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으로 오고 간 메시지를 보다가
소파에 누워 지나간 장문의 메시지를 찬찬히 읽었다.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한 뒤 좀체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마치 지난 과거의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벗어남'과 '이겨냄'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역시 후자를 고르겠다. 온전히 벗어날 방법은 그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고받은 문자 속에는 필연에 의한 우연으로 선택된 단어들이 높다란 서가의 책장처럼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훌륭한 사서가 되어 고심하여 책들을 재배치하고도 싶었지만, 후회란 것은 불안이 만들어낸 허상에서 온다. 시간이 지나면 또 금방 건조해진다. 왜 괜히 후회를 했나 하며 후회를 후회하기도 하고, 그 후회의 후회를 번복하기도 한다. 후회는 상황에 따른 부채감을 교묘한 방법으로 삭이고 싶은 투정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심리는 대개 그렇게 얄팍하고 허술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을까? 왜 더 나은 선택을 두고, 고통을 주는 방법을 택했을까?' 내가 겪어야만 했던 많은 고통 중 절반은 타인의 잘못된 판단과 욕심에서 비롯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당연히 나 자신에게서 왔다. 내 손으로 일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남이 벌인 일에 말려들고 그 안에서 순진하게 입 안의 사탕처럼 이리저리 굴려지다 보면 날카로워져서 속살을 베는 일도 생겼다. '나를 감히 농락했으니, 그러지 않았으면 피를 볼 일도 없었을 건데, 나를 건드린 죗값이야.' 내 묘비명에 새겨도 퍽 어울릴 것 같았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미웠다. 결국 우리가 도달할 곳은 단순하고 필연적인 자리일 텐데, 영원한 거짓말은 없으며, 죽어서까지 거짓으로 발악해 봐야 아무런 기쁨이 없는데. 그냥 이제라도 편하게 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사실 그리 큰 일도, 별일도 아닌데, 얼마든지 웃으며 용서하고 화해하고, 이 불필요한 불편감을, 찝찝함을 해소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 일을 못해서 평생 억지웃음을 짓고 살아가는 걸까? 별일도 아닌데 우리는 깊고도 무겁고 버거운 앙금을 품고 살아갔다. 그 앙금을 풀 재주도 없으면서.
아무도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하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어리석었어. 그렇게 하면 쉽게, 내 손에 더러운 거 안 묻히고, 사람들에게 창피당하지 않고, 편하게 그 사람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어."
"내가 어리석었어. 그렇게 하면 내가 당한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어. 나를 수치스럽게 한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인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 또 우리보다 훨씬 못난 너는 그 사람과 어울릴 만한 수준이 못 된다고 교만하게 생각했어."
"책임을 다 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내 아이들은 내가 돌봤어야 했는데 너희에게 너무 많은 민폐를 끼쳤고 아이들에게도 그게 내 잘못임을 말해주지 못했어.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혼이 나서 상처를 받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주지 못했어."
"내가 심하게 반응했어. 왠지 내 잘못이 들춰지면 미움받을까 봐 너무 두렵고 불안해서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어. 상처받은 내 입장만 생각하고 너희와 거리를 뒀어. 자기 방어였지만 과했어."
"내가 어리석었어. 두 사람 사이를 저울질하는 행동이 관계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몰랐어. 순간의 인기에 너무 취해있었던 것 같아."
"나는 이 어리석음을 그대로 가져갈 거야.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애써 믿고 싶고, 때때로 행복하지만 자주 불행해. 그래도 언젠가 좋아질 거라는 희망 때문에 계속 이 삶을 이어가고 있어."
"나는 여전히 어리석어. 내 행복을 찾겠다는 열망만이 너무 커서, 또 관심받지 못한다는 자각이 너무 괴로워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너무 많이 쏟아냈어. 핑계일 뿐이고 수치스러운 줄도 알았지만 벗어날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어. 아직도 목적만이 보여. 그게 내 목에 걸린 썩은 당근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도무지 그렇게 믿고 싶지가 않아."
그리고 나도.
"나도 어리석었어요. 나도 그러지 못하면서 내게 오는 건 온전한 사랑과 관심일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진짜라고 믿을 때는 진짜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가짜임이 드러났을 때는 얼마나 사악한지를 증명하려고 노력했어요. 순간의 욕심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쳐 가고 있는 와중에도 노선을 바꾸지 못하고 꾸역꾸역 억지로 밀고 갔어요. 그 끝에는 나의 영광의 왕관과 트로피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가도 고지는 보이지 않았어요. 나의 어리석음만이 산처럼 높게 쌓여서 곧 무너지려 했어요. 모두가 뿔뿔이 도망쳤어요. 이 산은, 도망쳐도 결코 멀어지지 않는 산이었지만요."
우리에겐 늘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현자의 길과 우매자의 길이다. 우리는 자주, 수시로, 습관적으로, 평범하게, 아주 일상적으로 우매자의 길을 택했다. 그 길이 내게 득이 될 것이라고 너무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곤 했었다. 이보다 아름답고 우월한 것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일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멍청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서로를 원망하며 우울한 삶을 살았다. 서로를 떠나면 행복일 줄로 알았던 우리는, 서로에게서 행복을 찾아야만 했던 진실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각자의 섬에서 슬픔도, 우울도, 잘남도 과시하며 타인의 관심만을 바라는 어리석은 삶은 지속되고 있었다.
나의 아픔은 누구에게서 왔을까?
그들의 아픔은, 또 누구에게서 온 것일까?
서로에게서 왔다. 나에게서도 왔다. 그걸 인정하는 것만이 지혜로운 길이었다. 때로, 갑작스럽게, 비범하게, 아주 드물게라도 이 길을 택한다면 그때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산사태는 사실 증발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걸.
긴 장문의 메시지 속, 나와 그녀는 서로 마주 서 있었다. 우리는 침묵하고 상대의 태도를 엿보았다. 이내 웃음으로 악수를 나눴다. 누군가 콜(call)했고, 누군가는 마지(맞이)했다. 모든 갈등과 단절을 회복시키는 작지만 결정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았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이 쉬운 일을 해내지 못했을까?
소통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너무나 쉬운 수단인데, 사람들은 소통이 늘 어렵다고 한다. 존중하고 사랑하고 예의를 지키는 소통 방법을 교과 과정에 필수로 넣어야 할 중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