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그리고 못난이 빵

쿠프 없는 푹 꺼진 못난이 사워도우. (못난이 나 자신)

by 새로고침

악몽을 꾸었다. 아니, 악몽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의 트라우마가 반영된 옛날의 기억에 대한 꿈이다.

"선생님, 혹시 오늘 밤만 재워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지낼 곳이 없어서요.. 오늘 밤만 지나면 내일은 나가서 지낼 곳을 알아보려고요."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겨우 얻은 허락이었다.

"오늘 밤만이야, 나도 사정이 좋지 않아. 다른 방은 없고 거실에서 조용히 오늘 밤만 자고 내일은 나가줘야 해."


"그럼요, 저는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것도 안 주셔도 돼요. 조용히 잠만 자고 나갈게요."


할 줄도 모르는 너스레를 떨기 시작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를 낮추던 습관. 한없이 낮아져야 하루의 밥이든 잠자리든 허락이 되었으니까..


무서운 밤을 혼자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감사하면서도 내일 나는 지낼 곳을 얻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오늘 하루의 잠자리가 차가운 바닥이 아닌 따듯한 어느 집안이라는 것이 감사했다. 그분들에게는 차가운 거실 바닥이 나에게는 어느 곳보다도 안전하고 따듯한 안식처 같았다. 숨죽이며 조용히 다녀가며 간단히 세안만 하고 모든 방에 불이 꺼지고 째깍째깍 초침 소리만 집안에 울려 퍼졌다.


창 밖을 바라보다가 거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했다. 바깥과의 경계선, 두텁게 쌓인 벽이 거친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성벽처럼 느껴졌다.

" 단 몇 시간만큼은 나는 안전해. 이곳에 있으니까.."


당시 미성년이었던 나는 부모님 동의 없이는 따로 지낼 곳을 구할 수 없었다. 구구절절 내가 혼자된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었고 들어줄 귀는 당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이 밝고 주섬주섬 정처 없는 여정에 나섰다. 가진 돈이 없었다. 노량진 고시원을 찾아다니며 가장 방세가 저렴한 방을 알아보다 지쳐 포기하려 했다. 어딜 가든 신분증이 필요했으니까..


못생긴 버려진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후아유" 매장으로 갔다. 오후 출근 시간이 다 되어 도착했다. 오늘 밤은 어디서 자야 하는지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차라리 밤새 나를 일을 시켜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럼 이런 나의 처지가 불쌍하지 않을 테니까. 집이라는 것이 없어도 되는 날이 될 테니까.


매니저님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매장을 다른 직원에게 맡기고 나를 데리고 고시원으로 갔다. 한 달 치 선불을 내주시며, 본인이 나의 언니라고 소개를 하셨다.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연락하면 된다며 연락처와 성함을 적어놓으셨다. 방에는 창문이 있어야 한다며 방에 선풍기가 있는지 깨끗한 침구가 있는지, 냉장고 등 물은 잘 나오는지.. 처음으로 내 곁에 어른이 나를 챙겨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잠시 그 보호를 누렸다. 그러면서도 언젠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들었다.


정말 어른스럽던 그녀는 나에게 "일해서 갚으면 돼, 이제는 너를 위해 돈을 모으고, 네가 먹고 입고 쓸 돈을

너를 위해 잘 계획해 봐."


그녀는 나에게 정말 어른이었다. 그녀에게 받은 감사한 것들을 단 몇 마디로 적을 수 없을 만큼 그녀는 나에게 꽤 큰 존재였다. 배움이 적고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감사를 모두 전하지 못했지만 내 인생에서 크게 새겨진 몇몇의 은인 중에 한 분이었다.



KakaoTalk_20260310_110004938.jpg 정신없이 대충 구웠다. 쿠프도 내지 않고 오븐에 넣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푹 꺼진 못생긴 나의 사워도우


그리고 처음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 눕게 되었다. 한동안은 언제 나가게 될지 내일은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오직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그날밤도 누워 창밖을 보다가 천정을 바라보았다. 얇은 벽하나 사이로 밤거리에 술 취한 취객의 소리가 진동을 했다.

"가족"이라는 두터운 성벽은 없어서 불완전한 성벽처럼 느껴졌지만, 그날밤만큼은 누구도 나를 해하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과 약간의 감격이 있었다.


비록 혼자지만, 따듯한 방에서 잠을 자고 나는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러 갈 수가 있었다. 약간의 돈으로 장을 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못난이 빵 같은 누구도 찾지 않는 그런 빵 같았지만 귀하게 바라봐주는 어떤 이들이 있었다. 아주 밑바닥 인생 같았지만, 저 아래에 인생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올라올 감사들이 많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올라올 날들이 많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악몽 같은 꿈을 오늘의 끄적거림으로 감사로 마무리해 본다.

"괜찮아, 잘 견뎠어. 잘했어. 다 지나왔어."


KakaoTalk_20260310_104605613.jpg 못난이 빵도 잘라보니 꽤나 근사하다
KakaoTalk_20260310_104610018.jpg 보이지 않게 열심히 발효했나 보다. 기특하다. 마치 나처럼
KakaoTalk_20260310_104615632.jpg 못난이 사워도우는 나와 남편의 근사한 아침 식사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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