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는 영수증이 필요 없다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by 양수경


금요일 저녁 8시. 한 주간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줄이 툭 끊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고요해야 할 시간. 샤워를 막 마치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있었다.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에 톡, 톡 하고 번졌다. 그 소리가 마치 이번 주에 내가 감당했던 피로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평화를 깬 건 탁자 위의 핸드폰이었다. 짧고 건조한 진동 소리. 액정에 뜬 이름은 ’ 비비안(Vivian)’이었다. 나는 흠칫 놀라 손에 든 스킨 병을 놓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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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선배이자, 본명인 ‘미주’보다 스스로 지은 영어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던 사람. 그녀는 늘 화려한 스카프를 두르고, 계절과 상관없는 향수 냄새를 남기며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늘 “한나야, 나 너무 외로워”라며 밤마다 누군가를 찾는 깊은 공허가 숨어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후배라기보다, 그 공허를 채워줄 ‘24시간 대기 중인 상담사’이자 ‘감정의 하수구’에 가까웠다.


받지 말까.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착한 후배 한나’의 가면을 쓴 채 통화 버튼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거절했다가 선배가 삐지면 어떡하지? 혹시 정말 급한 일이면?


“어, 선배.”


“한나야, 뭐 해? 나 지금 너네 집 근처인데 잠깐 나올래?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하냐…”


역시나였다. 그녀의 ‘근처’라는 말은 늘 불공평했다. 내 집 근처가 아니라, 내 마음의 가장 약한 틈새 근처로 훅 들어오겠다는 예고였으니까. 지금 나가면 자정이 넘도록 그녀의 상사 욕, 시댁 험담, 그리고 세상이 자기를 얼마나 홀대하는지에 대한 지루한 도돌이표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말이 많지만, 그 수만 마디의 말 끝에 남는 건 늘 한 가지 비명이었다. “제발 나 좀 봐줘. 나 좀 붙잡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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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지쳤다. ‘지쳤다’는 단어로는 부족할 만큼, 내 감정의 그릇은 이미 찰랑거리고 있었다. 거절해야 했다. 그런데 거절은 언제나 ‘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가 된다. 내 뇌는 벌써 습관적인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선배를 납득시킬 만한 ‘타당하고, 불쌍하고,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라고, 내 안의 검열관이 속삭였다.


나는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변명의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지도 교수님이 급하게 호출했다고 할까? 아니야, 금요일 밤이잖아.’ ‘몸살이 나서 약 먹고 자려던 참이라고 할까? 목소리를 좀 더 깔아야 하나?’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요”라는 나의 진심이, 선배에게는 ‘거절’이나 ‘공격’으로 들릴까 봐 무서웠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미움받지 않는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꼬리표처럼 설명을 달아왔다. 마치 백화점에 물건을 환불하러 간 사람처럼. 내가 왜 거절하는지를 구구절절 증명하는 ‘영수증’을 내밀어야만, 상대가 나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으니까. “제가 안 나가는 게 아니라요, 정말 아파서 못 나가는 거예요. 여기 진단서(영수증) 보이시죠? 그러니까 저 미워하면 안 돼요.”


더 솔직해지자면, 그것은 비겁한 계산이었다. ‘내가 오늘 선배를 받아줘야, 나중에 내가 힘들 때 선배도 나를 받아주겠지.’ 관계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무리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유치 하지만 강력한 생존 본능.


“저… 선배, 제가 사실은 오늘 몸이 좀…” 나는 익숙하게 ‘영수증 발급’을 시작하려 했다. 억지로 기침 소리를 섞으려던 찰나, 며칠 전 상담 시간에 내가 내담자에게 했던 말이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를 때렸다.


“자기를 믿지 못할 때 말이 길어집니다. 과잉된 설명은 상대를 위한 예의가 아니라, 미움받기 싫은 나를 방어하려는 두려움일 뿐이에요.”


기가 막혔다. 남의 마음은 메스처럼 예리하게 진단하면서, 정작 나는 선배의 서운한 목소리가 무서워 또다시 구차한 변명의 성벽을 쌓고 있다니. 심리학도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설명하면 할수록 나는 작아지고 있었다. 관계는 소통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피곤한 법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번만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내 마음의 영수증을 찢어버리기로 했다.


“선배.” 나는 말을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의아한 침묵이 흘렀다.


“오늘은 못 나가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요.”


거기까지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려던 ‘죄송해요’와 ‘왜냐하면’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다음 주에 봬요’, ’많이 힘들죠?’라는 위로가 혀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텼다. 침묵은 불안했고, 공백은 거대했다.


그 3초가 3년처럼 느껴졌다. 선배가 “너 변했다?" 라고 비난하면 어쩌지? “잠깐 얼굴 보는 것도 안 돼?" 라고 따지면 어쩌지? 심장이 고막 바로 옆에서 쿵쿵거렸다.


“아… 그래? 피곤하구나. 알겠어. 쉬어라.” 뚝. 전화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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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검게 변한 액정을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지도, 선배가 절교를 선언하지도, 내 평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지도 않았다. 나의 거절은 ‘구차한 증빙 서류’ 없이도 그저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동안 나를 소진시켰던 건 타인의 무리한 부탁이 아니었다. 그 부탁을 거절할 때마다 스스로 만들어낸 죄책감,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과정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젖은 머리를 툭툭 털고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설명을 멈추자, 비로소 내 방에 진짜 고요가 찾아왔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해를 구걸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하고 단단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냥, 안 나가고 싶어.”


나는 허공에 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짧은 문장이면 충분했다. 나는 더 이상 내 마음에 대해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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