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인종차별주의자에게
'힙한 동네'라는 피츠로이에 갔던 날의 일이다.
여느 날과 같이 푸르른 하늘, 남반구의 볕은 머리 위로 쏟아지고 알록달록 꾸며진 가게들은 죄다 한 번씩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로 저마다 매력적이었다. 한 가게에 들러 선물용 잎차를 사면서 점원과 나눴던 대화도 즐거웠다. 이제 스몰톡도 꽤 익숙해졌나?
분명히 행복한 하루였을 것이다. 문득 우유를 다 마신 게 생각이 나서 마트를 들르지 않았더라면.
입구를 지나는데 뒤에서 선명히 'Asian cunt.'라는 욕설이 들렸다. 잘못 들었나 싶어 돌아보자 나보다 키가 두 뼘은 큰 백인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앞질러 갔다. 나름대로 칭챙총이니 니하오니 하는 말은 많이 당해보아서 이런 류의 인종차별로 당황할 일은 더 없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cunt라고? 인종차별에 여성혐오까지 한 번에 당할 수가 있구나. 게다가 그의 덩치에 기가 눌려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나 자신이 싫었다.
우유를 사기는 커녕 어딨는지 찾지도 못하고 그대로 마트를 나와 집에 왔다.
나를 내려다보던 남자의 눈빛이 뇌리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공포가 쉬이 가시지 않던 그 때, 환승 버스 정류장에는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둘이 사이좋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집에서 할아버지가 불쑥 나와 그 아들에게 빨간 자동차 장난감을 주었다. 어린이는 깜짝 선물에 뛸듯이 기뻐하고 그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 남자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마트의 남자와 할아버지가 낯선 이를 두고 선택한 길은 완전히 반대였다.
나를 욕설의 대상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그와, 본인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보는 할아버지 사이의 간극. 어느 쪽이 아름다운 삶일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고도 대답할 수 있다. 얼마나 측은한 인생이야. 그 남자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지만, 만난다고 해도 이제는 공포를 느끼진 않을 것 같다. 그냥 불쌍한 인종차별주의자에 불과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