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가 되는 이유
3월, 날이 아직 차다. 따스한 온기가 깔리다가 물러나고, 물러난 자리는 더 빨리 식는다. 상사호 가는 길에 있는 시부모님의 밭에서 아버지가 돌판에 고기를 굽는 동안 남편의 손을 잡고 위쪽에 구경을 갔다가 바지랑 코트에 도깨비풀이 한 뭉텅이 붙어버렸다. 코트자락을 펄럭여도 떨어지지 않고 손등으로 쓸어도 그대로 박혀 있다. 공을 들여 하나씩 털 뽑듯이 뽑아냈다. 시선을 고정하고 세밀하게 집중해서 하는 작업이 길어지면 가슴 중앙이 참을 수 없이 간질거린다. 당장 발작이라도 할 것 같아 숨을 크게 내뱉고 하던 작업을 멈춰야만 한다. 엉성하게, 대충, 간단하게 넘어가고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자니 오히려 촘촘히 박힌 가시 같은 것들이 계속 생각이 나 머릿속을 내내 맴돈다. 속이 울렁이고 뒤집힌다. 한 가지가 떠오르면 순식간에 잔상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아찔한 순간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조금만 생각에 골몰해도 살아있는 자체가 버겁다는 걸 깨닫는다. '일을 모두 망쳐버리고 말았어. 옳게 된 일이 하나도 없어. 가만히 있을 걸 그랬어. 매번 매 순간 참았어야 옳았어.'
다시 또 실수할까 봐 다른 누군가와 깊이 관계 맺기가 두렵다. 또 말을 참지 못할 거고, 행동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내 성미를 알기 때문이다. 그 말과 행동이 지금에서는 옳게 느껴지니까 문제이다. 사실은 '옳게' 라기보다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한 것뿐이다. 불확신과 불안을 쫓아내기 위해서 자꾸만 움직이려 드는 열망이 심하게 올라온다.
자기 객관화를 덜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대우에 불만족해하는 이유가 뭘까? 바라는 게 많은데도 그 바라는 것을 얻는 방법은 그다지 연구하지 않아 왔다. 어쩌면 단순한 방법일 거라고 생각한다. 겉모습을 치장하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괜찮은 취미생활을 하고 적당히 경제력도 있고, 그것들을 일부는 과시하고, 일부는 표현하고, 일부는 감추는 방법이다. 이건 정말 오래된 고질적인 염세적인 사고방식이긴 하다.
그러니까, 알겠다. 허황된 관심사이긴 하지만 우월감 같은 것을 타인에게서 느끼고 도취되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내 목소리에 유달리 힘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고, 내 모습이 선망할만하게 비치길 원하는 것 같다. 아니면 그저 무시받는 것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깊게, 세심하게 이 성가신 생각들을 살펴보지는 못한다. 발작을 일으킬 듯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말기 때문이다. 대충 살갑지 않은 논리로 가정하고 결론을 내리면서 염세적인 게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게 이 세상이야, 타락한 이 세상의 벌거벗은 모습 그 자체!
현실을, 또 사람을 부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면 내가 느끼는 부당한 대우나 작은 멸시 모두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아서였을까? '세상은 죄로 그득하고 사람은 타락했으니까, 모두가 속으로는 남을 멸시하고 미워하는 게 맞으니까,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미워하며 사는 거니까, 그리 대수는 아니지.' 그렇게 여겨야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던 것 같기도 하다. 나만 미움받는 게 아니라, 누구나 미움받고, 누구나 이기적인 세상에서 너무 겁낼 것 없고, 상처받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방법이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고독한 세상살이의 한 가지 방편을 일궈낸 것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당연히 받아온 미움과 멸시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택한 안전지대였던 것이다. 사실이라고 믿어온 세상에 대한 이미지 안에서 오히려 안심하고 사랑 못 받는 아이에서 사랑 못 받는 어른으로 자란 나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러곤 이토록 차가운 세상에서 그래도, 그나마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너무나 소중해서 스크래치조차 내지를 못하고, 그들마저도 내게 등 돌리지 않게 하려고 조심했다. 조심에 조심을 더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삶에, 생각들이 도깨비풀처럼 따갑고 성가시게 촘촘히도 박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를 또 쉽게 미워하고, 쉽게 등 돌리고, 쉽게 생각할까 봐 두려워서 온 신경이 곤두서있다. 감히 나를 그렇게 대할 생각 하지 못하게 먼저 미워하고 등 돌리고 판단해야 덜 불안해진다. 사랑받고 싶으면서 잊히고 싶다. 존재가 찬란하기를 바라면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을 꿈꾼다. 모두가 어려운 인생이라지만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어려운 인생이라는 생각이 위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인생들이 타인의 삶은 쉬운 것으로 정의하는 편리한 계산법을 자주 겪으며 위로 같은 것은 부스러기가 되어버렸다. 나의 존중이나 관심을 쉽게 소모해 버리는 무감각한 그런 세상을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집은 나의 은신처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