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참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 살인적인 스케쥴
학교를 마치고 나면 요일에 따라 일정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영어, 수학 학원을 가야 한다. 그리고, 수영, 축구 등 운동교실도 하나쯤은 다녀야 하고, 미술, 음악 등 학원도 하나쯤 다녀야 한다. 학원이나 OO교실을 다녀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정이 형편이 좋아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노후에 써야 할 자원을 미리 땡겨다 쓰는 셈이다.
일정이 끝나면 집으로 와서 숙제를 해야 한다. 학교 숙제, 학원 숙제 이중의 과제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9시쯤 시계바늘이 직각을 이룬다. 겨우 숙제를 마치고 나면 피로로 곧바로 잠에 들거나 하고 싶은 게임, 보고싶은 광고 동영상 등을 보며 소일하다가 10쯤 취침에 들기도 한다.
나는 이런 일과의 설정을 반대하지만, 아들과 놀아줄 친구가 없기 때문에 이 미친 커리큘럼에 강제로 휘말릴 수 밖에 없다. 아내에게 애 좀 쉬게 하자고 얘기하면 다른 애들은 더 많은 걸 하고 있다는 답변만 들을 뿐이다.
# 공교육의 부실, 교사 역할의 형해화
학교가 그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한글이나 영어를 배우는 애들은 없다. 이미 학원에서 배웠거나 배우러 다닌다. 운동교실, 미술, 음악, 논술 등 학교 이외의 학습기관에 돈을 써야 하는 것을 보면, 이마저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의무교육이라 학비가 들지 않아서일까. 학교가 담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의 전달, 인성교육,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관찰과 육성. 여러 기능을 학교는 포기한 듯 하다. 그저 형식적이고 외형적으로 모양새만 갖추고 있다.
교사는 행정업무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사용하고, 아이들을 훈계하는 역할을 슬그머니 포기하고 있다. 훈계 명목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체벌했다가는 학부모의 진정, 법적 조치, 아니면 삿대질을 당할까 염려할 뿐이다. 내 새끼도 아닌데, 교사 무늬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가 훈계 기능을 수행하지 못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각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 다른 행태를 보인다. 집에서 모든 행동이 허용되고, 제대로 훈육이 되지 않은 아이는 학교에서 말썽을 부린다. 싸움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친구들을 갈라 놓기도 한다. 교사는 해당 학생의 학부모에게 저질러진 일에 대해 고지할 뿐이다. 물론, 나쁜 행동임을 일깨워 주고 반복하면 안된다는 정도의 말은 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정하고 개선시켜 나갈 의무를 각 가정으로 전가한다. 그 아이의 부모가 제대로 된 부모가 아닌 이상, 해당 아이의 말썽은 지속되고 강화되어 간다.
# 학부모 커뮤니티
직장맘과 전업주부는 교류정보의 질과 양, 교류회수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업주부는 시간이 많으니까 검색활동, 교류활동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일과를 좀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고, 지도할 수 있다.
대체로 직장맘의 아이들이 말썽을 일으키고, 전업주부 엄마들 사이에서 말썽 아이 리스트가 작성된다. 리스트 작성의 근거는 자기 아이의 진술에 의존한다. 해당 말썽 아이의 엄마인 직장맘에게 직접 고지하기는 껄끄럽기 때문에 힌트 정도를 주다가 아예 그 직장맘은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 제외시킨다. 해당 직장맘은 더욱 자신의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알기 어려워진다. 물론, 아이들에게 말썽 아이와는 놀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자신의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학생이 적고, 학교가 좁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명단을 올리게 되면 졸업할 때까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불명예는 지속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소위 '나쁜 짓'을 전염시킨다. 직장맘이 퇴근 후 쉬지 않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절대적인 시간에서 전업주부맘을 따라 잡을 수 없고, 아이도 집중적으로 단시간 내에 학교에서 저지른 일을 진술하지도 않는다.
과거처럼 시험도 타이트하게 실시하지 않고, 성적표라는 것도 추상적이어서 아이의 학습상태도 면밀하게 점검할 수도 없다. 그저 엄마들 사이에서 누가 잘한다는 후문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말썽 아이뿐 아니라 그 엄마까지 왕따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학부모에서 아버지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낼 수 없는 이유가 아직은 엄마가 양육 역할을 더 많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형식적인 브레인스토밍
'1:다'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그룹별 과제를 선정해 회의 형식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브레인스토밍은 선진국에서 가져왔다. 창의, 성숙한 토론문화의 습득 등 여러 이유에서 모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제를 수행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주체는 대체로 '엄마'라는 점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보고서와 숙제도 엄마가 다 한다. 때문에 직장맘의 자녀가 그룹에 포함된 경우, 다른 엄마들이 기피한다. 아이들이 기피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직장맘의 아이가 해야 할 몫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맘이라고 하더라도 전문직(의사, 변호사, 교수 등)인 경우에는 기피 정도가 완화된다. 부합하는 과제에 대해 전문적인 리포트 작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추어 창의성이 부각되면서 '코딩' 교육 등 부가적으로 돈들어가고 시간을 쪼개야 하는 또 다른 숙제도 발생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것은 부모들이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영재원, 영재캠프 등 제법 하는 애들을 분류해서 교육해야 한다고 부모들을 설득한다. 영재원 등에 들어가기 위한 학원을 부모들은 기웃거린다. 영재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관은 영재가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면 영재성이 소실된다고 부모들에게 겁을 주기도 한다. 해당 기관은 하나의 영재라도 더 늘려야 매출유지 내지 향상이 되기 때문에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한다.
# 예상결론
고수익, 안정적인 직업을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 경쟁에서 승리한 아이만이 그런 직업군에 속할 수 밖에 없다. 과학, 예체능 등 다른 분야에서도 지극히 소수만이 빛을 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직장인이 되거나 자영업자가 된다. 평범한 부모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린 아이들을 모든 방면에서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전부 전문직이 될 수도, 유명한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분위기의 가속도를 줄일 수가 없게 되었다. 아이들 중 일부는 잘 치고 나가겠지만, 대부분은 낙오하기 마련이다. 인생은 석차보다 더 조밀한 서열을 매겨버린다. 그리고, 부모는 노후가 걱정이다. 아이들은 크게 감사하지도 않는다. 부모의 희생에 대해서. 왜냐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낳아 달랬어"와 같은 논리다.
교육열이 높은 사회, 100년대계를 존중하는 사회는 분명 발전가능성이 있고, 이룩한 발전을 더욱 공고히 유지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환경과 현실은 교육열, 100년대계의 그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불안감, 강박감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자녀 교육이 할아버지의 경제력에서 비롯되는 사회는 3대에 걸쳐 같이 힘들어지자는 얘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 한다.
다들 미쳤다고 말하면서도 그 미친 짓을 하고 있다. 허리띠 졸라가면서 말이다. 교육환경과 현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 광풍에 대한 논의를 수수방관하였다가 아이를 직접 학교에 들여 보내고 나니 상황의 심각성은 예상보다 더욱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위 공직자들,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이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자녀들을 좋은 환경에 노출시키고자 하는 심리도 미쳐 돌아가는 분위기 때문이다. 이런 세대, 분위기 속에 자란 지금의 아이들이 과연 어떤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이 나라를 이어가게 될까.
오늘도 미친 짓에 돈을 결제하는 자신을 보면서 더 미친 것인지, 미친 짓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덜 미친 것인지 의문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