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욕심을 부려 온갖 물건을 사다 집안에 채워 놓으면 잠시 흡족하다가 결국 움직일 공간이 부족해진다. 인간의 욕구는 충족되는 순간 기쁨을 잠시 제공하다가 공허와 허무를 수반하고 또다른 욕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할 수 없다. 일정한 재물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재물에 의해 가치가 없어진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 놓으면 그만큼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낑낑대면서 장바구니를 두손 가득히 옮기다 이를 내려 놓으면 두 팔이 시원해지는 느낌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유채화는 캔버스 전체가 물감이다.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더 높은 층으로 더 칠해야 한다. 하지만, 대상만이 표현되고 나머지는 비워둘 때 여유가 느껴지는 것은 여백이 주는 위안이다.
항상 최선을 다 해, 최적의 효과를 거두면서 바람직하게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물적인 본성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면이 인간을 인간답게 정의내리는 잣대이기도 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헛점이 많고 공백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없다. 그만큼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이다.
석탑을 쌓을 때는 틈을 줘야 한다고 한다. 틈이 없으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 하고 탑이 무너진다고 한다. 석탑이 수백년 이상 제 모습을 유지하는 이유는 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남겨둔 여백은 여유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런 여유는 자연스럽게 여백을 끌어낸다. 빈 자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공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