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여름’하면 뜨겁던 그날의 마곡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위치한 작은 사찰이다. 매미 소리가 지겨워지던 8월, 12살이 된 나는 그 해도 어김없이 가족들과 여름 여행을 떠났다. 고적답사 떠나듯 각 지역의 역사유적지와 사찰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가족 휴가를 보냈는데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의 역사적 취향이 묻어난 여행 일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 여름에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 자체가 흥분될 만큼 좋았다.
그러니깐 마곡사로 떠난 그 해, 2005년 여름도 무지막지하게 더웠는데 이젠 여름을 싫어하는 내가 그때까지만 해도 이 계절을 꽤 즐겨했다.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는 여름이 도래했다는 신호를 주는 우거진 녹음을 마주하기만 하면 엄청 긴장한다. 그토록 좋아하던 여름이 어쩌다 내게 사라졌을까.
여름을 좋아하던 마음이 소멸된 이유는 아마도 연례행사였던 가족여행이 마곡사를 기점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 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는데, 그것은 사람 속을 헤아릴 줄 모르고 숨어버렸다. 정말 더웠지만 가족 앨범에 차곡차곡 끼울만한 사소한 기억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이제는 속절없이 추억 너머로 사라져 버린 그때가 무진장 그립다.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떠나본 지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나는 그사이에 점점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의 부모는 자식들 모르게 경제에 속박당하고 위협받으며 남은 기간을 유예시키기 위해 애를 썼던 사이에 가족 여행은 더 이상 모두의 입에 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가족 여행은 우리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 점처럼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서 멀어져 갔다.
요즘 꿈에서 자주 그날의 마곡사가 나온다. 지루한 사찰에서 나와 며칠간 묵게 될 펜션 근처 계곡에서 집에서 가져온 김 빠진 튜브를 갖고 아빠와 어린 동생들과 함께 물에서 첨벙거리던 이미지가 자꾸 튀어나왔다. 아장거리며 걷던 막내를 가슴에 안고 아빠와 우리를 보던 엄마의 지친 미소도 흐릿하게 보였다. 가끔 너무 행복했던 기억들은 잘 꺼내지 않는 편인데, 꿈에서라도 아릿하게 남은 가족과 함께 한 여행을 들춰보고 싶었나 보다.
나의 부모는 그때보다 많이 늙었고, 나와 어린 동생들은 건장하게 성장해 남은 젊음을 채워나가고 있다. ‘함께’ 하고 있지만, 한 계절을 모두가 그날처럼 막연히 행복하게 보낼 수 없음에 종종 마음이 무거워졌다. 올여름이 끝나기 전에, 나는 나의 가족들과 그날의 마곡사처럼 여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그날의 마곡사가 자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