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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r 15. 2019

황혼이혼 #2 토사구팽 vs 권리회복

법과 생활

자녀들 다 혼인시켜 놓고 부부가 오붓하게 여생을 즐기면서 살아간다면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부부'라는 말을 듣는 시기를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남녀관계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질투, 원망, 성욕, 자존감의 보존욕구 등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1:1 관계가 되고 보면 자기 감정과 상대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고 해석할 시간이 더 증가한다.


황혼이혼은 남편들에게 토사구팽인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수차례였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참고 참은 결과가 이혼소송이라면 다소 황당할 수도 있다. 불러주는 직장도 없어 존재의 의미까지 탐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누라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고, 게다가 소송을 제기당하고 보니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남편들은 황혼이혼에 대해 인과관계를 고찰하기 보다 억울한 누명을 쓴 피고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혼사유는 부부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황혼이혼은 대부분 가부장적인 사고와 태도, 때로는 봉건적이며 전근대적인 사고와 태도에 기인한다. 남편이 아내를 '부리는'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온 경우 이혼소송을 제기당할 가능성이 높다.


성년이 되었거나 혼인한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편인 아버지의 일방적인 삶의 태도에 식상했다면 이혼을 반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내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하며 살아온 대가라고 할까.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숱하게 눈물로 지샌 밤들과 수천번, 수만번의 고민이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황혼이혼은 아내들에게 권리회복 내지 여생의 준비인가


황혼이혼을 실행하면 주책이 아닐까 고민한다. 게다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라는 생각으로 삶의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용기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이전, 현재의 삶에 적응이 되어 버린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황혼이혼은 흔한 키워드가 되었고, 황혼이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은 예전보다 훨씬 감소했다.


부부가 일궈 놓은 재산도 어느 정도 있는 상황에서 아내는 독립생활이 크게 두렵지 않다. 이혼을 통한 재산분할이 인고의 세월에 대한 보상이고 자유를 실현하게 도와주는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돈의 눈치만 약간 부담스러울 뿐이다. 사돈이 없다면 눈치볼 일도 없다.


이혼에 의한 재산분할은 거의 반반이지만, 상속에 의한 재산은 더 많으니까 남편이 죽을 때까지 대기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합리적인 계산이 개입할 수도 있지만, 여명이 길어져 남편이 언제 죽을지도 미지수이고, 자신도 다 늙어버린 상황에서 그깟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아내는 내심에 경계선 내지 마지노선을 설정해 두었다가 남편이 삼진아웃을 범하면 이혼을 하겠노라는 다짐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가치감소를 충당할 가치있는 행동


황혼이 되면 가치감소의 폭이 더 큰 쪽은 남편이다. 경제적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해 오던 아내의 가치에는 큰 변화가 없다. 환경과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쪽은 남편쪽이다.


남편들이 인생 제2막의 개시를 위해 하나뿐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경우,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에 의해 투자를 하겠다고 강짜를 놓는 경우, 취미생활 등 소일거리를 찾지 않고 집에만 상주하는 경우 등 감소된 가치에 더해 꼴보기 싫은 행동을 더하는 경우에 아내의 이혼욕구를 부추기게 된다.


가치가 감소된 남편들의 무탈한 생존비법은 내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내심과 일치하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아내의 수고에 대한 답례를 지속하는 것 뿐이다. 아내들은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서 갑자기 무엇인가를 같이 하자고 하는 것도 강요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슬로우모션이 필요하다. 정서적 가치가 있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어이! 라면 하나 끓여봐!→라면 내가 끓일테니 냄비는 어디있어?


남편들이 은퇴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상황에서 위로는 받지 못할 망정 눈치를 보면서 살으라는 항변이 있을 수 있지만, 아내의 눈치를 보면 어떤가. 지금껏 눈치보면 살아온 주체는 아내였고, 객체는 남편이었는데. 아내의 눈치를 보고 존중하는 것이 가부장적인 태세보다 더 남자다운 것이다.


남편들이 밖에서 어떠한 지위나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집에서 눈치밥이나 먹어야 하느냐라는 생각은 접어둘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그토록 훌륭한 남편이 집에서 그 위세를 부리지 않고, 겸손하다면 아내는 물론 기타 가족들이 더 존경하고 사랑할 것으로 예견된다.



100억대 보유의 어르신이 이혼소장을 들고 와 상담 내내 나보다 더 많은 말씀을 하고 뒤돌아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이혼청구가 인용될 것 같다는 생각을 품으면서도 이혼기각을 원하는 의뢰인을 위해 이혼청구가 인용되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변호사의 직업적 숙명 때문에 혼인이 유지될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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