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숨결을 듣다- 시간을 잡아먹는 벌레 앞에서

by 양수경


“시간을 잡아 삼키는 듯한 기묘한 생물, 크로노 파지"


캠브리지 거리를 걷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원판 앞에 멈춰 섰다.


그것은 단순한 시계가 아니었다.


원판을 따라 흐르는 빛이 시간을 표시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은 건 위에 앉아 있는 기묘한 벌레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크로노 파지(Chronophage),

“시간을 잡아먹는 자”라고 불렀다.


이 시계를 만든 발명가 존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흘러가고,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시계 밑에 이 구절을 새겨 넣었다.

“세상과 그 욕망은 지나가 버린다.” (요일 2:17)




시간의 얼굴


나는 한동안 그 벌레의 움직임에 눈을 떼지 못했다.

“황금빛 시계 앞에 서, 나도 모르게 내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입을 벌려 시간을 갉아먹다가,

멈칫하더니 다시 앞으로 성큼 나아가는 모습.


그 리듬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닮아 있었다.

규칙적인 듯하지만, 사실은 불규칙하고,

계획대로 흐르는 듯하지만,

예기치 못한 굴곡을 만들어내는 것.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시간이 이 벌레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고 싶었지만 미뤄둔 일들,

전하지 못한 말들,

아직 쓰지 못한 글들.


기억 속에 새기지 못한 순간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시간의 네 가지 태도


현대인들은 흔히 말한다.


“시간을 돈으로 산다.”


더 많은 돈을 벌어,

언젠가 여유를 사기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그렇게 산 시간이

과연 ‘내 것’이 되는 걸까?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말했다

사람마다 시간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고.


어떤 이는 늘 미래를 향해 달리며 현재를 희생한다.

어떤 이는 과거에 매이고,

누군가는 현재의 즐거움에만 머문다.


나는 이렇게 구분해 본다.


시간을 깊이 누리는 사람 : 매 순간을 의식하며 살아내는 사람

시간을 사는 사람 : 돈과 성취로 여유를 확보하려는 사람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 : 의미 없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

시간에게 잡혀 먹히는 사람 : 의무와 불안에 짓눌리는 사람


사실 우리 모두는

이 네 가지 태도를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방법이 어떻든,

벌레는 결국 우리 모두의 시간을

조금씩 집어삼킨다.




잃어버린 시간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시간은 붙잡을 수는 없지만,

되새길 수는 있다.


햇살과 바람,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를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그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기억에서 흘러가 버린 시간일지라도,

그 시간이 우리를 만들었고,

그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프루스트는 말했다.

잃어버린 시간도 감각 하나로 되살아난다고.


사라진 줄 알았던 시간도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다시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오늘 나는 어떤 어떤 시간을 살아갈 것인가


황금빛 원판에 비친 내 얼굴이

순간 낯설게 보였다.


나는 다짐했다.

벌레가 삼켜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시간을 맛보겠다고.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시간은 흘러가지만 동시에 쌓인다.

흘러가 버린 듯 보이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오늘, 나는 어떤 시간을

내 안에 새겨 넣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