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10명이 농사를 지어 소출물을 1/10로 나누어 가진다면 이념, 전쟁, 다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일하지 않고 농작물의 결과물을 얻어 먹는 부류가 생겼다. 그런 부류는 제사장, 왕, 귀족,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계급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비와 구름을 부를 수도 있으며 관념적인 신과 교통할 수 있어서 재앙이나 축복을 이 땅에 불러올 수 있다고 선전했다.
아마도 10명의 농부 중 지적 수준이 약간 높거나 거짓말을 하면 일하지 않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10명이 공평하게 일하고, 그 소출물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던 시점에서는 없던 문제가 생겼다. 2명의 이질적인 계급이 생기면 나머지 8명이 2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노동을 더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계층이나 부류는 누구일까. 바로 공무원,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선해해서 공무원은 여러 공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일이라는 것을 한다고 인정하자. 그런데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과 교통해서 재앙과 축복을 조장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지 못 하지만,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자신들만이 알고 있고, 자신들만이 일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처리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자! 다시 10명의 농업문제로 돌아가 보자. 분명, 일하지 않는 2명의 제사장, 왕 때문에 8명이서 10명분의 일을 해야 한다. 1/10이 최소 1/8에서 1/6까지 업무량이 늘어나고 그만큼 개인적인 즐거움은 감소된다.
선량한 국민들은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마구 써대는 엄청난 돈을 채워주어야 한다. 세련된 방식인 세금으로 낸다. 노동력을 더 투여하거나 노예처럼 착취당하던 고전적 시기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일하지 않는 계급을 위해 보통의 국민들이 자신들이 소출한 것 중 일부를 떼어 내야 한다. 법으로 강제적이다.
고전적인 시기에 심각한 가뭄이나 홍수가 지속되면 제사장, 왕과 농부들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그러다가 제사장과 왕을 갈아 치우거나 농부들이 봉기하여 그들을 죽였다. 이와 같이 현대 국민들은 부패한 정치인들, 무능력한 지도자들을 죽일 수는 없다. 못 살겠다고 타인을 살인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논리는 같다. 일하지 않는 계급, 위대하지 않은 지도자, 무위도식하는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일하지 않는 계급을 위해 보통의 국민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지 않다.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순간에 이르게 되면 일하지 않는 계급은 죽음을 면치 못 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추방이거나 비난의 형태로 표현될 것이지만, 심각한 문제이다.
하루하루가 빠듯하다. 일하지 않는 계급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부디 8명의 농부가 2명을 죽이려는 결정과 실행에 이르는 수준까지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