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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Jan 04. 2023

MZ세대

  우 늘 미워해야 할 목표물이 필요하다. 이번 타깃은 한 세대가 되었다. 타깃은 시간이 지나면 또 바뀔 테니까 너무 염려말라. 맘충도 되고 된장녀도 되고 때로는 유명한 연예인, 때로는 정치인, 아니면 갑질하는 사람들, 또는 빈곤층, 또는 희대의 범죄자 등 타깃은 다양하고 이유는 나름대로 타당하다. MZ세대와 윗 세대를 겨냥한 '꼰대'가 요즈음 욕을 먹는 주류층이다.

  내가 막 대학에 입학했을 2007년도 무렵에는 '개념이 없다'는 관용어가 흔히 쓰이고 있었다. 우리는 걸핏하면 '개념이 없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이제껏 지켜오던 관습에 반기를 드는 행위 혹은 억지로 관습에 참여하는 배타적인 태도를 향해 통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불안해서 뱉어내는 일종의 자기방어적인 비난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 개중에는 낯선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도 드물게 존재한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은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서 낯선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신인류는 참으로 우리에게 낯설고 어색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껏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우리가 지켜온 사회적인 약속과 질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들은 뭔가 다르다. 이들은 우리가 세운 약속과 질서를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있다. 이들은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존재들에 의해 질서가 붕괴될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이미 굳어지고 타성에 젖을대로 젖어버린 사회에 새로운 흐름이 갑자기 흘러들어오면 대부분은 이질감과 불편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절이나 예법이라든가 상식이라는 것들이 시대의 변천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문화권마다도 다른 양상을 띤다. 지금은 카페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고 테이블 위에 버젓이 두고 가면 기본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 여기고 얼마든지 비난한다. 그러나 십여 년 전에는 카페에서 특별히 테이블 구분없이 지독한 담배연기를 뿜으며 흡연을 해도 비상식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유모차를 끄는 아기엄마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어느 길거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MZ세대는 지금까지 한국의 조직문화에서 오랫동안 고수해온 관습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 기존 세대에게 불안감을 가져다주고 있다. 내리갈굼이 가능했고, 연대책임이 당연했던 시대를 살아온 기존 세대에게는 적잖이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조직문화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시스템으로 이미 자리매김한 각종 부조리도 거부하고 있다. 말 그대로 부조리한 것을 부조리하다고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부조리에는 또 그럴만한 순리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숨어있기에 공존이 가능했다. 그래서 기존 세대는 MZ세대가 얕다고 폄하하고, MZ세대는 기존 세대의 부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은 기존 세대와 MZ세대 양 진영에서 추구하는 바가 모두 일리는 있다. 기존 세대는 타성에 젖은 탓에 부조리마저도 시스템화 시킨 것이고 MZ세대는 감탄고토에 능해진 것이다.

  전화 포비아가 새로운 세대에게서 또 많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또 자주 보이는 단어가 '손절'이다. MZ세대는 도피에 능한 세대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혐오하는 세대이다. 이들은 관계에 능하지 않고, 수완보다는 타고난 것에 의존한다. 터득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더 선호한다. 이들에게 강요는 체벌에 가깝다. 이들은 상하관계에 익숙하지 않고 대신에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에는 탁월하다. 배려가 돌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자체의 미덕임을 몸소 이해하기에는 많이 늦은 세대이다. 셈에 빨라서 받은 것은 갚아야 하고, 준 것은 돌려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사회적 태도는 오늘날 갑자기 발생한 건 아니, MZ세대를 기른 세대에 의해 서서히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다.

  작은 사회를 보면 큰 사회를 볼 수가 있는데, 어느 작은 회사에서 대리로 일할 때, 그곳에는 각각 내 또래의 대리와 사원, 40대 후반의 주임이 있었다. 연차로는 내가 가장 오래되었지만 웬만한 잡일은 최고참인 내가 처리해야 했다. 나머지 직원들이 잡일에 매우 수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잡일을 할 줄 모르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지금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직무에 도전했기에 다시 사원의 자리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20대의 다른 사원들은 이곳도 마찬가지로 잡일에 매우 수동적이다. 무엇도 말로 시키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다. 사소하게 여길지 몰라도 사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잡일을 가장 하기 싫어한다. 그렇기에 잡일은 작고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눈치껏 막내들이 하던 시대는 이제 부조리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새로운 부조리가 도래했다. 배려 없는 사회, 새롭게 발생한 부조리이다. 이제 말하지 않고, 부탁하지 않으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배려를 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20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인턴제로 들어간 회사에서 내가 막내라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쓰레기를 버리고, 바닥을 걸레질하고, 부지런히 설거지를 했다. 온갖 잡일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상사들은 맛있는 밥을 자주 사주었고 입이 닳도록 칭찬해주었고 아플 때는 약을 챙겨주며 살뜰히 대해주었다. 그러나 만약 나이가 젊은 막내 사원의 배려를 당연하게 받았다면 이 사회에는 부조리만 남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도 나서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부조리만 남을 것이다. 배려가 당연해진 사회도 삭막하거니와 배려가 아예 없는 사회는 바싹 메마른 사막일 것이다.

  내게는 새로운 후대, 새로운 세대가 매우 값지고 소중하다. 새 세대가 일구고 만들어갈 사회 또한 기대된다. 세월호 참사로, 이태원 참사로 젊고 어린 친구들을 너무 많이 잃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새 세대를 더 잃지 않았으면 한다. 새 세대 또한 기존의 것을 완전히 잃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 타성에 젖었을뿐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 것들이다. 좀 더 탐구심을 갖고 통찰하는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로에게 낯설기만 한 기존 사회와 새로운 사회를 이어줄 브릿지 필요하다. 양극단의 갈등은 그다지 서로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려면 차이가 나타난 원인을 찾고 그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진단내려야 한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맹목적인 미움이나 배척이 아니라 올바른 문제 인식이 우선이다. MZ세대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재의 사회상은 결국 앞 세대가 만들어낸 유물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어떻게 어긋났는지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 후세는 그저 앞서간 자들이 낸 길로 뒤따라왔을 따름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어떤 특정 부류를 미워하고 욕하고 비난한다면 누워서 침 뱉기인 셈이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할까? 그것은 배려이다.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사소한 잡일을 나서서 하는 것이다. 그게 기존 세대와 MZ세대, 여자와 남자, 부모와 자식, 고부 간, 친구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 손절할 필요가 없다. 손절은 단순무식한 도피인 데 비해 배려는 고도로 발달한 아주 예민하고 감각적인 행동이다.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힘들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기 싫어서 포기하는 것과 통과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 중 무엇이 우리를 단련시키고 지혜롭게 만들겠는가? 아무튼 그 무엇도 공짜가 없고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기꺼운 마음으로 새 세대와 변화를 받아들인다. 또 다른 시대와의 조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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