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꽉 지고 있었던 그 주먹의 힘, 모든 힘이 빠졌다.
나는 엄마 덕분에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작은 거인(우리 엄마)은 평소엔 사랑이 많고 착한 엄마였지만 작은 거인에게 통하지 않던 것 두 가지가 있다.
1. 예배
우리 엄마는 전도사님이었다. 매주 수, 금 예배를 드렸다. 초등학생 땐 교회 안에서 친구들이랑 놀기가 가능했지만 중학생 때는 예배에 꼭 참석해야 했다.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엄마는 꼭 예배를 드리게 했다. 금요예배는 철야 기도회라고 해서 9시에 드리면 11시가 넘어야 끝났는데, 엄마는 우리가 잠들어도 꼭 예배를 데리고 다니셨다. 예배에 있어선 어떤 것도 타협되지 않았다.
2. 피아노
언니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아마도 내가 6살, 언니가 7살 때였다. 어느 날 내가 초등학생 때 학원을 가니 언니가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와 시간이 다른데도 같이 학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언니와 내가 공부로는 어렵겠다고 먼저 생각하신 것 같다. 우리는 초등학생 고학년 때부터 학원이 아닌 피아노 개인레슨을 받았다. 엄마는 교육비가 많이 나가도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게 했다.
그때는 피아노 레슨이 너무 싫었다. 언니와 나는 레슨을 가면서 밀린 연습일지에 급하게 체크하기 바빴다. 엄마에게 피아노 그만하고 싶다고 울면 엄마는 몇 주 쉬게 해 주었다. 그래도 몇 주 뒤엔 또 레슨이 시작되었다. 언니는 콩쿠르이나 연주회가 열릴 때 무대에 서서 떨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소극적인 아이라 콩쿠르를 엄두도 못 내고 연주회도 하다가 손을 멈추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교회 반주를 도맡아 했는데 늘 잘하는 언니와 나는 비교 대상이었다. 언니는 한번 들으면 그걸 손으로 연주하는 절대음감을 가졌었고 반면에 나는 그런 재능은 없었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은 나는 교회에서도 피아노로 비교되는 게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언니는 항상 건반 메인 연주자였고, 나는 그 옆을 지키는 건반 세컨드 연주자였다.
공부도 피아노도 뭐 하나 잘난 게 없는 나는 자존감이 아주 낮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한 사건으로 내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개인레슨을 받던 나는 고등학생 때부턴 친구와 함께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그날도 늦게까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집에 가기 위해 10시가 넘는 시간에 버스를 탔다. 맨 뒤에 있던 친구와 나는 이제 내리려고 뒷자리에서 내려왔는데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면서 친구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넘어졌고 나는 맨 뒤에서부터 버스 기사님이 계신 앞까지 굴러 떨어졌다. 그러면서 배에 큰 타격감을 입었고 바로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날따라 응급환자들이 많아서 배가 많이 아팠는데도 나를 봐주는 의사들이 없었다. 겉보기엔 내가 너무 멀쩡해 보였나 보다. 그날이 금요일이어서 엄마가 예배가 끝나자마자 달려왔다. 그리고 아직도 진료를 봐주지 않는 의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작은 거인은 작지만 욱하면 무서웠다.) 그때서야 소변을 받아오라고 종이컵을 받았고 소변을 보니 다 피였다. 그때부터 간호사들은 나를 눕게 하고 절대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다낭성 신질환(신장에 물혹이 많은 질환)이고 이건 유전이라 엄마도 신장질환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를 받아보니 엄마와 나는 다낭성 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고를 통해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의료진은 나를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게 했다. 소변줄을 꼽고 물혹이 터진 피들이 계속 나왔는데 내가 가진 상처들이 터진 것 같아 괜히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일상이 처음으로 멈춰졌다. 신기하게도 그러면서 내 생각, 내 마음, 내 손에 꽉 지고 있었던 그 주먹의 힘, 모든 힘이 빠졌다.
내가 아프니 내 친한 친구가 내 남자친구(2년 동안 사귄)에게 지금은 헤어져있어도 한번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걔가 병원에서 죽으면 내가 장례식장은 갈게”
이 한마디는 내 인생을 바꿨다. 2년 동안 다른 여자에게 열 번 넘게 갔던 이 남자친구를 이제야 끊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던 나였는데 그땐 내게 이 관계를 끊을 용기가 생겼다.
내가 퇴원 후 이 남자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또 다가왔다. 나는 처음으로 매정하게 이 관계를 끊었다. “이제 그만하자”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내 옆에 어떤 남자도 두지 않았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서 1장 2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나는 고3 마지막 때 한 달 동안 병원에서 고독의 시간을 보냈다.
공허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땐 알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런 시간을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이 사고를 겪어야만 했는지, 내가 왜 항상 비교당하며 피아노를 배워야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