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 증거없는 역사적 사실

법과 생활

부부가 이혼을 염두해 두고 증거를 수집해 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이 있지 않는한 이혼소송은 다른 소송에 비해 증거가 빈약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나 사건이란, 부정행위의 발각, 폭력행위로 인한 상해나 수사진행, 무단가출, 지나친 채무 등의 경우 증거수집이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정상황이 아니고서는 잦은 말다툼, 폭언, 손괴행위 등 상처를 주고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한 증거는 사실 수집하기가 불가능하다. 

이혼 당사자는 진실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에 기초해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 등에 열거해 주장한다. 서면의 분량은 상당히 많아지고, 서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화되어 과거 사실관계의 정리는 어느 정도 과장이 개입하게 된다. 

이런 서면이 법원에 제출되고 상대방에게 송달되면 상대방은 대부분 주장이 거짓이라거나 과장되었다거나 하며 허위라는 태도를 보인다. 본래 상처를 준 당사자는 자신의 행위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고, 상대방이 상처를 받았는지,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 큰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서면을 받아보면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혼소송은 1) 이혼여부, 2) 재산분할, 3) 양육권 및 친권행사자 지정, 4) 양육비, 5) 위자료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소송이다. 그런데, 특별한 증거없이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주장하게 되면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소송상으로는 증거가 없으므로 인정사실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런데, 다수의 소송에서 상대방에게 귀책사유가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증거없이 역사적 사실을 과도하게 주장하다 보니 당사자간 감정이 격화되고 갈등은 심화되어 관계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변호사가 당사자를 설득해 증거없는 주장은 소송상 가치가 없다고 설명하더라도 상대방 주장에 대해 일일이 반박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찬가지로 증거없는 상대방 주장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증거없이 또다른 역사적 사실을 장황하게 주장하게 된다. 배는 산으로 가게 되는 형국이다. 

기왕 이혼소송에 임하게 된 상황에서 증거도 없는 과거 사건에 관한 책임을 따져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할수만 있다면 상대방에게 많은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정의가 바로 선 것처럼 생각한다. 제3자의 시선에서 볼 때 양 당사자는 똑같은 사람으로 치부될 뿐이다. 

이혼소송에서 냉정을 찾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권리와 의무의 존부와 범위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소송결과가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소송의 원칙에 입각해 증거없이 상대방을 폄하하는 주장은 가급적 삼가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증거없는 주장을 주고 받으면서 감정과 갈등이 심화되어 소송은 길어지고, 문제해결점을 찾기가 매우 곤란해지는 결과, 그 불이익은 양 당사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한 때 좋았던 기억을 회상해 보라고 권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성인들이기 때문에 좀더 성숙한 모습을 갖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