 여지없이 폭동과 난동을 일으키며 대책 세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치권은 매사 기득권에만 목을 매느라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현실을 호도했고 실제로는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사생활 스캔들과 정경유착은 기본이었다. 기업의 대표는 '사업가'란 호칭을 모욕이나 다름없는 말로 치부하지만 '장사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 영화에 대한 북미의 평가는 박했다. SNL 식 단편 유머를 억지로 장편 영화화했다며 폄하하는 불호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고 한다. 각본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완성되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영화 제작이 연기되면서 종 각본은 코로나 이후에 완성됐다고 한다. 감독이 각본을 쓸 때만 해도 있을 법한 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자 '시나리오대로 되었다'는 말 이상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전했다.


  유념해서 봐야 할 장면이 몇 가지 있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유명 TV 쇼의 한 코너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된 지구적 종말을 대중 앞에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된다. 시청률이 가장 높은 인기 프로그램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니까 현 상황을 가장 빨리 모두에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이론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 특성상 그들이 출연한 쇼는 무엇이든 가볍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서 모든 사건을 농담으로 소비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진행자들은 시종일관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의 발언을 농담으로 받아쳤고 두 사람을 캐릭터화 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다. 이런 저질스럽고 혐오스러운 상황에 몰린 디비아스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심지어 이 모습은 하나의 밈이 된다. 반면에 신경안정제를 먹고 비교적 침착함을 유지했던 민디 박사는 대중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그래 봐야 여성들의 성적 대상화가 되어 정치권과 유착관계가 깊은 기업의 광고를 찍거나 TV 쇼 진행자 중 한 명이었던 '브리'와 불륜을 벌이는 수준에 전락하게 된다.


  집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빠이며 천문학에 열성적인 학자로 평범하게 살던 민디 박사는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브리'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하며 침대에 누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한다. 민디 박사는 '브리'에게 사랑하는 개를 잃었던 경험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반면 '브리'는 민디 박사에게 자기의 화려한 이력을 줄줄 읊어준다. 그것으로 '상대방 알아가기 시간'은 마무리된다.


  두 사람의 불륜 행각은 민디 박사의 아내 '준'에게 결국 들통난다. '브리'는 민디 박사의 집에 갑자기 나타나 배신감에 흠뻑 젖은 얼굴로 앉아있는 '준'을 만나고도 죄책감은커녕 이골이 난다는 태도를 보인다. 지겨운 대사는 안 해도 다 아니까 관두고 어떻게 할지나 정하라는 말에 '준'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당신이 내게 가져야 할 죄책감은 너무 고리타분한 짓이니까 가볍게 넘어가자는 말을 하는 거야?" 정확한 대사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맥락의 대사가 나온다. (장면마다 대사도 매우 잘 쓰였다.) '브리'는 이 상황을 지루해하며 "이번엔 좀 다를 줄 알았더니 당신도 똑같네."라는 파렴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세 장면은 다음과 같은 현대의 몰지각을 꼬집는다. 진지함 자체를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 사람의 됨됨이보다 사회적 신분으로 판가름하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의 만연함, 허들이 낮아지다 못해 붕괴된 도덕적 잣대이다. 영화 플롯에 따라 지구와 혜성의 충돌, 곧 종말은 기정사실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위기이자 마지막 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지구의 종말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무서운 위기는 이미 닥쳐 있었다. 온 세계에 퍼진 바이러스 전염병처럼 사회를 병들게 하는 건 다름 아닌 현대인의 경박함이었다.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웃음을 크게 네 가지 경우나누어 본다. 유대감을 나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웃음, 유희를 즐기면서 재미를 느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웃음, 상황을 반전시켜 주의를 본질 밖으로 유도하려는 농담에 반응하는 웃음, 진지한 토론장에서도 농담거리를 찾는 경박한 웃음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웃음이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요구되고 있는지는 충분히 체감하는 바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양극성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매사 진지하고 심각한 경직된 사회와 한없이 가볍고 방만하여 기준이 될만한 선(線)이 희미해지는 사회가 항상 엎치락뒤치락 줄다리기 싸움을 하며 분쟁을 일으키곤 한다. 그렇지만 주로 후자가 '조롱하기 기술'로는 확실히 우세해서 '진지충', '오그라든다', '불편러' 따위의 신조어를 만들어 맹공을 가하는 쪽이 된다.


  '만약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가 한층 심화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의 답을 <돈 룩 업>이 말해준다. 본질적이고 진중한 의미 탐색,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현상 분석 같은 쓸모없는 짓은 전부 너드(nerd)에게나 맡기고 소위 깨어있고 앞서 나가는 트렌드 세터라면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대통령, 기업가, 유명 연예인, 그리고 추종자들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마지못해 현실과 타협한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 오글소프 박사도 유명 연예인의 인기를 힘입어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종말 소식을 전할 자리를 만든다. 어떻게든 정부가 아무 의미 없는 이권 다툼을 그만두고 하늘로부터 날아드는 종말 메시지를 올려다보길 바라면서 말이다.


  종말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 미국 정부의 방해로 마지막 남은 핵무기 발사 기지를 잃은 일행은 기업가가 제시한 황당무계한 대안책에 모든 염원을 내걸고 만다. 기업가는 혜성의 광물 성분을 분석한 결과 어마어마한 자본적 가치를 발견하고 우주 너머로 이탈시킬 수 없다며 새로 개발한 로봇을 보내 혜성을 쪼개어서라도 지구에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심적인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계획이 성공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지만 미국 정부와 거대 기업은 막무가내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영화 후반부에도 집중해서 봐야 할 장면이 몇 가지 나온다. 고향으로 쫓겨난 디비아스키는 동네 마트에 캐셔로 취직해서 일하던 도중 물건을 대놓고 강탈하려는 불량배 무리를 만나지만 그저 차분하고 심드렁하게 대응한다. 디비아스키의 태도에 호감을 느낀 불량배 중 하나가 그를 아지트에 초대한다. 곧 있음 온 세상이 끝날 것을 알고 있는 디비아스키는 더 이상 인생에 연연하지 않고 그의 말대로 아지트에 찾아간다. 그저 속없는 불량배일 줄 알았던 율이라는 소년은 예상외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고백한다. 마지막 때를 앞두고 천생연분이 된 두 사람은 '준'에게 사과하고자 찾아가는 민디 박사를 따라 그의 가족이 사는 집에 함께 간다.


  민디 박사는 기업가에게 '사업가'라는 호칭을 쓰며 그의 대안을 비판적으로 따져 묻다가 오히려 기업가가 개발한 고성능의 인공지능 분석 결과로 '홀로 고독하게 죽게 된다.'는 저주에 다름없는 예언을 듣게 된다. 민디 박사는 곧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TV 쇼에 출연해서 분노로 포효하며 카메라를 향해 직언을 날리지만 역시나 아무 소득 없이 고향으로 쫓겨났고 그제야 디비아스키와 함께 '준'을 찾아가게 된다.


  '준'과 두 아들은 민디 박사를 용서하고 함께 찾아온 손님을 집에 들인다. 뒤늦게 오글소프 박사까지 모두 모여 마지막 만찬을 나누게 된다. 유일하게 현실을 직시했던 현자 세 사람과 가족들, 율은 식사 전 서로의 눈을 맞추며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는다. 민디 박사는 식사 기도를 제안한다. 모두들 기도가 어색해 선뜻 나서지 못하는데 마침 독실한 신자였던 율이 손을 든다. 그리고 거기 앉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간절하고 진중한 말로 신의 은총을 빈다. 맛있는 음식과 뜻깊은 말을 한마디씩 나누고 곧이어 지구에 떨어진 혜성이 모든 것을 서서히 파괴시킨다.


  혜성 광물 채취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도중 대통령은 기업가에게 자기의 사인을 슬쩍 물어본다. 그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을 가진 무언가에게 죽임 당한다는 정보를 전해준다. 그 사이 이들의 프로젝트가 망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지구를 탈출해버린다. 우주선에 탑승한 기업가, 대통령, 기득권 세력은 냉동수면기를 거쳐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에 착륙한다. 새 행성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무리 둘러봐도 벌거벗은 노인네들뿐이다. 대통령은 듣도 보도 못한 처음 보는 생물에게 겁 없이 다가갔다가 쪼아 먹혀 죽게 된다. 나머지 노인네들의 운명도 거의 비슷해 보다. 공격적이고 호기심 강한 생명체는 처음 보는 인간 무리를 가운데로 몰아넣듯 다가온다.


  기업가의 데이터는 매번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혜성 광물 채취 프로젝트는 절반은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홀로 고독사 할 거라는 민디 박사는 사랑하는 가족, 동료와 함께 장엄한 죽음을 맞았고, 난해한 이름의 생물에게 살해당해 죽을 거란 대통령은 그대로 죽었다. 하지만 실제로 민디 박사는 삶과 죽음의 선택지가 있었다. 대통령이 우주로 떠나기 전 민디 박사에게 연락해 단 한 사람만 데리고 우주선에 탑승할 혜택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민디 박사는 죽음을 택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일축시켰다.


   '경박한 사회와 사느니 죽고야 말지!'


  신을 믿는 건 바보짓으로 여기는 최첨단의 시대, 그러나 신이 안 계시면 존재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그저 놀고먹고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면 가족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생명의 존엄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잠깐만 멈춰서 하늘을 보라. 생각에 잠겨라. 진지하게 사색하라. 세상을 이루는 무수한 존재를 느껴라. 원한다면, 지금처럼 <돈 룩 업>, 땅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살라. 그저 돈과 명품, 고급 주택이 내 손아귀에 떨어지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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