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나의 아빠는 교도관이었다.

by 바이블


나의 아빠는 교도관이었다. 젊었을 땐 별명이 작은 예수였던 아빠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감옥에 있는 거친 죄수들을 제압하고 관리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는 교회가 멀어지게 하고 밤마다 화를 술로 달래셨다. 아빠는 점점 입과 행동이 거칠어졌다.


어렸을 때는 술을 먹고 들어오는 아빠가 익숙했다. 아빠와 저녁을 같이 먹지 않을 때 엄마는 우리 세 자매를 빨리 씻기고 어서 자라고 하셨다. 아빠가 취해서 우리를 보면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 욕하고 깨부수기 바빴다. 나는 어렸지만 잠들지 않아도 자는 척을 했고 언니가 눈치 없이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달래기 바빴다.


아빠의 오늘 상태를 알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냉장고

아빠는 들어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나는 문이 닫히는 강도에 따라 그 날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었다. 살짝 닫히는 날엔 아빠가 자고 있는 우리를 배려할 수 있는 정신이 있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했고, 문이 떨어지게 팍! 닫히는 날엔 우리 집에 그릇, 가구, 모든 게 다 깨지고 부수어지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냉장고가 세게 닫히는 소리를 소름 끼치게 싫어한다.


둘째. TV소리

TV소리로도 강도를 알 수 있었다. 소리가 작으면 오늘은 괜찮구나! 였고 아빠가 최고로 높은 소리로 올리면 오늘 잠은 못 자겠구나 하고 오늘은 위험한 도구들을 숨겼었나?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의 TV소리가 커지면 듣기 어려워한다.


나의 모닝콜은 새벽예배를 다녀온 엄마가 깨진 유리를 치우는 소리와 흐느끼는 엄마의 소리였다. 중학생이 되었을 땐 밤마다 엄마가 외쳤다. 비상! 그날엔 언니는 칼, 나는 망치와 도구, 어린 동생은 잡다한 것들을 숨겼다. 그리고 다음날 그것들을 숨기기 잘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우리 세 자매는 밤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이혼하겠다고 이제 끝이라고 할 만도 한데, 그래도 너네 아빠 같은 사람 없다고 우리를 때리지는 않지 않냐고 우리에게 아빠를 세워주셨고 그렇게 묵묵히 한 가정을 지켰다.


아빠도 술만 먹으면 개가 되었지만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드시고 출근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단 한 번도 지각하거나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히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셨다.


우리 집에 문들은 다 칼자국이 있었다. 아빠가 때리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우리가 죽을 수 있다는 위협을 가했다. 어린아이었던 나는 눈치가 빨라서 집에 손님들이 온다고 하면 재빨리 무언가 오려서 칼자국을 가렸다. 아무도 어젯밤 일어나는 일들을 알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리고 밖에선 우리 아빠가 좋은 사람이기에 아무도 그 누구도 알아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가정폭력(家庭暴力, domestic violence)이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부모, 배우자, 자식, 형제자매, 친척,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 등 가족 구성원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때는 육체적인 폭력만 가정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늘 그래도 아빠는 우리를 때리진 않지 않았냐고 말했기에 이것이 가정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다.


그렇게 우리 세 자매와 엄마는 매일 두려움의 밤을 보냈다. 그리고 그 밤을 보낸 우리 세 자매는 날마다 마음에 상처가 났는데 그 상처에 익숙해져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방치하던 상처가 곪아 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