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한국에서는 보고 싶을 때 동물원에 가기만 하면 볼 수 있는 동물. 얇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련된 좁은 공간에 모여있던 펭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뒤뚱뒤뚱 귀여운 외양에 몰려든 관광객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다가 다음 동물을 보러 떠나는 것까지가 펭귄에 대한 기억의 끝. 그래서일까, 플래시 상관없이 사진과 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에 적잖이 놀랐다. 펭귄은 빛에 아주 예민한 동물이라니 어쩔 수 없었지만 마음은 아쉬웠다.
펭귄에 대한 배려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먼저 필립아일랜드의 펭귄을 보려면 펭귄이 뭍으로 올라오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장소는 패딩 없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매서운 바닷바람이 부는 해변가. 몇십 명의 사람이 해변가에 줄지어 앉아 기다리는 모습부터가 장관이다. 기다리는 동안 자원봉사자가 관람 규칙을 안내해 주면서 고화질 사진과 영상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QR 링크를 보여준다. 비록 직접 찍지는 못하지만 그보다 나은 화질로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SNS에도 업로드할 수 있으니 관광객들에게도 남는 장사가 아닐까? 해가 다 져서 어두운 가운데 끊임없이 움직이는 펭귄들, 휴대폰으로 찍어봤자 그리 좋은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서 펭귄을 볼 수 있었는데, 무리를 지어 우르르 올라오는 펭귄들은 갈매기랑 크기가 비슷할 정도로 자그마했다. 정말이지 이름처럼 요정 같았다. 저녁 시간에 다 같이 돌아오는 모습을 빗대 한국인들은 이걸 '펭귄 퇴근길'이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며칠을 바다에서 헤엄치다 오랜만에 집에 가는 길이라면 퇴근길만큼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무리가 상륙하고 나면 데크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펭귄들이 집에 가는 행렬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퇴근길의 펭귄들을 보고 나니 '이렇게 동물을 배려하면서 관람한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동물원 안의 펭귄들은 어떨까? 펭귄은 대양을 며칠씩 헤엄치다가 뭍에는 아주 잠깐만 올라온다는데 좁은 우리에 깊이도 얼마 안 되는 물로 괜찮을까? 또 펭귄들을 향해 쏟아지는 셔터 세례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더 걱정이 되었다.
펭귄 사진을 찍지 못해도 좋고 남은 평생 다시 보지 못 해도 괜찮으니, 모든 펭귄들이 필립 아일랜드의 펭귄들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헤엄치고 싶은 만큼 헤엄치고 때가 되면 집에 가고 무리와 어울려 사는 자유로운 펭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