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우리는 아프다#22 품격있는 죽음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죽음은 탄생과 동일하게 선택할 수 없다. 자살을 시도해서 성공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처음과 끝이 동일한 형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릴적 부모나 제3자의 도움없이는 똥싼 기저귀를 교환할 수 없고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처럼 죽음에 임박하면 똥오줌을 타인의 도움없이는 해결할 수 없고, 끼니 또한 타인의 도움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때로는 비닐 호스로 똥오줌을 배출하거나 비닐호스로 음식을 공급받아야 하는 그런 누추하고 추잡한 모습을 의도하지 않게 보일 수 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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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아이의 똥오줌, 먹고 토하는 모습이 귀엽기라도 하지만, 쭈글한 모습의 외계인같은 노인의 신체로 배출되는 똥오줌은 혐오 그 자체일 뿐이다. 게다가 상속해 줄 물질이 없는 경우 조속한 죽음만이 다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호상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생을 정리하는 것은 부질없다. 버킷리스트 따위는 오히려 생에 대한 집착과 연장을 고대하는 몸부림이다. 수면을 취하다가 고요히 죽거나 잔존한 인생들에게 갑작스러운 충격을 줄 수도 있지만, 똥오줌을 보여주지 않고 죽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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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잘난 인생이 아니었기에 그 마지막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 하지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똥오줌을 대신 닦아내주어야만 하는 삶을 잠시라도 이어간다면 나는 하루속히 죽고 싶을 듯 하다. 죽음은 끝이거나 다른 무엇인가의 시작일 수 있다. 종교와 비종교적 사고와 철학의 차이겠지만, 죽음, 그 후에 뒷일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종교에서는 무통의 영생을 믿으라고 하지만, 죽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이성과 합리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그런 죽음이라는 사건은 아무래도 불편한 진실이다.


개인적으로 자식들에게, 그리고 배우자에게조차 똥오줌을 보여 주고 싶지 않다. 최대한 사람다운 모습으로,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했으면 바랜다. 이런 희망조차 교만일까.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대부분 망각하고 있는 사건이다. 진심으로 내가 죽을 때는 깔끔하게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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