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비하인드 스토리 #01
2019년 9월, 학교 생활에 치여 번 아웃이 온 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내가 6개월 간 머무른 곳은 독일이었다. 떠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왜 독일에 가냐고 물어봤다. 표면적인 이유는 '독일은 글로벌 기업들이 많고, 높은 국가경쟁력을 지닌 나라니까 보고 배우는 게 있을 것 같았다.' 였고, 실제적인 이유는 '우리 학교에서 유럽 지원자를 제일 많이 뽑았고, 유럽 중에 그나마 물가 싸고 영어로 소통 잘 되는 곳이 독일이어서' 라고 할 수 있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가장 공을 들였던 건 '어디 학교를 갈 것인가' 였다. 접근성이나 학교 수준을 보면 당연히 대도시 대학교를 넣는게 맞지만, 경쟁률이 엄청 쎄서 하찮은 어학성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반쯤 포기 상태였다. 유명한 대학교 1~2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학교는 사실 고만고만했다. 사실 6개월 있을 건데 학교 수준을 따지는 것도 아닌것 같기도 했다. (어처피 여행도 다니고 하면 학교 나가는 날이 적을텐데..) 그래서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1. 한국 학생이 적은 곳
2. 교환학생 대상 프로그램이 많은 곳
3. 여행다니기 편리한 곳
이 세가지 기준에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 거의 일주일간 학교 뒷조사를 했다. 학교 SNS 채널까지 샅샅히 뒤지며 정보를 캐냈다. 그렇게 나름 치밀하게 1,2,3지망 독일 대학교를 골랐고 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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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망 학교로 선발되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학교를 높은 순위로 쓴 사람이 내가 유일했던 것 같다. (같이 붙은 친구도 이 학교가 3지망이었다.) 그래도 1지망은 가망이 없었기에 2지망으로 선발될 것이라 예상했어서 만족했다.
그 학교는 Ludwigshafen(루트비히스하펜) 대학교이다. 루트비히스하펜은 굉장히 작은 소도시이고, 세계적인 화학기업 BASF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이다. 네이버에 쳐봐도 정보가 거의 없다. 그래도 내 눈에는 예뻐보이긴 했다. (이 놈의 유럽 필터..)
그 이후로 필요한 행정처리와 비자, 비행기 티켓을 샀고, 어느 덧 9월이 되어 무거운 캐리어 2개와 여행용 백팩 1개를 매고 6개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 내가 겪게될 우여곡절 라이프를..
경유 게이트를 잘못 나가서 다시 입국심사를 거쳐서 들어온 멍청한 짓을 하고, 무거운 캐리어를 양쪽에 끌고 S반 기차를 타고 겨우 동네 기차역에 왔다.
6개월 간 우리집이 될 아파트에 겨우 짐을 풀고, 독일 버디(교환학생 도우미)들과 피자를 먹었다. 어색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애들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근데 왜 루트빅스하펜에 온거야?"
이 질문의 의미를 한달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한달 동안 학교에서 만난 독일 친구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왜 이런 못생긴 도시에 온거야! 옆동네 만하임에 갔어야지!"
심지어는,
"학교 때문에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너무 못생겨서 하루종일 울었어."
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유럽갬성에 한껏 취한 나는 '엥? 그정돈가..? 내 눈엔 예쁜데?' 했지만, 한달이 지나고 독일의 여러 소도시들을 다녀본 후에야 애들이 왜 그렇게 울분을 토했는지 알 수 있었다.
흰 색 건물은 우리 집 바로 앞 쇼핑몰이다. 뒤에 높은 빌딩은 시청이다. 저기가 루트빅스하펜에서 그나마 번화가이다. 나름 있을 건 다 있는 작은 도시긴 하나, 예쁜 자연의 느낌은 1도 없는 도시이다.
독일의 다른 도시와 비교해보면 못생기긴 했다. 크기도 작고, 라인강에는 컨테이너가 쌓여있고, 예쁜 공원도 없으며 독일 젊은이들보다 터키 이주민이 가득한 도시이다. 세계적인 기업 BASF도 그저 큰 공장일뿐.
가까운 하이델베르크와 슈베칭엔만 가도 '아.. 이 도시 정말 예쁜건 아니구나..' 하며 격한 공감을 느꼈다.
그 때 당시에는 '아 그냥 대도시 갈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컸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작고 예쁘지 않은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진짜 현지 라이프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찍 등교해서 일찍 하교하고,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초등학생들, 유모차를 끌면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슈퍼 터키맘들, 밤 8시만 되면 칼같이 문닫고 집으로 가는 상인들의 생활, 그리고 동양인이 적어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호기심과 경계로 보는 눈빛 등.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여유가 넘치고, 자기의 삶을 만족한다는 것. 그 여유로움이 참 부러웠다. 도시가 예뻤더라면 도시에 취해 사람들의 생활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루트빅스하펜은 사람 사는게 뭔지 잘 알려준 '작고 못생겼지만 사람 냄새나는 소중한 도시'이다.
교환이 끝나고 여기를 떠날 때에는, '이 동네는 다시는 안오겠지?' 했는데 독일에 가는 것조차 불투명한 시기에 이 동네가 유독 많이 생각난다. 짦지만 정들었던 동네. 한참 후에 가도 변하지 않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