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의 세상

by 미색

왜 자기 객관화를 남에게만 요구하는가? 당신은 잘하고 있는가? 당신은 쓴 말도 기꺼이 삼킬 줄 아는가? 당신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볼 마음의 그릇이 준비되었는가?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나솔, 모솔, 결혼지옥, 이혼숙려, 금쪽이 등 온갖 사람 간의 관계성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마치 소설책을 읽을 때처럼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 묘사를 실감 나게 보는 것과 같은 재미를 맛보게 한다. 출연자들은 상황 속에서 여러 언행을 보이고 인터뷰를 통해 자기 속마음을 밝히고 다양한 상대와 관계성을 쌓아간다. 시청자들은 너무나 기민하게 그들의 말과 행동, 밝히는 속마음에서 출연자의 실제 심리를 유추해 내고 읽어낸다. 유튜브 댓글을 통해 시청자들은 각자의 의견을 쏟아낸다. 일리 있는 예측이나 추측의 댓글은 많은 호응을 받는다. 그 수많은 댓글을 보며 나는 놀란다. 모두가 이토록 정확하게 사람의 심리를 알면서, 일상을 살아갈 때는 교묘하게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를 일삼는다니, 이 정확한 심리 파악을 자기에게 적용하면 가면을 쓰고 사는 자기 자신도 잘 알지 않을까? 댓글에는 가뭄의 콩 나듯 자기반성을 하며 정직하게 자신을 고백하는 이가 있지만 놀랍게도 이런 고백적 댓글에는 또 다른 위선자가 '님은 그래도 그걸 알아서 다행. 앞으로 고치면 됨.'이라고 교만하게 가르치는 대댓글을 달곤 한다. 마치 자신은 안 그런 사람으로 분류하는 꼬락서니다.

사람의 자기기만과 자기 연민은 역겨울 정도로 깊다. 늘 자기의 입장에서 피해자 서사를 써내려 간다. 누구도 자기의 책임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판단 내리지 못한다. 자신은 늘 당하는 사람, 피해받는 사람, 착한 사람이라고 이기적인 서사로 단정 짓는다. 그것은 너무나 주관적이다. 아주 객관적이지 못하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책임도 늘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사건이 뺑소니나 '묻지마'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누구나 자기가 당한 일은 뺑소니 사고로 치부한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난 착하게 살고 있었어. 그 나쁜 인간이 나를 괴롭혔어.'

그래서 최근 인기 있었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내게는 큰 감흥이 없었다. 또 그렇고 그런 내 위주의 피해자 서사 스토리로만 읽혔다. 나와 내 가족들은 힘든 세상 속 당차고 선하고 똑똑한 피해자이고 주변 인물은 하나같이 고약하고 못되고 이기적인 존재들로 그려냈다. 이렇게나 자기 주관적인 캐릭터 설정과 서사라니. 재미가 전혀 없었다. 고전 명작을 좋아하는 이유가,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정확히 흑백으로 가르지 않고 인간을 그대로 낱낱이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일을 겪고 내가 피해받은 만큼의 잘못을 상대가 인정하기를 바라며 나 또한 내가 상대에게 피해 준 만큼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해 왔다. 그러나 이 자폐의 세상에서 그 어떤 사람도 사과를 정직하게 주고받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는 잘못을 인정하니 더욱 발광하며 늘 내게 자기가 피해자임을 인식시키려고 했다. 누군가는 자기의 잘못한 서사는 완전히 지우고 내가 인정한 잘못만을 퍼뜨렸다. 누군가는 나의 사과를 당연시했다. 아무튼 대체로 사람은 사과를 받으면 얼른 자기 잘못은 지우고 완벽히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분위기 장악하기를 즐겼다.

나는 정직하게 살고 싶었고 정직한 사회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었다. 어쩌면 교과서적인 레퍼토리이지만 내가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상대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배운 대로 악했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수에 대해서는 그나마 사람이 인정을 하는 편이지만 고의로 한 잘못, 자기 이기심에서 나온 잘못, 악한 습성에서 나온 미움과 시기, 질투, 오해, 착각에 대한 인정은 쉽게 하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를 나쁜 인간으로 낙인찍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악하고 나쁘다고 믿는 부류가 어째서 자기에게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걸까? 나의 의구심은 거기에서 자주 피어오른다. 왜 신앙을 고백하고도 자기가 벌인 잘못된 행태나 그릇된 심리에서 나온 모습을 반성하지 못하는 걸까? 그러한 부족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회개할수록 사람이 자유에 가까워짐을 전혀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쯤 맛볼 것인가? 언제쯤 구체적인 실제 상황에서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에게 갇힌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는 걸까?

자기 객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과 자기를 동일하게 정확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자기와 세상을 분리해서 서로 다른 잣대로 '내 경우는 달라.' 하고 자기를 감싸고 위로하고 보호하려 들면 그것이 자기 합리화이고 정당화이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걸 위로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가 들어있는 고치를 더 두껍게 만들어 줄, 보호해 줄 말로 자기의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린다.

요즘의 세상은 자기 객관화와는 너무도 먼 세상이다. 하나하나 자기를 위한 말로 우기며 발악하는 자폐의 세상이다. 정직함은 다 죽어서 가루가 되었다.

나도 매일 자기 객관화를 하기 위해 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 그때 그 말은 과연 널 위한 말이었을까, 날 위한 말이었을까? 그때 그 행동은 누굴 위한 거였을까? 오늘 하루는 정말 가치 있는 날이었을까? 이 글은 자기 객관화를 위한 글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겨냥하기 위한 글이었을까? 우리는 자기 행복을 위해 살고 있을까, 타인을 위해 살고 있을까? 우리가 자기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요새의 풍조를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 세태가 정말로 사회를 유익하게 만들까, 사회를 빠르게 붕괴시키고 있을까? 나는 객관적인 답을 알겠는데, 사회는 그 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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