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인생은 외로운 나그네길~
인생은 외로운 구석이 있다.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배우자도, 부모도 어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과 결정이 중요한 것일수록, 내밀한 것일수록 외로움은 지극해진다. 일신전속으로 누구나 직접, 몸소 겪어야 할 홍역처럼 인생에는 자신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는 안되는, 그라운드에 홀로 서 있는 투수와 같은 시기와 순간, 상황이 있다. 예외없이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외로움은 성장과 성숙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인생의 과정이다.
같이 살지만 외롭다
멀리 군중 속 고독까지 찾을 필요없이 누군가와 같이 살지만 외로울 때가 있다. 실직한 가장이 가족에게 고백을 못하거나, 성적이 떨어진 학생이 부모에게 자백을 못 하거나 배우자가 곁에 있지만 생각이 서로 달라 동상에서 다른 꿈을 꿀 수도 있다. 같이 살지만, 함께 있지만 떨칠 수 없는 외로움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수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비율로 외롭다. 외로움은 고립으로, 고립은 우울로, 우울은 절망으로 악화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외롭다
인간도 동물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젖꼭지를 두고 경쟁을 벌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쟁의 중압감은 커지고, 자칫 경쟁에서 지나치게 뒤쳐지게 되면 삶은 후져진다. 다시 경쟁구도 속으로 들어가 순위를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부족을 탓해 보기도 하고 사회를 원망하기도 한다. 경쟁결과로 비쳐진 모습은 실패자의 모습처럼 느껴질 뿐이다. 누군가 손을 뻗어 일으켜 내지 않는한, 다시 설 수조차 없을 것 같고 도태되어버린 것 같은 짙은 절망에 빠지게 되면 어깨가 축쳐진 패전병이 되고 만다.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승자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 그림자 속에 있는 대다수의 패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둠속에서 외로워하는 날개꺾인 한마리 새를 발견하게 된다.
빠른 세상의 변화 속에 부적응되는 느낌을 받아 외롭다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보면 그 병은 절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절망은 희망이 고갈되었을 때 잔여물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지가 언제인데, 희망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매일 성실하게 산다고 살아가지만 일반인보다 똑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기술,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온갖 유혹을 하는 기업들이 내놓는 신기술로 탑재된 제품들, 혁명이라고 용인하며 빨리 적응하고 배우라고 강요하는 정부와 사회,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평범한 우리들이다. 무언가 해야 한다고, 해야 된다고 생각은 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길이 없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다.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발생한다고 하지만 그 새로운 직업은 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불안하고 외로워진다. '당신이 능력이 부족해 적응을 못 하니 어쩌겠냐'. 환청이 들릴 수도 있다. 기술의 변화와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탈락하는 인간을 반드시 배출시키고, 그 결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외로워질 뿐이다.
관심과 배려의 부존재
외로움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는 여러 요인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다만, 인간은 본래 집단생활을 해 왔고, 대가족 형태로 살다가 소가족, 핵가족으로 살아왔고, 지금은 1인 체제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1인 체제로 변모했다. 1인체제는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 좋아 보이는 듯 하지만, 문득 외로워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에 딱 적합한 구조이다.
이미 선진 북유럽 국가들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간도 만들고, 외로움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와 화두로 삼고 있다. 절대적, 상대적 외로움을 전부 해소할 수 없다 할지라도 관심과 배려가 싹트는 것은 고무적이다.
SNS, 여러 플랫폼은 모순적이지만 더 외롭게 만든다. 솔직하게 외로움을 토로하는 이용자는 극히 드물고, 다들 행복하고 즐겁고, 잘난 모습과 일상으로만 도배를 한다. 일정 시간 SNS 등을 하게 되면 외로움이 알게 모르게 솟아난다.
외로움은 공동의 화두이고 문제이다. 단지 개인에게 '왜 그러냐?'고 밀어버릴 문제가 아니다. 지극한 외로움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고, 수치상으로도 우리나라는 자살율이 OECD 국가 중 1순위다. 모두가 나서서 외로움을 달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관심과 배려만이 외로움을 마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치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