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렌터카가 아니다

방콕의 습기 속에서 배운 '멈춤'의 기술

by 양수경


방콕 변두리, 숙소의 아침은 새소리가 아니라 눅눅한 습기로 시작된다. 눈을 떴을 때, 몸이 침대 매트리스 안으로 한없이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 도시의 중력만 두 배로 작용하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벌써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요가 매트를 펴거나 노트북을 켰을 것이다. ‘일어나. 게으름 피우지 마. 오늘 할 일이 산더미잖아.’ 머릿속의 감독관이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하지만 내 몸은 파업을 선언한 공장처럼 멈춰버렸다.


나는 천장에서 느리게 돌아가는 낡은 실링팬(ceiling fan)의 날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윙, 윙. 나사가 풀린 듯 엇박자로 돌아가는 팬. 저것처럼 나도 그저 제자리에서 돌고 있었을 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과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대신, 다시 베개 깊숙이 머리를 파묻었다. “오늘은 쉽니다.” 내 인생의 가게 문 앞에 팻말을 걸었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무너지기 직전의 집을 보수하는 **‘긴급 공사’**였다.



태국 국제학교에 1년 일정으로 봉사를 온 뒤, 내 몸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내 몸을 ‘렌터카’처럼 다뤘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기 위해 연료(카페인)를 쏟아붓고, 정비(휴식)는 미루고, 엑셀만 밟아댔다. 그러다 앓아눕기라도 하면 고장 난 차를 탓하듯 화부터 냈다. “왜 벌써 지치고 그래? 아직 갈 길이 먼데.” 남의 차를 빌려 타듯 막 굴려놓고, 정작 차가 퍼지자 차 탓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주중엔 빽빽한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말이 왔다. 매주 토요일, 태국 현지 목회자와 선교사,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학교 근처 판자촌 마을을 방문했다. 마음은 늘 먼저 앞서갔다. 몸은 늘 뒤에서 끌려왔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매달려 흙먼지 길을 달리던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귀에서 ‘웅’ 하는 이명이 들렸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이들이 아니라, “나 지금 쓰러지면… 누가 이 일을 하지?”라는 공포였다. 기도보다, 안녕보다, 책임이 먼저 튀어나오는 본능적인 공포.



마을의 집들은 늪지대 위에 겨우 버틴 판자 몇 장으로 지어진 것들이었다. ‘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얇았고, ‘삶’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젖어 있었다. 아이들은 신발을 끌며 뛰어왔다. 발바닥이 먼지와 땀에 젖어 검게 번져 있었다.


“Teacher!”


그 천진난만한 얼굴들이, 오히려 마음을 더 조급하게 했다. 천사 같아서가 아니라, 그 웃음이 너무 밝아서. ‘이걸 보고도 내가 쉬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몸을 더 세게 몰아붙였다.


그때, 주머니 속 폰이 울렸다. 미국에 있는 아들의 사진이었다. 기숙사 침대에 누워 브이 자를 그리고 있는 아이. 배경으로 보나 녀석의 차림새로 보나, 그곳은 습기라곤 없는 쾌적한 천국이 분명했다.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갓 찐 백설기처럼 뽀얗고 환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모순된 감정이 충돌했다. ‘다행이다. 내 아이가 이 진흙탕 속에 있지 않아서.’ 본능적인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곧바로 서늘한 부채감으로 변했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너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내가, 속으로는 '내 자식은 여기 없어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고 있다니.


눈앞의 아이들과 폰 화면 속 아들 사이의 그 아득한 거리감. 그것은 내가 가진 **‘미안한 특권’**이었다.


나는 그 미안함을 갚기 위해 몸을 더 혹독하게 굴렸다. ‘네 자식은 에어컨 바람 쐬고 있는데, 너라도 여기서 땀을 흘려야 공평한 것 아니냐.’ 그것은 봉사가 아니었다. 내 안의 부채감을 씻기 위해, 내 몸을 제물로 바치는 자기 학대였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정직하게 찾아왔다. 주일 1부 태국어 예배에 외국인 관광객이 한두 명이라도 앉아 있으면, 여지없이 통역 마이크가 내게로 왔다. 단지 ‘영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헤드셋이 내 머리에 씌워졌다.


말을 시작하려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졌다. 단어가 안 떠오르는 게 아니라, 문장 자체가 입안에서 교통체증처럼 꽉 막혀버렸다. 생각과 말 사이에 차들이 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 뇌가 셧다운(Shutdown)을 선언한 것이다.


목이 타들어 갔다. 겨우 몸을 일으켜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셨다. 밤새 마른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물이 지나가는 길이 이렇게 또렷한 줄, 그제야 알았다.


침대 맡에 놓인 책, 파스칼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의 불행은, 방 안에 혼자 고요히 머물지 못하는 데서 온다.”


나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 멈추지 못했을까. 죄책감이, 책임감이 나를 달리게 했지만, 결국 고장 난 건 차(몸)뿐이었다. 내 몸은 기계가 아니었다. 내 영혼이 거주하는 유일한 집이었다. 집이 무너지면, 그 안에 사는 마음이 아무리 숭고해도 비를 피할 수 없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느릿느릿 근처 카페에서 파파야 한 봉지와 찹쌀밥을 사 왔다. 평소라면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이동했겠지만, 오늘은 테라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주황색 과육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달고 부드러운 향이 혀끝에 감돌았다. 천천히 씹었다. 루크레티우스는 “소박한 식사는 진정한 기쁨의 시작”이라 했던가.


무엇을 먹느냐는 내가 나를 얼마나 존중하느냐의 문제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패스트푸드로 허기를 때우는 건, 내 몸을 ‘쓰레기통’ 취급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나는 밥알을 꼭꼭 씹어 삼키며 생각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는 일. 이것만으로도 나는 오늘 충분히 애쓰고 있다고. 그러니 더 이상 ‘쓸모’를 증명하려 몸을 갈아 넣지 않아도 된다고.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테라스 안으로 들어와 내 발등을 덮었다. 먼지 묻은 신발 대신, 오늘은 햇살을 신고 싶었다. 나는 그 햇살을 이불 삼아, 천천히 긴 낮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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