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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절 Dec 17. 2019

When my mom hugs me

엄마랑 딸이랑

타고나기를 규칙적인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뭐든 스스로 알아서 나름의 계획을 세우며 지내야 했다. 밥도, 시험 준비도, 학원도, 마음에 대한 관심도. 아마도 '동생'이라는 단어가 대략 무엇인지 이해했을 즈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동생이 하나, 둘, 셋. 늘어날수록 무언가 모를 무게감이 어깨에 잔뜩 실어진 기분이었다. 그것이 그냥 예상치 못하게 늘어난 사람의 수 때문인지 아님 그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마음의 무게를 일찍 느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가슴이 답답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열 살 여름이었다. 창백한 병원 안 진료실에 어린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인형과 장난감이 순서 없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맞은편에는 딱딱한 책상과 모니터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그 병원에 가게 된 이유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였다. 고작 열 살짜리 아이가 왜 그렇게 가슴이 답답했는지 부모는 몰랐다. 동생들이 많으니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고 아님 실없는 칭얼거림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가슴이 너무 답답해"라며 명치를 세게 때리며 반복하는 딸아이의 행동이 그제야 심각하다고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가자며 손을 잡던 엄마의 온기가 느껴졌을 때 나는 정말 이대로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못가 나를 배반했다. 스물다섯인 지금의 나는 여전히 양 가슴 사이의 벽을 자주 때리고 있으니 말이다. 툭툭 소리를 내며.



"어떻게 가슴이 답답해?" 여자 의사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가슴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돌 같아요." 정확하게 이렇게 답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뉘앙스로 답했다.



오래 걸리지 않은 진료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엄마만 두고 진료 상담을 시작했다. 그것은 최후의 통첩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땀 쥔 손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다시 장난감과 인형 품에 돌아간 나는 또래 아이들처럼 그것들을 손에 쥐며 열심히 가지고 놀았지만 귀는 그들의 대화로 향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료 결과는 매우 뻔했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CT 상에서는 가슴 안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요. 아주 건강해요." 열 살의 나는 스트레스라는 말이 생소했을뿐더러 심각한 병인 줄 알았다. 어쩌면 맞는 말이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에서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니깐.


"얘 밑으로 동생이 셋인데, 막내가 아직 많이 어려서 소연이한테 신경을 많이 못써줬어요. 그래서 그럴까요?" 처음으로 엄마의 얼굴에서 그늘을 보았다. 엄마가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엄마와 단둘이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었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막내도, 엄마의 양손을 꽉 잡고 있던 둘째와 셋째도 없이 엄마의 축축한 손을 오롯이 혼자 잡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시간이니깐. 그때만큼은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마음이 가벼울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소연아, 스트레스 마이 받았나. 미안해, 우리 딸" 그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서 전해지는 미안함에 괜히 머쓱했다. 엄마의 그늘을 가까이서 목도하니 민망했다. 그리곤 엄마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스물다섯의 나는 여전히 가슴이 자주 답답하다. 그 어린아이가 했던 말이 이제는 맞는 것 같다. 여전히 가슴 안에 돌이 있는 기분이다. 툭툭 쳐야만 그 답답함이 잠깐이라도 해소되니깐. 누군가의 눈에는 자학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이상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별 수 있나. 그 순간, 나름의 심폐소생술은 해야지.



그래도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만큼은 가슴 답답 증후군이 사라진다. 엄마 옆에 있을 땐 살 것 같다. 엄마와 나는 매일 하루에 한 번 꼭 허그를 한다. 일종의 충전이기도 하고, 사과의 표시이기도 하고, 무언의 고마움이기도 하고, 만병통치약이기도 하다. 사실 그 답답함이 엄마의 온기와 위로가 필요했던 아이의 시그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가슴 답답 증후군을 달며 살아갈 테다. 그래도 '엄마 허그'라는 약이 있으니깐 아프지 않고 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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