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한올, 한올 떨어진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가 상의까지 적셔 서늘해온다. 분주한 하루가 지나고 머리를 감은 뒤에야 이제 더 남은 할일은 없게 된다. 등을 벽에 기대고 휴대폰을 들여다 보다가 잠이 오면 그대로 이불로 몸을 싸매고 어둠이 재워줄 때까지 가만가만 이 생각, 저 생각을 떠올리며 시간에 스미면 그만이다. 하루가 가고, 한달이 그렇게 갔다. 그리고 한 계절이 지나고, 다음 계절이 온듯 스친다. 속절없이 날들이 지나만 가고 멈춰 서서 나를 관찰해주거나 살펴주지는 않았다. 나는 버스가 알아서 눈치껏 멈춰주길 기다리는 바보처럼 가만히 턱 괴고 슬픈 얼굴로 앉아 있었다. 괜히 설 것 같은 무언가가 다가오면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했다. '내가 기다리는 건 네가 아니야.' 그렇지만 내 옆에 잠시라도 앉아 있다가 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앉은 자리가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져서 내게까지 그 온기가 전해져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면했다. 내게 오는 줄 알고 날갯짓하듯이 인사하며 맞아주어도 무시하고 지나쳐 간 것들 때문에 너무 아팠던 기억이 또 다른 아픔, 또 다른 슬픔, 또 다른 충격, 또 다른 배신감, 또 다른 모멸감, 또 다른 비참함을 피하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처음의 충격은 다시 정신을 차리기까지 3년이 걸렸고, 두 번째는 1년이 걸렸다. 그러나 아픈 데는 여전히 아파왔다. 그리고 이 아픔은 위로 같은 걸로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위로를 받았음에도 내 아픔은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자기 자리인 냥 한 곳에 박혀 있었다. 나를 아프게 한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내게 사과한다고 해도 나아질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은 도무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서 상상도 되지가 않았다. 어쩌지를 못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이 시간을 참지 못하는 의지박약일지도 모른다. 아픔은 핑계이고, 변함 없는 일상에서 구제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다.
세상에는 무수한 말들이 있었다. 좋은 말들을 가지고 카드 돌려막기처럼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긍정의 힘을 불어넣기도 했었다. 긍정에도 면역이 되었는지 이제 어떤 말도 효력이 오래 가지 않아 떨어졌다. 이 말도 일리 있고, 저 말도 일리 있는데, 왜 나의 생애는 온통 하루 같았을까?
자아도취에라도 빠져야 덜 슬플 것 같아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써 보여줄 수 있는 면만 보이고 실제 내 마음은 감추고 사는 것도 피곤하다. 누가 그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는지,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누구도 관심 없을 내 이야기를 꽁꽁 감추려 드는지, 나의 이런 모습이 점점 짙어질수록 병적으로 자신을 숨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다.
무엇을 원하는 걸까? 솔직한 것도,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다. 적당한 것도, 평범한 것도 아니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일찌감치 죄라고만 배워서 내가 뭘 원하는지, 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얼 꼭 원해야만 하는지도. 그럼에도 무언가를 타는듯이 갈망하는 이 갈망은 무엇일까? 두 번의 봄과 세 번째 봄이 오기 전까지의 겨울을 보내는 동안 나는 단 하나의 갈망이 있었다. 왜 그것을 그토록 원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일곱 계절이 온통 하루처럼 흘렀고, 나는 하루라는 시간에 갇힌 사람처럼, 정지된 것처럼 하나만을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으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내 이런 미칠듯한 갈망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태연하게 이 시간을 보내왔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같은 하루가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웃옷이 젖어 어깨가 서늘하다. 홀로 남은 시간, 매일 떠오르는 하나의 얼굴, 더욱 분주하게 보내야만 하는 시간들, 더 지나야만 하는 계절들, 언제쯤 같은 날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외면하여도 그 외면 속에는 사실 다른 마음이 감춰져 있다는 걸 알아볼 다른 이가 나타난다면 계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까? 그럴듯한 말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현실의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죽어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무심히 쓸어담는 오늘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