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단연코 ‘Sorry’다. 어깨가 살짝 스쳐도 “Sorry”, 버스나 튜브에서 사람 사이로 빠져나갈 때도 “Sorry…”, 심지어 직원을 부르면서도 “Sorry, could I ask…?”로 시작한다. 이곳에서 sorry는 사과라기보다 문 앞에서 가볍게 한 번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가깝다.
하지만 나의 ‘Sorry’는 조금 달랐다.
그날도 나는 동네 프레타망제(Pret a Manger)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창밖엔 비가 안개처럼 내리고, 젖은 코트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매장 안에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커피 머신에서는 ‘치익’ 하는 스팀 소리가 규칙적으로 새어 나왔다. 내 뒤의 남자는 벌써 휴대폰 결제 화면을 켜 든 채, 카드 리더기를 향해 손목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Iced Americano, please.”
그런데 직원이 내민 건,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컵이었다.
“Here you are.”
나는 컵을 받아 들고 머뭇거렸다. 뜨거운 컵 홀더의 열기가 손바닥을 데웠다. 다시 만들어달라고 해야 하는데, 입술 끝에서 엉뚱한 말이 먼저 튀어 나갔다.
“Sorry… but…”
내 잘못이 아닌데, 나는 왜 사과부터 하고 있는 걸까. 직원의 표정이 굳어질까 봐, 뒤에 선 사람들이 기다리다 짜증을 낼까 봐. 나는 내 권리를 말하면서도, 이미 한 번 접힌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말의 모서리를 손톱으로 계속 갈아내며, 조금이라도 둥글게 만들고 싶었다. 나에게 ‘미안해요’는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작게 접어서 타인의 주머니 속에 구겨 넣는, 일종의 은신술이었다.
일주일 뒤, 아이 학교의 ‘학부모 상담의 밤(Parents' Evening)’이었다. 상담이 열리는 학교 강당(Assembly Hall)은 지어진 지 100년도 넘은 빅토리아 양식 건물이었다.
나는 무거운 참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턱을 넘는 순간, 눅눅한 비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 뒤를 따라 오래된 마룻바닥에서 올라오는 건조한 나무 향이 얇게 깔렸고, 어딘가에서 은근한 홍차 향기가 마지막에 조용히 붙었다.
높은 천장 위로는 런던의 겨울비가 첼로 소리처럼 웅웅대며 울리고 있었다. 강당을 가득 메운 학부모들의 젖은 울 코트에서는 희미한 물비린내가 났다. 그 촉촉하고 차분한 공기가 나를 더 안쪽으로 말아 넣는 것 같았다.
강당 한쪽 벽면에는 급하게 마련된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뜯긴 티백 상자와 삐뚤빼뚤 쌓인 종이컵 줄이 위태로워 보였다. 차례를 기다리는 어른들은 종이컵을 손에 쥐고 조용히 한 모금씩 마셨다.
엄마들은 선생님 앞에 놓인 터무니없이 작은 의자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앉아 있었다. 나 역시 그 불편한 의자 위에서 어깨가 저절로 안쪽으로 말렸다. 무릎이 의자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채로, 나는 계속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일을 하느라 챙길 시간이 없어서… 죄송해요.” “준비물을 자꾸 깜빡하네요. I am so sorry.”
어른들의 말이 강당 안을 조용히 굴러다녔다. 사과의 말들은 희한하게도 모두 비슷한 온도였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저 안전한 온도. 나도 내 차례가 오면, 입 안에서 같은 말들을 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옆 테이블에 한 여자가 다가와 앉았다. '빅토리아(Victoria)’였다. 금융지구(The City)에서 일하는 시니어 변호사라는 그녀는, 막 빗속을 뚫고 들어온 참이었다.
그녀는 카멜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코트 자락에는 빗방울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고, 조명 아래에서 작게 반짝였다.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그녀의 동작은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우아하고 절도 있었다.
미스터 윌리암스(담임 선생님)가 숙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려다 멈추고는 정중하게,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Excuse me, Mr. Williams.”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이제 곧 “Sorry”가 따라붙을 거라고, 내 몸은 먼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향해 살짝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아주 침착한 ‘포쉬(Posh)’ 억양으로 말했다.
“평일 저녁은 불가능해요(It’s simply impossible). 저는 6시에 퇴근하고, 아이와 저녁을 먹으면 잘 시간이죠.”
강당 안에 빗소리만이 웅웅 거리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 앞에서도 그녀는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마치 어디까지가 자신의 땅인지 정확히 아는 영주(Lord)처럼.
“저희는 주중에 숙제 때문에 아이와 싸우며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로 했어요.”
빅토리아는 “숙제”라는 단어를 조금 천천히 발음했다.
“대신 주말에는 온전히 아이와 박물관을 가거나 공원을 갑니다. 그게 우리 집 방식이에요.”
나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먼저 반발하는 걸 느꼈다. 숙제를 줄여달라니. 한국에서라면 저 말은 용기보다 ‘무책임’이나 ‘공부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로 읽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 눈으로 세상을 배워왔으니까.
그런데 빅토리아는 ‘안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피하겠다’ 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싸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와의 관계를, 자신의 하루를, 실현 가능한 크기로 유지하겠다고.
빅토리아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대안을 내놓았다.
“그래서요. 주중 과제는 아이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양으로 조절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설명도—아이 혼자 이해할 수 있게요.”
그 순간, 그녀의 젖은 트렌치코트에서 풍기는 비 냄새가 왠지 모르게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거절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단번에 끊어주는, 잘 드는 가위 같았다. 무례함이 아니라, 가장 군더더기 없는 형태의 친절이었다.
그녀의 문장 속에는 ‘나(I)’와 ‘우리(We)’만 존재했다. 그 단단한 문장들 사이에 습관적인 ‘Sorry’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단 1밀리미터도 없어 보였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창밖에는 여전히 런던의 비가 퍼붓고 있었지만, 장갑을 다시 끼는 사람의 옆모습만은 쨍하게 맑아 보였다.
나는 그동안 겸손이라고 믿으며 했던 말들이, 사실은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초라한 변명이었음을, 그 낡고 근사한 강당 안에서 비로소 알아차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군가와 스칠 때 자동으로 올라오려는 “Sorry”를 삼키고 “Excuse me”라고 말해 보았다.
말의 모서리를 먼저 둥글게 깎아내지 않고, 한 번만—제자리에서 서 보기로 했다.
저녁 식탁에서 반찬이 부실하다고 핑계를 대는 대신, “오늘은 엄마가 좀 피곤해서 간단히 차렸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관계는 부러지지 않았다.
잠들기 전, 나는 며칠 전 마가렛이 ‘툭’ 하며 장미를 자르던 손길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은 가위 대신, 내 두 팔을 내 어깨 위로 가져갔다. 스스로를 안아주는 자세. 처음엔 낯간지럽고 어색했다. 닿은 손끝이 차가웠다. 하지만 가만히 토닥이자, 마치 겨울날 손난로를 쥔 것처럼 묘한 온기가 명치끝으로 퍼져나갔다.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돼.”
“오늘의 너로… 충분했어.”
그건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며 살던 내가, 처음으로 나에게 건네는 작은 목소리였다. 창밖의 빗소리는 여전하지만,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비어 있던 내 안의 정원에—비로소 바람이 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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