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를 돌렸을 뿐인데
첫 취업 후 쉬지 않고 6년을 일했다. 일에 지쳐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 놀고도 싶었고 일을 하면서 그간 공부한 영어를 써먹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말로는 운이 좋으면 일주일 만에 일을 구하기도 하고, 반면 세 달이나 걸린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정체 모를 자신감을 안고 왔지만 생각보다 구직이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유를 두고 자금을 준비한 덕에 돈은 아쉽지 않았는데도.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일을 빨리 구하려면 규칙적으로 시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별 거 없는 루틴을 만들었다. 야옹대는 고양이 울음을 들으며 일어나 아침을 먹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리고 이력서를 내러 외출. 카페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호주 카페가 영업을 종료하는 두 시쯤에는 일정도 끝이다. 도서관에서 글을 쓰거나 이력서를 고치고, 마트에서 장을 봐오면 저녁 먹을 때가 된다. 저녁을 먹고 퇴근한 하우스메이트와 수다를 나누고 잠에 드는 게 루틴의 마무리.
일이 안 구해져서 만든 루틴인데 웃기게도 내 일상을 지탱해 준 건 청소기 돌리기였다. 청소를 끝내고 먼지통을 비우는 게 어찌나 재밌는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다 보니 매일 청소를 해도 먼지통에는 털이 한 움큼씩 쌓인다. 결과가 이렇게까지 당장 눈으로 보이는 일은 많지 않다. 덕분에 늘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우스메이트가 집을 깨끗하게 해 줘서 고맙다며, 내가 일을 구할 때까지 청소를 맡아서 해줄 수 있을지 제안했다. 대신 매주 내는 주세를 일정액 깎아 주겠다는 거였다! 혼자 뿌듯해서 하던 일이 타인을 기쁘게 하고, 경제적인 이득으로까지 돌아오다니.
그리고 나자 커다란 파도 같던 불안감이 작은 물결처럼 느껴졌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목표와 과업, 피드백에서 오는 성취감이 일에 대한 가치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환경에서는 충분히 불안을 느낄 수 있고, 그러나 과업을 해치우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상황을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 앞으로는 일이 없다고 너무 흔들릴 필요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