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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론 May 07. 2024

일하지 않는 나에게도
쓸모가 있다

청소기를 돌렸을 뿐인데

 첫 취업 후 쉬지 않고 6년을 일했다. 일에 지쳐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 놀고도 싶었고 일을 하면서 그간 공부한 영어를 써먹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말로운이 좋으면 일주일 만에 일을 구하기도 하고, 반면 달이나 걸린 경우있다고 했다.


 정체 모를 자신감을 안고 왔지만 생각보다 구직이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유를 두고 자금을 준비한 덕에 돈은 아쉽지 않았는데도.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일을 빨리 구하려면 규칙적으로 시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별 거 없는 루틴을 만들었다. 야옹대는 고양이 울음을 들으며 일어나 아침을 먹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리고 이력서를 내러 외출. 카페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호주 카페가 영업을 종료하는 두 시쯤에는 일정도 끝이다. 도서관에서 글을 쓰거나 이력서를 고치고, 마트에서 장을 봐오면 저녁 먹을 때가 된다. 저녁을 먹고 퇴근한 하우스메이트와 수다를 나누고 잠에 드는 게 루틴의 마무리.


 일이 안 구해져서 만든 루틴인데 웃기게도 내 일상을 지탱해 준 건 청소기 돌리기였다. 청소를 끝내고 먼지통을 비우는 게 어찌나 재밌는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다 보니 매일 청소를 해도 먼지통에는 털이 한 움큼씩 쌓인다. 결과가 이렇게까지 당장 눈으로 보이는 일은 많지 않다. 덕분에 늘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우스메이트가 집을 깨끗하게 해 줘서 고맙다며, 내가 일을 구할 때까지 청소를 맡아서 해줄 수 있을지 제안했다. 대신 매주 내는 주세를 일정액 깎아 주겠다는 거였다! 혼자 뿌듯해서 하던 일이 타인을 기쁘게 하고, 경제적인 이득으로까지 돌아오다니.


 그리고 나자 커다란 파도 같던 불안감이 작은 물결처럼 느껴졌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목표와 과업, 피드백에서 오는 성취감이 일에 대한 가치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환경에서는 충분히 불안을 느낄 수 있고, 그러나 과업을 해치우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상황을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 앞으로는 일이 없다고 너무 흔들릴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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