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이유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돈 좀 빌려줘! 차 좀 빌려줘!

살면서 부탁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부탁을 하는 위치에서는 그것이 수용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부탁을 받는 입장이 되면 수용과 거절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상대에 따라 흔쾌히 사고과정없이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Yes'와 'No' 사이에서 고민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탁의 종류에 따라 거절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상대방이 아무 설명없이 1억원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이사갈 집이 제 날짜에 비워지지 않아 모든 짐을 우리 집에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등 무리한 부탁은 거절하기가 쉽다. 부탁이 수용되는데에도 용도와 범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 부탁하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작은 부탁으로 시작해서 점점 크기와 용량을 늘려 부탁하거나 큰 부탁이 거절당하자 작은 부탁으로 범위를 좁혀가는 식으로 부탁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부탁을 수용한 경험이 있는 누군가의 부탁에 대해서는 좀처럼 거절하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부탁을 한번이라도 들어준 경험이 있다면, 부탁의 질과 양이 변하더라도 이를 계속 들어주는 불편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말기도 한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하니 야금야금 부탁의 크기와 용량이 늘어나고, 부탁을 거절하자 부탁이 축소되어 제시되면 해당 부탁을 거절하기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부탁을 더욱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사람은 기본적, 생래적으로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 선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욕구가 있다. 사회적 평가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좋은 싫든 사회적 판단에 구속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살 수 밖에 없다.


특정한 부탁을 들어주면 상대방은 비슷한 부탁을 또다시 하면서 기대를 품게 되고 거절하면 상대방이 실망할 것을 안다. 과거 부탁을 거절한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거절하면 상대방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웬만하면 부탁을 수용하게 된다. 부탁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이미지가 나빠지기를 원하지 않는 욕구가 작동한다.

논리적, 이성적, 합리적 판단결과는 관계없다!

사실 부탁을 수용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 이유가 이전부터 상당한 부탁을 수용한 사실이 있거나 단호하게 거절한 사실이 있거나 흔쾌히 부탁을 들어준 관계이기 때문에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싶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남기고 싶기 때문에 합리적 판단과정의 결과와는 달리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한번 굳어진 인상과 이미지를 일관되게 유지되도록 많은 노력을 본능적으로 쏟는다.

거절은 우월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것 저것 고민없이 부탁을 거절할 수 있다면 부탁의 당사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상대방에 대해 거절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상황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00이라는 부탁을 거절하자 부탁이 50으로 줄었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요구를 순순히 수용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져서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크게 볼 때 결국 부탁을 수용하게 된 셈인데도 우월감에 빠져 사소한 부탁으로 축소된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 이유를 물어보면 표면적으로는 상대방이 우월적 지위에 있거나 지나치게 호의적인 관계에 있어 거절이 쉽지 않다고 답변한다. 하지만, 내심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에게 숨어 있다. 이미지 관리나 부탁을 들어주던 관성, 그리고, 부탁을 겉으로는 거절하는 듯 보이지만 작은 부탁으로 변경된 것에 대해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는 그런 이유들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 사람은 내가 잘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