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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업가정신의 소생?

by 김영수

지난 2월 17일 시진핑 주석이 소집한 민영기업 좌담회가 화제다. DeepSeek의 량원펑, Unitree의 왕싱싱 등 요즘 핫한 젊은 기업가들을 비롯해 한동안 중국정부의 눈 밖에 났던 마윈도 등장. 반면 바이두, 틱톡 등 초대받지 못한 기업들에 대한 추측도 무성하다.


내 주요 관심사는 "시주석이 훼손한 민영기업의 기업가정신이 다시 회복될까"이다.


1996년 처음 중국에 왔다.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 사회주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일 년간 이십여 개 성을 여행하고 내렸던 결론은 "이거 '생'자본주의나라였네. 근데 이 넘치는 에너지는 머지? 나도 여기서 먼가 하고 싶은데?"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에너지가 기업가정신이었던 듯하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새로운 기회가 계속 보이고 먼가 시도하면 될 것 같은 느낌". 수십 년 동안 짓눌려 있던 이 기운을 등소평이 되살린 것이다.


2010년 이후 이 에너지가 어떻게 분출됐는지는 익숙한 얘기다. BAT에서 TMD로 이어지는 거대 플랫폼기업들의 지속적 출현, 이들이 글로벌레벨에서 주도하는 디지털 혁신. 吴晓波(우샤오보)의 말마따나 "水大鱼大"(큰 물에서 큰 물고기가 난다)였다.


시진핑이 이 판을 싹 엎었다.


2020년 가을 당국의 금융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다 찍힌 마윈의 퇴진, 그리고 연이은 알리페이의 상장 무산은 정부 기조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빅테크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반독점 및 데이터 보안 등 명목으로 대폭 강화되었다. 사교육, 게임 등 일부 산업은 갑작스러운 전면규제로 산업 자체가 휘청거렸고 국내외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미중 무역/기술 분쟁, 부동산 침체 및 지방정부 부채 위기, 공급 과잉, 소비심리 위축, 고령화 등이 피크차이나의 주된 이유들로 제시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중국경제가 쉽지 않을 거라고 봤던 가장 큰 이유는 이 훼손된 기업가정신이다.


미중갈등, 부동산경기, 부채위기, 공급과잉 등 거시적 요인에 대해 중국정부는 다양한 정책적 수단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가정신은 다르다. 정부가 아무리 앞장서고 자원을 투입해도 기업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지 않는 이상 혁신은 요원하다. 시진핑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제 강화, 특히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주위 중국 지인들의 분위기가 매우 달라졌다. 더 버는 것보다 지금까지 번 것을 지키고 싶어 한다. 어떻게든 해외로 빼내고 싶어 한다. 더 이상 '먼가 될 것 같은 느낌'은 확 줄었고, 젊은이들은 탕핑족이 되었다.


그런데... 다시 헷갈린다. 딥시크와 트럼프 때문에...


지난주 민영기업좌담회에서 시진핑은 '先富가 共富를 촉진한다'면서 기존 '공동부유' 우선의 강경노선보다 한층 부드러운 메시지를 던졌다. 그렇다고 정책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 기업가정신이 발현되는 환경 및 조건 자체가 변한 듯하다.


우선, 기업가 풀의 변화가 확연하다. 화제가 되고 있는 DeepSeek의 량원펑 및 그 팀의 면모에서 드러나듯이 수재급 이공계 인력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마윈으로 대표되던 기존의 자수성가형 기업가를 대체한다. 중국정부는 2022년 첫 인구 감소를 겪으며 기존 경제성장의 한 엔진이었던 인구보너스를 빠르게 인재보너스로 전환하고 있다. 중점대학에 AI, 반도체, 양자물리학 등 전략기술 분야 통합과정을 개설하고, 영재반을 운영하는 등 수월성 교육에의 자원 집중 효과가 뚜렷하다.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이 트랙으로 몰리며 자연스레 선순환 구조가 확립되었다. 즉, 국가가 천재적 기업가를 직접 양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의 획일적 교육 시스템에서 LLM 개발 같은 혁신은 어려울 것이라는 황야성 MIT 교수의 경고(<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2023년 Foreign Affairs가 선정한 올해의 책)가 나온 지 불과 1년 남짓 만에 딥시크가 나왔다.


둘째, 미국의 돌변이다. 시진핑의 권위주의적 통제 강화는 한때 미국 경쟁상대들에 육박하던 중국 빅테크기업들의 주가를 폭락시켰다. 오픈AI와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들의 혁신 가속화는 중국 기업가들을 더욱 좌절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어 이게 뭐지? 트럼프 집권 후 미국이 달라졌다. 중국보다 더 중국스러워 보인다. 트럼프 눈에 들기 위해 대놓고 줄 서는 미국 빅테크 CEO들의 모습은 시진핑 앞의 마윈과 마화텅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머스크는 아예 중국공산당을 흉내 내서 정부를 개혁 중이고, 글로벌 자유무역은 이제 중국이 앞장서서 옹호한다. 이상향이라고만 생각했던 미국이 자국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기업가들은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업가정신이 소생되었든지 아니면 게임의 규칙이 달라졌든지, 어쨌든 예상을 뒤엎고 딥시크가 출현했고, 중국 테크기업들은 다시 조명받고 있다. 지난주 좌담회에서 시진핑 정면에 앉은 화웨이의 런정페이는 "표면적 번영이 내공 부족을 가리고 있다. 진정한 기술자립을 위해서는 '스페어타이어 계획 2.0'을 가동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비장한 한마디에 진정 무서운 중국의 기업가정신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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