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평변호사 Mar 13. 2019

황혼이혼

법과 생활

# 사실관계


A와 B(남)는 1957년경부터 동거를 시작하여 C(1959년생)를 출산하고, 1969. 2. 12. 혼인신고를 마쳤다. 남편 B는 독선적이고 봉건적인 권위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혼인 초부터 A를 천대하면서 복종을 강요하였고, A의 행동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심하게 잔소리를 하면서 일일이 간섭하였으며, A가 B의 말에 이유라도 달거나 변명을 하면 불호령을 내리는 등 A를 억압해 왔고, A가 전부 소생의 소D를 위하여 돈을 빼돌릴지 모른다고 의심하여 경제권도 자신만 행사했다.


B는 약간의 의처증 증세가 있어서 A의 외출, 친정 식구들과의 만남을 통제하였으며, A가 다니던 성당도 불륜으로 의심하며 다니지 못 하게 하였고, A가 몰래 영세를 받자 화를 내며 각방을 사용하고 A에게 자녀 C의 집에 가서 지내라고 한 이후 생활비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A는 B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의처증 증세로 말미암아 혼인이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B를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및 위자료,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 소송의 진행


서울가정법원은 A외 B의 갈등은 B의 권위적인 태도와 구속에 시달린 A가 벗어나고 하는 반면, B는 변함없이 같은 태도로 이를 강요하려는 과정에서 야기된 일시적인 것일 뿐, A와 B의 혼인관계는 나이, 혼인기간, 생활양식 등을 고려할 때 파탄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항소심 중 A와 B가 다시 재결합하기로 하고, B는 A에게 별거 중 생활비 등으로 빌려 쓴 돈을 대신 갚아 주는 것으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고, B는 위 화해 조항에 따라 A에게 금 2,000만 원을 지급하였으나, A가 B와 동거하기 위하여 집으로 들어가자 B는 반성문을 써 오라며 A를 집 밖으로 다시 내쫓았고, 그 후 A와 B는 계속 갈등을 겪으며 별거해 왔다.


B는 자신이 사망하면 A에게 재산분할이 될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한 10억원을 남겨두고 모 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였다.


이 같은 사실에 따르면, A와 B의 혼인관계는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 할 것이고, 위 혼인관계가 파탄된 것은 40여 년간 부부로서 생활해 오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 사건 이혼 소송을 제기한 A측에도 약간의 책임이 없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보다 더 큰 책임은 평생을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가정을 이끌어 오다가 1996년경 이미 한차례의 이혼소동이 있었음에도 부부 사이의 문제를 대화와 설득으로 슬기롭게 해결하지 아니한 채 계속하여 억압적으로 A에게 자신의 생활방식을 강요하고, A를 집 밖으로 내몬 이후 생활비도 지급하지 아니한 채 그 갈등을 확대·증폭시키며, 더구나 처인 A나 자식과의 의논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상당한 재산을 장학기금으로 기부한 B에게 있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A의 이혼청구를 인용하였다.


# 대법원의 판단(2000. 9. 5. 선고 99므1886)


민법 제840조 제6호 소정의 이혼사유인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 함은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할 것이다(대법원 1999. 2. 12. 선고 97므612 판결 참조).


B의 평소 생활방식과 결혼생활에서의 불화원인 및 이에 대한 대처방식, 전번 이혼소송에서의 재판상 화해 후 B의 반성문 작성강요와 별거중의 생활비 미지급 등 A와 B 사이의 불화를 증폭, 확대시킨 경위 및 B의 재산기부경위 등이 인정되고, A와 B 사이의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보아 A의 이 사건 이혼 청구를 인용한다.


# 변호사의 TIP


소위 황혼이혼에 대한 상담을 자주 하게 된다. 부부 당사자, 자녀, 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지금껏 살아왔는데, 무슨 이혼이냐는 속절없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경우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혼인과정과 실제 혼인의 실태에 대해 접해 들으면 요즘 젊은 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혼인관계를 유지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가부장적인 모습과 가치관, 그리고, 그에 기초한 언행 등에 대해 자식조차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구 덕에 입에 풀칠하고 살았냐'의 사고와 '참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라는 푸념간의 갈등이 황혼이혼의 본질이다.


요즘 부부들은 가사분담을 하며 살아간다. 남자들도 양육과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혼당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은 경제권을 주된 무기로 해서 가족들을 아래 사람 부리듯 대해 온 것도 일부 사실이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되고, 손에 물을 묻히면 안되는 그런 호강(?)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화되었고, 문화와 인식이 크게 변화되었다. 가부장적인 태도만으로 이혼이 인정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혼인관계를 유지하기에 일방 당사자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경우에는 이혼사유가 충분히 될 수 있다.


황혼이혼이 겉과 밖에서 볼 때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상당히 곪아 있는 당사자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당사자가 아닌 주변 사람들은 당사자에게 나이, 체면 등을 이유로 이혼을 만류하기도 하지만, 누구의 체면과 위신 때문에 이혼을 만류하는 것인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상담 내내 주눅들어 있는 할머니(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여자)의 모습을 지켜 보거나 이혼소송을 제기당했음에도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가부장적 가장의 전형을 보이는 어르신을 보면 황혼이혼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되는 상황으로 평가된다.


항상 말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바로 결혼과 이혼이 아닐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