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동기화

20년 9월 23일에 쓴 지난 산문

by 미색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오후 7시면 부리나케 짐을 싸들고 사무실을 내팽개치듯 튀어나온다. 흰색 승용차에 빨려들어가 시동을 틀고 안전벨트를 차고 기어를 바꾸며 엑셀을 밟는 동안, 드디어 이 회사에서는 유일하게 내 공간이랄 수 있는 곳에 들어와있다는 안정감이 한 칸씩 차오른다. 주차장에서 종일 가만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동생의 작은 차 한대가 눈에 스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그래서 이 시간, 이 순간이 점점 더 좋아진다. 1분도 숨 쉴 틈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일감에 머리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종일 뜨겁게 달궈진다. 와중에 업무일 뿐인데도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사람들이 종종 기계적으로만 놀고 싶은 내 심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회사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일만 하는 기계였음 싶다. 각자의 바운더리를 정확히 그어놓고 각자의 역할만을 다 하는 존재만큼만 일을 치르고 자기 궤도를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니까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같은 걸 가지고 살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사적인 대상과나 나눌 것이지 그저 오너에게 받은 오더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부품들끼리 아웅다웅할 건덕지는 아니라고 본다. 어제도 부장이 '내가 네 부하직원도 아니고... 궁시렁궁시렁...' 하기에 '왜 그렇게 생각을 하세요? 네, 알겠어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장은 주기적으로 한 번씩 자격지심을 부린다. 그럴 때마다 매번 똑같은 설명을 해주고 있다. '저는 상사가 오더를 내린 대로 처리할 뿐이에요. 그럼 내 생각은 다르다고 하극상이라도 벌일까요? 정 불만이시면 저한테 말고 오더를 내린 사람한테 말씀하세요. 저는 중간 전달자일 뿐인 거 아시잖아요.' 설명은 삼 세 번이면 충분했다고 본다. 어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난 사건을 있는 그대로 과장에게 전했다. 과장은 앞으로 나를 통하지 않고 직접 전달하기로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과장의 어시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지만 내 역량이 여기까지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마다 연연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데 축낼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토록 바빴던 시간은 흰색 포르테 운전석 차문이 탁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지난 일로 탁 접혀버린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오늘 저녁은 뭘까?

5분도 채 안 되어 집에 돌아온다. 엄마와 아빠가 저녁 밥을 드시고 있다.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수고했다, 와서 밥부터 먹어라, 하신다. 어쩔 때는 손을 씻고 바로 밥부터 먹는다. 어쩔 때는 옷부터 갈아입고 밥을 먹는다. 어쩔 때는 샤워를 다 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서, 몸 컨디션에 따라서 순서를 조금 바꾼다. 그리고 기분에 따라, 몸 컨디션에 따라, 그날 날씨에 따라 밖으로 나가 조깅을 하기도 한다.

요 며칠 뜀박질을 좀 했는데, 하루는 아무 생각없이 삼선 쓰레빠를 신고 나와서 실컷 달렸다. 그러더니 왼발 가운데 발가락이 욱신거렸다. 앉아서 한참을 일하는데 도무지 신경이 쓰여서 일에 집중이 안 됐다. 탕비실로 가서 에어파스를 뿌렸다. 발가락을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파스까지 뿌려놔서 발끝이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병원은 웬만하면 갈 생각도 안 하는데, 며칠을 신경 쓰이게 하니까 안 되겠어서 종합병원에 야간진료를 받으러 갔다. 진료를 봐주는 젊은 의사가 아픈 데를 보여달라고 했다. 양말을 쑥 벗어서 여기가 아파요, 했는데 의사는 겉보기에 멀쩡해 보였던지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했다. 내 눈에만 부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방사선과에도 의사와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가운데 발가락 사진을 찍어야 해서 좀 괴상한 자세로 발가락을 꽉 붙잡고 있어야 했다. 중간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외상도, 내상도 없어서 의사는 소염제를 처방해주었다. 소염제를 먹으면 아프지 않았고, 시간이 좀 흐르면 약간씩 불편감이 들었다. 염증이 있기는 한 것이다.

당분간 밤 산책은 쉬기로 하고 다시 글쓰기 모드로 돌아왔다. 물론 매일 글쓰기 모드였다. 아무런 결과물 없이 잠에 들었을 따름이다. 하얀 공백이 아득하기만 해서, 대학교 미술 교양 강의 시간에 주워들은 '공간외포'만을 끝없이 떠올리다가 노트북을 탁 닫아버린다. 친구에게 빌린 책을 읽거나 부족한 어휘에 도움을 주려나 싶은 소설책을 꺼내 읽는다. 감정이 복받쳐오르는 날에는 어김없이 일기장을 꺼낸다. 그런데 주로 한 달에 한 번씩 감수성이 폭발하는 시기가 오는 모양인지 일기는 월기가 더 어울리는 이름이 되어갔다.

밤에는 종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둔다. 지금의 감정에 더 담뿍 빠지게 해주는 음악을 좋아한다. 장르에 상관없이 마음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동요시키는 음악이어야 한다.

이때쯤엔 슬슬 잠이 온다. 종일 노트북을 보고 일했는데, 집에 와서도 노트북을 보다 보면 금세 피로해진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잠들기 직전에는 항상 방이 덥다. 창문을 15cm 정도 열어둔다. 충전기를 꽂아두어서 애매하게 선이 짧은 휴대폰을 최대한 느슨하게 잡는다. 인터넷 기사도 훑어보고,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매일 업로드되는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것도 구경하고, 카카오톡 메신저의 친구들 프로필 사진도 하나씩 눌러보고, 인스타그램을 무한 갱신하며 흥미로운 사진이나 동영상을 들여다본다. 아니면 므두셀라 증후군에 중증인 사람이니까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을 다시 꺼내어본다. 지난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미 지나간 과거니까 아무것도 변할 게 없는 것 같은데도, 다시 보는 그날의 기분과 몸 컨디션에 따라 미묘하게 변모하는 걸 느낀다. 단지 과거를 회상하고 싶어서 사진을 보던 시기는 지났다. 과거의 사진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해석을 찾아냈다. 그에 따라 현재도, 미래도, 내 마음가짐도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일상의 면면마저도 '업사이드 다운'을 일으켰다. '업사이드 다운'이 유쾌한 감정을 줄 때도 있고 반대일 때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영향력 자체가 재미있는 부분이라서 사진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오전 4시쯤 찬기에 잠시 잠이 깬다. 열어둔 창문을 슬그머니 닫고, 그 틈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생각 패거리들이 완전히 머리를 점령해 잠이 다 달아나지 않도록 최대한 정신을 놓아버린다. 어떻게든 잠이 오면 꼭 8시 20분은 되어야 눈이 떠진다. 출근 준비는 간소화에 간소화를 더한 최소한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엄마는 아침 상이 내 취향일 거라고 여기면 수저를 한 쌍 더 갖다두는데, 그렇지 않은 날은 내 선택에 맡긴다. 아침에 입맛이 있는 날은 고작 1할이다. 열에 아홉은 아침을 패스한다. 밥 대신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출근한 뒤에는 꿈도 꿀 수 없는 고독한 시간을 출근 전에 10분 정도 만들어낸다.

잠에 일찍 깨어서 다시 잠들지 않는 날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기도를 드린다. 몸을 굼벵이처럼 말고서 꼭 모은 손을 머리로 누른 상태로 마음 속으로 늘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어찌할 도리가 없고, 사방이 꽉 막혀서 내게는 도무지 방법이 없는 어렵고 괴로운 문제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내 육신적인 욕망을 따라 마음대로 살지 않도록 주께서 꼭 붙들어주시기만 바란다고 기도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마음을 쓰는 일보다 주님이 내 우선순위가 되시도록 마음의 헛된 잡념을 다 내려놓게 해달라고 여러 번 되뇐다. 분별력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어리석은 마음일지라도 큰 상처를 받아서 또 너무 힘들지는 않게 해달라고 한다. 주께서 언제나 우리를 선한 데로 인도하신다는 걸 믿는다고 한다. 아리송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나듯 기도를 올리던 저린 손을 풀고 다시 돌아눕는다. 이제 또 하루가 시작되고, 아침에 올린 기도를 출근 길에는 까마득히 잊어버릴 걸 미리 예상해본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쉽게도, 멍청하게도, 편리하게도 잘 잊어버리면서, 어떤 생각은 종일 내 목덜미를 꽉 물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것도 어찌 막을 도리가 없는 크나큰 사태인 것이다.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 이런 모양의 일상을 현재는 살아가고 있다. 평범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다른 누군가의 일상이 아니라 바로 내 일상이니까 평범한 나날도 특별하게 느끼고 있다. 유일무이한 나만의 시공간이 매일 줄줄이 기차처럼 이어져간다. 몇 년 전에 완성하고 수정을 보지 않은 장편소설 '노아의 꿈'이 떠오른다. 생각난 김에 새롭게 구상해보아도 좋고, 아니면 또 몇 년 그대로 묵혀도 좋다.

이제는 그만 자야지 되겠다. 남은 생각은 베개맡에서 이어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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