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소망 없는 애정결핍자였다.

아파도 아프지 않았던 내 상처가 곪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by 바이블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누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혼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작은 키 때문에 (그땐 지금처럼 이름순이 아닌 키순서로 번호를 정했다) 초등학교에선 항상 1번이었는데, 무슨 발표든 먼저 해야 하는 압박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자신감이 없어서 국어책을 읽을 때도 목소리가 너무 작아 선생님께 혼났고, 음악 발표를 해야 할 때면 압박감에 못 이겨 펑펑 울었던 초등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울었어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바쁜 사람이어서 굳이 안 좋은 얘기를 하지 않는, 철이 일찍 든 아이였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린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소극적이었던 나는 교실 급식을 혼자 먹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적극적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친구는 하나님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우리 반에서 제일 이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친구라 친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그 친구와 나는 제일 친한 베프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순간을 같이 했다. 학교도 항상 만나서 가고 학교에서 과외방도 함께 가고 집도 가까워서 집과 집 중간에서 헤어졌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며 서로의 얘기를 듣고 들어주었다. 바쁜 엄마와 거친 아빠 사이에서 이 친구는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었다.


사이가 더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가정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서 아빠 얘기를 처음 했던 친구였다. 아침에 우리가 만나면 누구 한 명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전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나는 밤새 아빠로 인해 무언가 깨지는 소리로 울어서 눈의 검은 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어있었고, 그 친구는 어려운 집안 사정과 오빠의 폭력으로 눈의 검은 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어있었다. 어쩔 땐 같은 날 둘이 똑같은 눈을 하고 와서 아침부터 서로 깔깔깔 웃기도 했다. 다른 모양이지만 같은 상처를 가진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기둥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건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기본적인 케어도 잘 받지 못한 아이여서 아침에 이를 닦지 않고 학교에 갔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아침에 이를 닦지 않는 나에게 충격을 받으며 아침엔 이빨을 닦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머리가 간지럽지 않으면 머리를 감지 않은 비듬 많은 나에게 머리는 매일 감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이빨도 닦지 않던 내가 용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친구 같지만 엄마 같은 그 친구가 참 좋았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아파도 아프지 않았던 내 상처가 곪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니 삶을 살 이유가 도저히 없었다. 내 존재가 왜 이 세상에 필요한지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항상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아도 좋다고, 평생 영원한 잠을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 같았던 친한 친구를 잠시 떠나 나쁜 친구들을 사귀면서 일탈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남자친구가 너무 좋았다. 남자라면 우리 아빠처럼 다 폭력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남자친구가 나타나자 그냥 남자에게 미쳤다.


그 남자친구는 바람기가 많았다. 나랑 2년을 사귀면서 10명이 넘는 여자를 사귀었다. 이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에게 갔다가도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10번이 넘는 그 순간 이 남자친구를 계속 받아줬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떠나 있을 때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필요해서 다른 남자들을 꼬셔서 내 옆에 두었다. 그렇게라도 잠시 나를 좋아해 줄 누군가를 내 옆에 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남자친구가 돌아오면 내 옆에 둔 사람들을 매몰차게 버렸다.


나는 애정결핍자였다. 나는 이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나쁜 친구들을 사귀었다. 학생이어도 담배와 술을 하는, 술을 먹고 음란한 게임으로 즐기는 학생들과 함께 어울렸다. 알면서도 점점 그 세계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그 세계가 나에겐 집에서 도망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어느 날은 문구점에 갔는데 한 지갑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돈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친구와 지갑을 줍자고 하고 나왔는데 그 지갑이 그 문구점에서 파는 비싼 소가죽 지갑이었다. 문구점 아저씨는 cctv를 보고 우리를 신고했고 교도관이었던 우리 아빠는 경찰서에 가서 신분을 밝히고 사정사정해서 고소는 되지 않았던 사건도 있었다.


밤마다 우리 세 자매는 아빠 때문에 떨었는데 아빠가 누군가에게 사정 사정하는 모습이 어린 나이의 나에겐 보기 좋았다. 그래서 더 사건을 만들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반에서 육상부와 싸우는 반의 꼴찌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모습이 있다. 내가 시험을 3번으로 찍었는데(3번이 제일 답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그날 2문제를 맞고 깔깔깔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친구들 무리가 나를 가리켜 얘기했다. “쟤는 커서 아마 노숙자가 될 것 같아”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날법한데 나는 깔깔깔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노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은 거인(우리 엄마)은 이런 나를 붙들고 눈물로 기도했다. 나는 당연하게 학교를 가는 학생이 아니었다. 눈이 일찍 떠지면 학교에 가는 거고 눈이 늦게 떠지면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이었다. 새벽예배가 끝나고 엄마는 내 방에 들어와 내 발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00 이가 오늘은 꼭 학교에 가게 해 주세요 “

그러면 잠에 깬 나는 엄청 화를 냈다. "제발 나 좀 깨우지 마 나 좀 두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다.


그때의 엄마의 기도가 지금 내 삶에 열매를 맺었다고..


나는 아이들이 노숙자가 될 거라고 말하는 소망 없는 애정결핍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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